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Z 포스트::칼럼

newshin.JPG

 

 

며칠 전, 막내 아이가 식탁 위에서 물병을 뱅뱅 돌리다가 멈추며, 물병 안의 물을 보라고 하였다. 물병은 회전을 멈췄는데도 물병 안의 물은 여전히 회오리 치며 돌고 있었다. "아! 관성의 법칙 때문에 그렇구나." 중학교때 배웠던 과학 이론이 생각났다.  

관성의 법칙이란 외부에서 힘이 가해지지 않는 한 모든 물체는 자기의 현재 상태를 유지하려고 하는 경향을 말한다. 버스가 갑자기 급정거를 하면, 버스 안의 승객들의 몸이 앞으로 쏠리는 현상이 대표적인 예이다. 버스는 멈추었지만, 버스 안의 승객들은 계속 앞으로 가려는 경향을 유지하려고 하기 때문에 몸이 앞으로 쏠리는 것이다.  

이처럼 현상태를 계속 유지하며 변화를 거부하려는 경향은 물리적 현상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나의 마음 속에도 깊이 자리잡고 있다. 나는 새로운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리고 도전을 그리 반기지 않았다. 음식점도 익숙한 곳에 가길 좋아하고 주문도 먹어 봤던 것을 주문한다. 새로운 사람과 사귀고 어울리기 보다는 예전에 알던 사람과 편안하게 시간을 보내기를 좋아한다. 음악도 듣던 것만 듣는다. 옷도 이것 저것 입기 보다는 몇 가지를 정해 놓고 줄구장창 그 옷만 입는다.

그런데,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이란 말인가! 2019년 한 해는 극심한 변화, 전환의 시기였다. 이제까지 익숙했던 인생의 1막을 접고, 이제 2막으로 전환하는 시점이란 말이다. 

내 삶의 어떤 전환이 있었는지 살펴보자. 일단, 이사를 했다. 내 직업이 바꿨다. 남편이 새로운 일을 시작했다. 딸과 아들이 졸업을 했다. 4년 전에 태평양을 건너 이사를 왔으니 그때 보다는 덜한 전환이지만 이번 이사에서도 이삿짐을 나르고 집을 정리하느라 스트레스가 극심했다. 한국에 있을 때에는 초등 교사였지만 올해 나는 새롭게 특수 교사로 태어났다. 사용하는 언어도 한국어에서 영어로 바뀌었다. 언어가 바뀌며 지적 수준도 대학원졸에서 초등학교 졸로 바뀐 것처럼 한없는 부족함을 느낀다. 남편이 "마리코파"라는 동네에 새로운 교회를 개척하였다. 딸은 고등학교를 아들은 중학교를 졸업하였다. 인생의 전환이 이루어지면서, 내 몸 속에 뿌리 박혀 있는 관성의 법칙을 집어 던지고, 얼마나 빨리 새로운 변화에 적응하는 전환의 법칙에 익숙해 지느냐가 내 삶의 핵심이 되었다. 

전환의 법칙(the law of transition)은 방금 내가 지어낸 말이다. 요즘 세상은 전환을 얼마나 빨리 그리고 잘 하느냐가 생존의 열쇠라는 생각에서 붙여 본 이름이다.  

특수 교육 현장에서 '전환' 즉 'transition'은 굉장히 중요한 이슈이다. 어떤 학생에게 특수 교육이 필요한가 아닌가를 가늠하는 하나의 기준이 된다. 장애 여부를 판별하는 진단검사를 할 때 학교생활에서 고집을 부리지 않고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한 활동에서 다음 활동으로 잘 넘어가느냐 그렇지 못하느냐가 중요한 진단 기준이다. 

예를 들면, 교사가 학생들에게 자유 놀이시간이 끝나고 교실에 들어가 손을 씻으라고 하면 대부분의 학생들은 그 지시에 따라 얌전히 교실에 줄을 맞춰 들어가 손을 씻는데, 어떤 학생의 경우 울며 불며 땅에 드러 눕기도 하고, 도망 다니며 교실에 들어가기를 거부한다. 이 경우 담임 선생님들은 매우 곤란해하며, 특수교사에게 이 학생이 장애가 있는지를 관찰해 줄 것을 의뢰하게 된다. 

자폐증이 대표적으로 전환을 거부하는 장애이다. 자기만의 스케줄이 있어서 그것에서 한치라도 어긋나게 되면 그날 하루는 공부고 뭐고 다 망가지게 된다. ADHD나 강박장애(Obsessive-Compulsive Disorder) 등도 대체로 자기만의 틀이 있어 그 틀에서 변화나 전환을 요구하게 되면 굉장한 스트레스를 받게 되는 장애들이다. 

학교에서 일하다 보니, 미국 교육은 '전환의 법칙'을 잘 가르치고 있는 것 같다. 변화를 격려하고 변화에 유연하다. 예를 들면 학군에 상관없이 전학이 가능하다. (특수교육 대상자는 제외) 고등학생들도 자신의 대학 입학 준비에 따라 전학을 자유롭게 할 수 있다. 아리조나의 경우, 고등학생들이 썸머스쿨, 온라인 스쿨 등 자유로운 형태의 학교에서 선택 수업을 들을 수 있다. 교사들도 학교를 바꾸는 것이나 직업을 바꾸는 것에 상당히 자유로운 생각을 가지고 있다. 

학년말이 되니, 여러 선생님들과 인사말처럼 "다음 학기에도 뵐 수 있나요?"라고 서로 안부를 묻는다. 풀타임에서 파트타임 교사로 바꾸는 선생님들도 계시고, 다른 교육청이나 학교로 이동하는 선생님들도 계신다. 물리적으로도 이리 저리 이동하거나 이사하는 것이 가볍고 쉽다. 각자 노트북 컴퓨터로 업무를 보기 때문에, 이삿짐이 별로 없고, 대부분 교육청에서 빌린 교구들이므로 도서관에 빌린 책을 반납하듯이 사용하던 물품을 반납하고 훌쩍 떠나면 그만이다.  

지금은 3차 산업시대에서 4차 산업시대로 넘어가는 과도기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여기저기서 변화에 적응하느라 신음하고 몸부림치는 소리가 들린다. 일반 택시에서 우버로, 호텔에서 에어 비엔 비로, 종이책에서 전자책으로 확확 바뀌고 있다. 사는 곳도 더 이상 한 곳에서 몇십년씩이 아니다. 자의반 타의반으로 목숨을 걸고 물 건너, 사막 건너 국경을 넘어야만 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2019년 여러 번의 전환을 겪으며 내가 터득한 한가지 적응비법이 있다. 그것은 바로 "가벼워지기"이다. 첫번째로 언제든지 훌쩍 이동할 수 있도록 필요한 가구와 물건만을 가지고 사는 것이다. 두번째로는 마음을 비우고 잘 기다리는 것이다. 때로는 "에라, 모르겠다." "그러거나 말거나!" 등의 말들을 떠올리면서 달관한 자세를 연습해 보는 것이다. 되도록이면 화 내지 말면서 말이다. 세 번째로는 일보다 사람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다. 다 사람들이 잘 살자고 일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직 관성의 법칙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있는 지구인들이여! 어서 늦기 전에 전환의 법칙에 올라타기 바란다. 각자의 전환의 법칙 적응방법을 개발하길 바란다. 그래서 나에게도 한수 가르쳐 주시길!


  1. [심기운 곳에서 꽃피우기-신경아 사모] IEP 가 뭐람?

    지구인들이여, 집을 살 때에는 집 문서를, 취직을 할 때에는 '고용계약서' 를 작성한다. 만약 집을 사는데 집문서를 작성하지 않거나 취직을 했는데 고용계약서를 제대로 작성하지 않으면 뭔가 이상한 것이다. 나중에 뭔 일이 터져도 전혀 대처할 수 ...
    Date2019.05.18
    Read More
  2. [김찬홍 목사의 삶과 신앙] 어떤 삶

    『막 쪄낸 찐빵』으로 유명한 카피라이터 이만재 씨의 글을 그대로 인용해 보려 합니다. "그는 1937년에 일본 도쿄의 빈민가에서 태어나, 8.15 광복 직후 외가가 있던 경북 청송으로 왔습니다. 당시에 가진 게 없어서 끼니조차 잇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어린 ...
    Date2019.05.26
    Read More
  3. [심기운 곳에서 꽃피우기-신경아 사모] 미국에서의 스승의 날

    한국에서 교사로 있을 때에는 '스승의 날'이 늘 좀 쑥쓰럽고 부담스러운 날이었다. 학생들이나 학부모님들이 많은 선물과 꽃다발, 그리고 행사를 벌여주곤 했지만 왠지 진심으로 이것들을 한다기 보다는 남들이 하니까 해주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종...
    Date2019.05.26
    Read More
  4. [김찬홍 목사의 삶과 신앙] 스스로를 행복하게

    심리학자들에 의하면 인간은 항상 자신에게 말을 하며 산다고 합니다. 다른 사람과 대화할 때 1분 당 평균 150 ∼ 200개 단어를 사용하는 반면, 자기 자신에게 말할 때는 엄청난 속도로 1 분 당 1,300개 단어를 사용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렇게 빠른 속도...
    Date2019.06.01
    Read More
  5. [심기운 곳에서 꽃피우기-신경아 사모] 관성의 법칙(the law of inertia) VS 전환의 법칙(the law of transition)

    며칠 전, 막내 아이가 식탁 위에서 물병을 뱅뱅 돌리다가 멈추며, 물병 안의 물을 보라고 하였다. 물병은 회전을 멈췄는데도 물병 안의 물은 여전히 회오리 치며 돌고 있었다. "아! 관성의 법칙 때문에 그렇구나." 중학교때 배웠던 과학 이론이 생각났다. 관...
    Date2019.06.01
    Read More
  6. [심기운 곳에서 꽃피우기-신경아 사모] 서로의 어깨에 기대어

    5월을 참 바쁘게 보냈다. 미국에서 교편을 잡고 나서 처음으로 맞이하는 방학이다. 그동안 대학원 공부와 교생실습 그리고 바로 취업. 한 2년 동안 숨가쁜 나날을 보내왔다. 더욱이 5월에는 첫째와 둘째가 모두 졸업을 하고 상급 학교에 진학을 했다. 첫째는 ...
    Date2019.06.08
    Read More
  7. [김찬홍 목사의 삶과 신앙] “나이가 준 나의 무게”

    지난 주간에 갑자기 콜로라도 덴버를 자동차로 다녀왔습니다. 이웃 교회 목사님과 주일 밤에 출발하여 교대로 운전하며 13시간을 달려 모임 장소에 도착했습니다. 올 때는 좀 여유를 갖고 돌아가자 하여 중간에 1박을 하며 때론 가볍게 때론 진지하게 돌아왔...
    Date2019.06.18
    Read More
  8. [심기운 곳에서 꽃피우기-신경아 사모] 특수교육에 관련된 오해들

    특수교사로 일하다 보니, 이 분야에 대해 공부하고, 일하면서 그 전에 가졌던 잘못된 선입관이나 루머들에 대해 조금씩 알게 되었다. 아직도 알아야 할 것들이 참 많지만 가끔 특수교육 관련 인터넷 게시판이나 학부모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오해를 하거나 잘...
    Date2019.06.18
    Read More
  9. [심기운 곳에서 꽃피우기-신경아 사모] 특수교육에 관련된 오해들 2

    지난 주에 이어서 특수교육에 관련되어 떠도는 루머나 오해들을 바로잡고자 한다. 이 드넓은 미국에서 필자의 경험이나 의견이 적용되지 않을 수도 있을 수 있겠다. 그러나 미국 교육현장의 경우, 원리와 규칙에 의해 교육이 진행되고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는 ...
    Date2019.06.22
    Read More
  10. [심기운 곳에서 꽃피우기-신경아 사모] 요람에서 무덤까지 ? 아리조나 주의 장애인 복지 정책 (1)

    최근 한국에서는 장애인 등급제를 31년만에 폐지하고, 대신 장애 정도를 중증과 경증 이렇게 2 종류로 구분하여 복지 혜택을 제공한다고 밝혔다. 장애인 등급제는 정부로부터 복지 혜택을 받고자 할 때 중요한 자격요건 및 기준이 된다. 그래서 많은 장애인 ...
    Date2019.07.04
    Read More
  11. [심기운 곳에서 꽃피우기-신경아 사모] 요람에서 무덤까지 ? 아리조나 주의 장애인 복지 정책 (2)

    지난 주는 DDD(Division of Developmental Disability)에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대상에 대해 연령별로 알아 보았다. 이번에는 DDD에서 제공하는 복지 서비스의 종류와 서비스가 제공되는 과정에 대해 알아 보고자 한다. 이 모든 내용은 DDD의 인터넷 홈페...
    Date2019.07.10
    Read More
  12. [심기운 곳에서 꽃피우기-신경아 사모] 요람에서 무덤까지 ? 아리조나 주의 장애인 복지 정책 (3)

    "우리 아이보다 딱 하루만 더 살고 싶어요!" 이것은 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님들에게서 흔히 들을 수 있는 고백이다. 종종 신문에는 부모와 성인 장애인 자녀가 함께 목숨을 끊는 끔찍한 기사도 접한다. 학령기의 장애인들은 그래도 학교라는 울타리가 있어서 ...
    Date2019.07.16
    Read More
  13. [이인선의 메디케어 칼럼] 메디케어 바로 알기(45) 사례연구...치료비 청구서가 날아 왔을 때

    K 선생님은 골치가 많이 아프셨다. 응급실에 갔던 2월말의 병원과 의사 청구서 중 서너개(6천불 상당)가 6월말 현재 여지껏 해결되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주치의가 응급실로 가라고 보내서 갔는데 이틀이나 병원 신세를 지었으니 크게 돈이 들 줄로...
    Date2019.07.23
    Read More
  14. [심기운 곳에서 꽃피우기-신경아 사모] 대기만성(大器晩成), Late Bloomer의 가치

    한국은 요즘 "자사고 폐지" 문제로 시끌 벅쩍 하다. 한국에는 여러 종류의 고등학교가 있다. 최근에 없애느니 마느니 난리가 난 "자립형 사립학교"를 비롯하여, "과학 고등학교", "외국어 고등학교", "국제 학교" 등이 있고, 검정고시를 봐야 학력을 인정 받...
    Date2019.07.23
    Read More
  15. [심기운 곳에서 꽃피우기-신경아 사모] 회복의 공동체, 배움의 공동체

    올 여름은 개인적으로 참 바빴다. 원래는 6월, 7월중에 운동도 열심히 하고, 영어 공부도 해서 몸과 마음이 튼튼해지길 기대했었다. 그런데, 전혀 그렇지 못했다. 왜냐고? 바로 교회에서 3주간 진행한 여름학교 덕분이었다. 거의 7월의 대부분을 "여름학교"에...
    Date2019.07.30
    Read More
  16. [심기운 곳에서 꽃피우기-신경아 사모] 초보 특수교사의 생존기

    요즘 나는 대학교를 다시 다니는 기분이다. 며칠 전 교육청에서 새로 채용된 교사들을 대상으로 하는 4일간의 매우 "빡쎈" 신입 교육을 받고, 배치 받은 초등학교로 가서 동료 선생님들과 함께 새학기를 준비하고 있다. 사오정과 같은 귀로 하루 9시간 이상을...
    Date2019.08.06
    Read More
  17. [심기운 곳에서 꽃피우기-신경아 사모] 초보 특수교사의 생존기

    한국과 달리 가을에 새 학년이 시작되는 미국은 바로 지금이 새 학년 새 학기이다. 쇼핑센타나 마켓에는 "Back to school" 이라고 크게 써 붙이거나 따로 상품 코너를 마련해 놓고 새 학기를 준비하는 학생들과 가족들을 맞이한다. 필자도 이번에 처음, 미국 ...
    Date2019.08.13
    Read More
  18. [심기운 곳에서 꽃피우기-신경아 사모] 미국에서 특수 교사로 살아남기

    오늘 나는 집에 밤 8시에 도착했다. 출근은 새벽 6시 15분에 했는데 말이다. 더군다나 오늘은 수요일이어서 다른 선생님들은 다른 요일보다 조금 일찍 퇴근을 했을 텐데 말이다. 내가 이렇게 밤 늦게 집에 오게 된 이유는 바로 "교육연수"를 받았기 때문이다....
    Date2019.08.20
    Read More
  19. [심기운 곳에서 꽃피우기-신경아 사모] 위기의 아이들

    한국이나 미국이나 '위기의 아이들'이 있다. 무엇이 위기인가? 공부를 너무 못해서, 반대로 너무 잘해서, 집이 너무 가난해서 반대로 너무 부자여서, 성격이 너무 내성적이어서 반대로는 너무 극성이어서 위기라고들 떠든다. 공부를 너무 못하면 상급...
    Date2019.08.27
    Read More
  20. [심기운 곳에서 꽃피우기-신경아 사모] 멋있는 말 비계 飛階(Scaffold)

    작년의 일이다. 대학원 공부 막바지에, 나를 한참이나 애먹이던 영어 단어가 있었다. 특수교육과 영어교육 관련 논문을 읽다 보면 많이 나오는 단어인데 한국말로 그 뜻을 찾아보니 도무지 앞뒤가 맞지 않고 생뚱 맞아 무슨 말인가 하고 나를 헤매게 만들었던...
    Date2019.09.04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 7 8 9 10 11 12 13 14 15 16 ... 20 Next
/ 20
롤링배너1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