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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이야기가 재미있으니 나이가 많이 들은 것을 어쩔수가 없다.

우리 부부는 72년, 74년에 미국에 들어 왔는데 한사람에게 법적으로 허락된 돈은 그 당시 200불!

이것이 가장 적은 액수로 알았는데 69 년도에 유학생으로 오셨다는 한 장로님은 겨우 100 불 밖에 허락받지 못하였단다.

그 후에 나라 사정이 좋아져서 90년도에 온 사람들은 만불까지 가져 오면서도 그걸 가지고 얼마나 견디며 어떻게 사냐고 고민하면서 들어왔단다.

지금은? 

제한이 없어져서 얼마든지 가지고 오고 집도 차도 현금 일시불로 미국에 오는 즉시 사고 시작하는 사람도 많다니 정말 격세지감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요즈음 5인 가족 어떤 사람이 이민 정착금으로 10만불을 들고 오는데 얼마나 버틸 수 있냐고 하는 질문에 1년이면 2-3 만불 정도 남고 다 까먹는다고 대답하는 글을 보았다. 

우선 여행부터 일단 하라고 충고를 하는 사람도 있었다.

아마도 5인 가족 10만불이 요즈음 최소 정착금이요, 먼저 놀고 보자 추세인가 보다.

그러나 아무리 사십년 전 옛날이라해도 그렇지, 100불, 200불이 무슨 말라빠진 이민 정착금이었을까?

내 나라 안에서도 고급식당 한끼면 다 없어질 돈을 들고 아무 의지 가지가 없고, 말도 안 통하는 나라에 들어와 삶을 꾸려 나가야 했던 그때! 

그러니 말도 안되는 기가 막히는 사연들이 많을 수 밖에.

남의 나라에 가서 구걸이라도 해서 연명하다 보면 살아갈 도리가 생긴다는, 턱없는 계산으로 나라가 젊은이들을 내 몰았다!

아니다. 

실은 하나같이 좁은 땅을 떠나가고 싶어도 연줄이 없고, 걸핏하면 안 내보내줘서 핑계만 있으면 그 나라를 떠날 기회를 찾기에 혈안들이었으니 가난한 나라 탓만도 아니다.

그리하여 자청하여 군대식으로 없는 길을 만들면서 뜛고 나가는, 생존 훈련을 우리 이민 1세 대부분이 경험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도 그 당시 우리나라 사람들이 미국 와서 홈리스가 되었다는 말은 좀처럼 들어본 적 없다.

우리 남편의 경우는 그랬다. 

취업 증명서가 없으면 이민이 안 되기도 했으니 의사로 취업하여 들어 온 것이기는 했다. 

하지만 월급은 한 달 후에 주는 것이고 당장 잠잘 곳과 세때 먹고 살아야 하였다.

200불로 한 달을  살아야 해서 룸메이트를 구했고, 인도친구의 카레냄새를 자나깨나 맡아야 했었다.

실상은 돈을 더 가지고 가라고 해도 가져 올 돈이 없었다. 

그나마 꾸어서 가지고 들어 올 뿐만 아니라 팬엠 비행기표도 외상으로 사서 마이너스 출발을 한 것이라니 말해 무엇하랴?

그런데도 우리 부부는 이렇게 미국 본토인들보다 잘 먹고 잘 살아왔고 아이들 넷이나 낳아 교육, 자립시키고 노년에 옛일을 기억하며 웃고 있다.

우리 외삼촌의 경우는 더 심한 이야기가 있다.

형이 이북으로 넘어갔던 빨갱이 가족, 요주의 인물로 주목을 받아 뇌물을 쓰고야 미국으로 빠져 나오게 되었다. 

사돈의 팔촌까지 빚이란 빚은 다 얻어 쓰고 나왔으니까 돈을 가지고 나오기는 커녕 너무나 어려운 시작이었다.

아마도 69년도에 들어오셨을 것인데 우리 집보다 몇 배로 힘든 시작이어서 미국 와서 의사 생활을 하였어도 그 빚을 벗어나기 위해 십년 이십년을 죽자고 고생했다고 한다.

미국에서도 손 빨래로 아이 셋을 키우셨다니 말해 뭐하랴? 

그래도 나중에는 본토인들을 넘는 상류층으로 부족한 것 없이 지내시다가 돌아가셨으니 미국이 얼마나 좋은 나라인가?

내 친구네는 여섯명 형제자매와 부모님 두 분, 온 가족이 함께 들어오기를 330불을 가지고 74년초에 들어왔단다.

300불로 아파트를 구하고 다음날로 잡(job)을 찾아 헤맨 이야기가 있다. 

마침 재산을 다 날려 버려서 더 이상 가지고 올 돈이 없어서 그랬다는 것. 

여덟명 온가족 비행기 값을 다 외상으로 샀단다.

그래도 나중엔 형제들이 대학공부까지 다 하고 큰 일가들을 이루며 살게 되었고.

100불만 허락된 그 유학생은? 

어떻게 100불로 유학이 가능했을까? 

물론 노오!

한 가족의 가장인 그 분은 옆집의 잔디깎는 기계를 빌려 용돈을 벌기 시작했었고 유학의 꿈은 금방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점차 사업을 일구어 한때 피닉스 일대에서 유명한 상점을 운영하며 아들 딸 최고 교육시키고 잘 살아오셨다.

암만 그래도 정식 이민은 불체자나 유학생 신분으로 온 사람들이 보면 방석 깔아논 것과 다름이 없었을 것이다.

이민초기에 만났던 불체자 청년들...

그들이 갖고 다니던 자동차들은 다 기가막힌 사연들이 있었다.

한 청년 차는 마마 차였는데 양쪽 문이 안 열려서 맨 뒤의 문으로 열고 기어서 드나 들었다. 

한 사람은 뒤로는 못가고 앞으로만 가는 차를 가졌고, 한 친구는 개스가 꼭 5불어치 밖에 안 들어가는 차, 그리고 조금만 속도를 내면 앞의 후드가 홀딱 열리는 그런 '똥차'들을 몰았었다. 

그 당시 간호사로 온 처녀들에게 그 차들을 타라면 질색들을 하고 도망갔었다. ㅎㅎㅎ.

이민교회 지하실에서 공동 기거를 하면서 살던 그들...

그래도 악착같이 돈을 벌어서 한푼도 안쓰고 한국의 부모형제들에게 송금들을 하였다.

한 사람이 와서 이렇게 저렇게 정착생활을 시작하여 시간이 얼마 지나면 가족들을 데리고 왔다.

처음 온 사람들 보다는 비빌 언덕이 있는 가족들은 덜 고생했고 다들 용감하였다. 

영어 영짜도 모르는 사람들이 배짱 하나만 가지고 들어왔으니까.

그리고 삼 년 안에 다 집을 장만했다! 

한국 사람들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 아닌가!

그런데 요즈음 더 잘 살 수록, 돈을 많이 가지고 올 수 있을수록 벌벌 떨고 겁내고, 5인 가족 10만불이 모자란다고 찡그리고 불평하니 우리 세대 사람들이 볼때 이해가 잘 안가는 것이다.

용감한 자들이여, 그대 이름은 가난한 자들! 

그런 의미에서 가난한 것이 참 멋질 수도 있는 게 아닌가?

고생을 한 사람들은 강인해질 수 있어서 감사할 수가 있는 것.

가난한 때나 부할 때나 살아낼 수 있다는 자신감은 보통 큰 재산이 아니다.

우리들의 옛날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듣고 지금 젊은이들이 용기를 찾았으면 참 좋겠다.

그리고 무에서 유를 창조해 낸 한국인의 이민 개척 정신을 이어갔으면 참 좋겠다.

한국 사람들은 이 세상 그 어디에 갔다 놔도 잘 살아낼 수 있는 민족임을 잊지 않았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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