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달 25일 무리한 불법체류자 단속으로 악명 높은 아리조나주의 조 아파이오(85) 전 마리코파 카운티 셰리프 국장에 대한 사면을 전격 단행했다.
트럼프 대통령 취임 후 사면이 단행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아파이오 전 셰리프 국장이 '인종 프로파일링' 기법을 동원, 히스패닉계 불법체류자들을 다수 체포·구금함으로써 인종차별 논란에 휘말려온 '문제적 인물'이라는 점에서 최근 샬러츠빌 유혈사태로 심화된 미국 내 인종갈등의 파문이 더욱 확산될 전망이다.
백악관은 8월 25일 성명을 통해 "아파이오 전 국장은 평생을 범죄와 불법이민 등의 골칫거리로부터 대중을 보호하기 위한 일을 했다"며 "아파이오 전 국장은 현재 85세로 국가에 50년 넘게 헌신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사면에 합당한 후보자다"라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도 트위터를 통해 아파이오 전 국장의 사면 소식을 전했다. 그는 "애국자 조 아파이오를 사면한 사실을 알리게 돼 기쁘다"며 "그는 아리조나를 안전하게 지켰다"고 했다. 이에 아파이오 전 경찰국장은 AP통신과의 전화통화에서 "법률팀이 사면을 이끌어 낸 것에 대해 고맙게 생각한다. 이번 일에 대해 계속 논의를 할 계획이다"며 "정계에 복귀하는 것을 배제하지 않는다. 매우 활동적으로 움직일 것이다"고 말했다.
아파이오 전 국장은 범죄 혐의점이 없는 불법체류 이민자를 구금해온 관행에 제동을 건 연방지방법원의 명령에 불응, 자의적으로 이민법을 해석해 지속적으로 불법체류자를 구금하도록 관할 경찰에 지시한 혐의로 기소된 바 있다.
아파이오는 인구 380만 명으로 웬만한 주만큼 규모가 큰 아리조나주 마리코파 카운티의 보안관(셰리프) 선거에서 1993년부터 2016년까지 내리 6선에 성공하며 지난해까지 24년간 공직생활을 한 자칭 '미국서 가장 터프한 보안관'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그는 특히 히스패닉계를 상대로 인종차별적 심문을 벌여왔다. 미 법무부는 지난 2011년, 아파이오가 불법 심문과 인종 프로파일링(인종에 기반해 용의자를 찾는 수사 기법)을 관행적으로 해왔다는 결론을 내릴 정당한 사유가 있다고 밝혔다. 아파이오 아래 근무하던 셰리프 경관들은 히스패닉 주민들을 "망할 멕시칸", "멍청한 멕시칸", "멕시코 쓰레기들" 등으로 부른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이들이 히스패닉 주민들을 검문한 사례가 다른 인종의 주민에 비해 4배에서 9배 더 잦았던 것으로 밝혀지기도 했다.
이번 사면은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달 22일 아리조나주 피닉스에서 열린 대규모 집회에서 아파이오 전 국장에 대한 사면 가능성을 시사한 지 3일 만에 현실화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시 연설에서 "여기에 모인 사람들은 조 보안관(아파이오 전 셰리프 국장)을 좋아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진 뒤 "보안관이 자신이 한 일로 유죄 판결을 받아야 하나"라고 되물었다. 이어 "나는 예언을 하려고 한다. 좋은 방향으로 진행될 것이다. 그러나 논란을 피하기 위해 오늘 밤에는 발언을 삼가할 것이다. 하지만 조 보안관은 기분이 좋아질 것이다"고 전했다.
이번 사면조치는 아파이오 전 국장이 미국 사회 내 분열의 씨앗을 뿌렸다고 믿는 많은 비평가로부터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 아파이오는 히스패닉계에 대한 '인종 프로파일링' 기법을 이용, 식당과 호텔은 물론 불법체류자가 있으리라 추정되는 모든 곳에 경찰을 보내 의심스러운 히스패닉은 모조리 구치소로 쓸어담았다. 음주운전을 했다가 아파이오 관할 구치소 텐트 시티에서 '생애 최악의 1년'을 보냈다는 히스패닉계 이민자 프란시스코 차이레스가 <워싱턴 포스트>에 기고한 글을 보면, 아파이오 관할 구역에서 체포된 불법체류자들은 재소자들이 죽어나갈 정도로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추운 구치소에서 학대 수준의 가혹한 처우를 견뎌야 했다.
비평가들은 "이번 사면이 아파이오 전 국장의 오랜 악행에 대해 법적으로 책임을 물을 마지막 기회를 박탈했다"고 비판했다. 이 사면은 또한 그동안 아리조나 경찰이 엄격한 이민정책을 펴면서 들먹거렸던 '누구도 법 위에 없다'는 정신에도 정면배치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미 연방상원 군사위원장이자 아리조나에 지역구를 둔 존 매케인 의원은 비판성명을 내고 "누구도 법 위에 있을 순 없다"며 "공직자들은 그들이 지키기로 맹세한 법을 공정하게 집행함에 있어 비판의 여지가 없도록 항상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이번 사면 결정은 법치를 존중하겠다는 트럼프의 주장을 약화시킬 것이라며 "아파이오는 자신의 행동에 대해 아무런 후회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고 덧붙였다.
지난 대선 기간 아파이오 전 국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열렬한 지지자였다. 그는 몇 차례 유세에도 직접 참석했으며, 트럼프 대통령도 유세 중 이민정책과 그가 써온 수사기법을 추켜세우며 그의 이름을 몇 차례 언급했다. 이에 화답하듯 아파이오 전 국장은 트럼프와 함께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미국에서 태어나지 않았다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이번 사면은 트럼프 대통령 취임 7개월만에 이뤄진 것이다. 미 법무부는 일반사면의 경우 '반성을 표할 때만' 사면하도록 권고한다. 사면 신청 뒤 대기시간도 5년으로 두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반성의 기미도 없고, 선고조차 이뤄지지 않은 아파이오를 사면하는 건 여러 모로 이례적인 조처다.
사면 논란으로 인해 악몽이 되살아났다는 차이레스는 "마리코파 사람들은 아파이오의 행위를 세상에 알리려고 엄청난 시간과 돈과 에너지를 썼다"며 "힘들게 이뤄낸 모든 성과와 그들의 목소리를 트럼프가 한순간에 짓밟았다"고 비판했다. 이어 "트럼프는 우리가 특히 인종적으로 분열되기를 바란다. 아파이오 사면이 그 증거"라고 덧붙였다.
많은 법률전문가들은 "아파이오의 행동은 헌법과 정부 시스템 전체의 기반을 부정하는 것"이라며 "(이번 사면은) 대통령이 헌법을 개의치 않는다는 걸 보여준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