9가지 애도의 비법 -이영범 박사

by 코리아포스트 posted Oct 07,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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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란 만남과 상실의 연속이다. 만남은 반가움에 속하는 단어이고 상실은 슬픔에 속하는 단어이다. 떠나 보내는 슬픔을 잘 소화하는 과정을 애도라고 한다. 

사랑에 대한 만남의 책들은 읽기도 숨찰 만큼 많지만 "좋은 이별"을 말하는 책들은 많지 않다. 이별은 슬픈 것이고 직면해 보고 싶지 않은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별은 만남과 못지 않게 중요한 삶의 일부이다. 이별 중에도 가장 힘든 이별은 사랑하는 이의 죽음이다. 

여기에 내놓은 김형경 선생의 "좋은 이별"(2012년 출판)은 이별에 관한 새로운 이해와 통찰을 갖게 하는 좋은 책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기에 이 글을 썼다.


1) 애도란 슬픔에 치어서 좌절 되어 버리지 않고 소생되는 것이다. 

신랑 신부가 첫날밤을 지나는데 어떤 사연으로 신랑이 줄행랑을 치고 만다. 40년이 지난 어느날 우연히 그 신랑은 신부 집을 지나가다가 잠깐 들렸더니 그 신부는 첫날밤 초록색 저고리 다홍치마 그 모습 그대로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안스러운 마음으로 어깨를 만졌더니 그 신부는 폭삭 사그러지어 초록색과 다홍색 재가 되어버렸다.(서정주 신부) 

신부는 희생자였다. 너무나 억울하다. 감당할 수 없는 슬픔과 창피함을 껴앉고 그 신부는 어떻게 할 수 없이 좌절 속에서 한 발자국 저항도 없이 사그러져 버렸던 것이다. 

아마도 오랜 세월 이것이 우리나라 여인들의 애도의 방법이었는지 모른다.


2) 애도란 억울함과 분함을 인식하고 소화하는 것이다.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 없이 고이 보내드리오리다….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김소월 진달래) 

승화가 최후의 미덕만은 아니다. 

나를 싫다고 떠나는 애인에게 향한 내 깊은 마음 속에는 상실의 슬픔이 있고 거절에 대한 분노가 있다. 그 화를 인식하고 소화하여 버려야 한다. 그 분노를 소화하기 위해서는 많은 눈물을 흘려야 한다. 

그런데 안 울겠다고 오기를 가지고 버티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 그 분노를 꿀컥 삼켜 버리면 언젠가는 그 화가 터져 나오게 마련이다. 아니면 내 몸 한 구석에 틀어 박혀서 여러가지 육체적 병을 일으키거나 심적 원인으로 인한 행동장해를 유발할 수 있다.


3) 사랑하는 이를 잃은 애도의 첫 단계는 마음껏 우는 것이다.

유명한 토지(박경래 저)라는 소설에 별당 아씨를 잃은 구천이가 밤마다 산짐승들이 울부짓는 험한 골짜기를 미친 듯이 헤매다니는 장면이 나온다. 동료 머슴인 삼수가 어느날 몰래 뒤를 쫓았다. 그가 놀랜 것은 구천이가 산골짜기에서 심장을 짖어낼 듯 통곡하는 광경이다. 그는 말했다. "세상에 사나이가 저리 울 수 있는지"

울어야 한다. 슬플 때 싫도록 울어야 한다. 마음껏 울어야 한다. 

우리나라 애도의 문화에 죽은 자와 3일 간을 함께 하며 조문객을 받아들이고 곡을 한다. 이것은 남은 자들의 상실감을 쓰다듬는 의식이기도 하다. 마음껏 울 수 있는 공간을 공공연하게 허락하는 풍습인 것이다. 

그러나 상실의 그 슬픔을 풀기 위해서는 3일 이상이 걸린다. 어떤 이에게는 삼 년도 더 걸린다.  

우는 것이 원초적 애도의 표현이라면 글을 쓴다든가 작곡을 한다든가 등의 예술적 자기 표현의 활동은 우는 것과 대조되는 애도의 한 과정이 될 수 있다. 애도의 과정에서 마음껏 울 수 있는 것과 함께 그 아픔과 슬픔의 심정을 솔직하게 말로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가슴 속 아픈 그 상처의 음성을 들어 줄 수 있는 동무나 어른이나 도움이가 필요하다. 

슬픔이나 노여움이나 화와 같은 감정은 첫째로 인식되어야 하고 표현되여야 하고 둘째로는 인정되고 받아져야 된다. 그 때에 아픔과 슬픔은 치유되고 소각될 수 있다. 

어린 아이들은 표현의 능력이 제한되어 있다. 그래서 그들은 몸으로 표현한다. 열이 난다. 두드러기가 난다. 자주 병이 난다. 먹어도 잘 자라지가 않는다. 그래서 어린아이들에게는 각별한 관심이 필요하다. 어린 시절 건너 뛰어 버린 애도의 부재는 성격 형성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다음주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