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문을 환영합니다.
AZ 포스트::독자투고
조회 수 176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newCFB_rgb_150.jpg

 

 

막둥이 아들을 낳고 일 년만에 사업 전선으로 뛰어들어 장장 만 30년이나 지냈습니다. 중국식당, 일본식당, 인삼재배, 한국 식품점, 구두 수선소, 세탁소... 그리고 지난 주에 드디어 마지막 웨딩샵 사업에 이별을 고하였습니다. 정말 많이 망서리고 주저하던 일이었는데 눈 딱 감고 실행에 옮긴 일이었지요. 남의 나라에 사는 죄 아닌 죄 때문에 잘 맞지 않는 별별 일을 다 해보았던 세월들... 그 많은 힘 겨웠던 날들이 이것으로 끝을 내게 된 것이지요. 아마도 내 인생에 다시는 돈을 벌기위해 사업을 시작 하는 일은 더 이상은 없을꺼에요. 이런 때를 위해 시원섭섭이란 말이 준비된 것이지요... 그와 함께 내가 가지는 감정 중에는 부끄러움과 후회도 한 몫을 단단히 합니다만. 시원섭섭은 날마다 할일이 없어진 때문이고 그 사업 때문에 더이상 고민이나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이유입니다. 부끄러움은 마지막 사업에 성공을 하지 못한 것이 경기침체에만 원인을 백프로 돌릴수 없고 실은 내가 너무 게을렀던 것을 솔직히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기 때문이죠. 마침 경기가 너무나 나빠서 핑게도 되고 부끄러움이 희석이 되는 것만도 감사한 일이죠. 그래도 나는 압니다. 죽기 살기로 일했으면 이런 일이 결코 있을 수가 없다는 것을. 

내 인생 마지막 사업을 문을 닫는다는 시점에서 마지막 한달동안  나의 심경은 착잡하기 짝이 없었어요. 마치 게으르고 바보 같은 나를 비웃는 듯, 폐업 세일에도 장사가 그야말로 엉망진창이었습니다. 꼭 누가 저주의 말을 써 붙여 놓은 듯...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길을 막고 아무도 못 오게 막는 듯 하였으니요. 감당할 시련 밖에 주시지 않으리니...하는 작은 믿음을 가지고 닥치는대로 살려고 마음 먹고 더 이상의 스트레스를 마음 속에 들이지 않았습니다. 눈물요? 그런 것은 이제는 사치 같아서 내 평생 그 흔한 눈물이 나오지 않게 꾹 잘 참았구요... 눈물이라면 이 사업체를 시작했을 당시 밤마다 너무나 많이 쏟았었거든요. 아마 그때 다 쏟아 내서 더 이상 남아 있지도 않았을 것이예요... 절망의 낭떨어지 끝에 섰었던 기억들, 잘못된 판단과 경솔한 도전을 했던 스스로를 비웃게 되는 비참한 기분들, 자신없어도, 하기 싫어도, 안 오는 손님을 기다리며 하루하루 또 살아내야 하던 많은 날들... 나중 날에는 혹 이야기 거리가 조금은 될듯합니다만 아직은 그냥 괴롭고 부끄러워요. 지난 4 년, 스트레스로 인한 갑상선 항진증이 나타나서 몸이 마르고 피곤하기 짝이 없고 눈이 부리부리 커지는 그런 고통을 겪었기도 한, 처음부터 고난의 장이었어요... 들어오는  돈보다 나가는 돈이 더 많은 절망감은 겪어본 사람 이외에 아무도 모를 것입니다. 쥐꼬리 만한 수입에 엄청난 렌트는 왜 그리 자주 내야 하는지! 더구나 나같이 평생 알뜰히 살던 사람이 느끼는 속수무책의 고통이란 얼마나 힘들던지요. 마지막 순간까지 걱정을 안하던 긍정적 성격도 별수없이 그런 세월을 보내며 "이 끝은 어딜까" 하는 불안과 두려움에 지쳐 넘어지고 말았었지요. 결국은 이처럼 끝을 내게 되는 군요. 나의 고난의 장에 문 닫는 이별 연습은 그동안 얼마나 많이 했어도 슬펐습니다. 이곳에서 오래 일했던 오펠리아도 날마다 눈이 퉁퉁 불어 있었어요.. 그녀의 근심과 두려움은 내가 더 이상 도와 줄수가 없습니다. 못본척 외면하는 수 밖에요. 출퇴근을 위해 양도했던 도요다 헌차 값 3천불 중 2300불을 마지막 정리청소를 조건으로 그냥 제해 주기로 하였고, 내가 몇개 가지고 가고 남겨둔 수 많은 웨딩드레스들을 그녀가 직장 찾을 동안 먹고 사는 방편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다 내어 준 것으로 마음을 달래주었어요. 마지막 날들을 지날 때 그러지 않아도 슬픈데 날마다 전화를 주고 받는 내 친구 고모가 한국에 여행 중이었고 남편도 시카고에 가 있고 나혼자 이 일을 당해야 했었습니다. 하기는 전화로 이야기 해 보았자 아무 도움이 되지 못하는 사람이지요. "빨리 문 닫고 와..." 그런 소리나 하니까요. 남이 도울수 없는 일이 세상에 참 많이 있는 것입니다. 내 인생은 내가 혼자 겪어야 하는 나의 십자가이며, 살아 남기 위한 외로운 투쟁인 것이었어요. 파이팅! 나 스스로를 격려합니다. 무엇보다도 사업의 문을 닫으므로 나의 더 나은 삶이 시작된다고 굳게 믿음으로 스스로를 위로 합니다. 

잃은 것이 있지만 얻은 것도 반드시 있다고 믿습니다. 이 사업을 시작할 때 나는 욕심이 너무 많았었어요.. 허황된 마음으로 돈을 많이 벌고 싶었던 것이 그것입니다. 세탁소를 팔고 나서 나는 호텔을 산다고 전국을 다 휩쓸고 다니기도 하였고, 페인트 공장을 인수하려 했기도 하는 둥 굉장한 사업도 쳐다보기도 하고 별별 사업을 다 기웃대면서 한번 마지막으로 점프를 잘 해보고 싶었어요.. 지금 와서 생각하니 얼마나 창피하고 웃기는 일이었는지요... 사업 근성이 이 정도도 안되는 자신 파악을 그렇게도 못 했었다니요... 돈을 많이 벌고 싶은 것... 그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욕심이라는 것을 나는 이제 알고 있습니다. 더 이상 욕심 안 부리고, 먹고 사는 것만으로 감사히 살기로 작정 한 것은 참으로 좋은 일입니다. 

비록 많은 돈을 잃어 버렸지만 나는 아직도 건강함을 감사합니다. 이 나이에 약이라고는 비타민 C와 종합 비타민 밖에 안 먹는 체질이니 이만큼 건강한 몸을 주신것은 얼마나 감사해야 하는 일인지 모릅니다.. 돈을 잃어버리면 조금 잃어버린 것이요, 건강을 잃어버리면 모두 잃어버린 것이라는 말을 알고 있거든요.. 내 친구 하나는 자동차 사고로 전신 마비가 되어 20년 이상을 살고 있는데 그녀가 항상 말하는 것은 "몸이 건강한 사람은 떼 돈을 벌고 있는 것이다."는 것입니다. 나도 떼돈을 벌고 있는 사람 중에 하나임이 틀림 없잖아요? 또한 나는 할일이 많은 사람이므로...그리고 잘 할수 있는 일이 아직도 많이 있으므로 감사합니다... 우선 아직 힘이 있을 때에 할머니 노릇부터 제대로 해보기로 작정합니다. 당장 다음 달로 새 손자 아기가 나오니까 조금만 여행을 다니다가 새 일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힘들다고, 아이 보는 일은 큰 손해나 나는 것처럼 반대하는 친구들이 많이 있지만 나는 꼭 해보고 싶은 일이라서 힘들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가난한 조부모가 할수 있는 일중에 최고로 좋은 일이니까요. 거금 25만불을 잠깐만에 통째로 날리고 생각해보니 보통 한심한 내가 아닙니다. 평생 20불도 벌벌 떨면서 써왔는데 그 만배가 넘는 돈을 쓰레기처럼 내버렸다니... 도대체 머리를 들수 있는 일인가 말입니다. 그러나 평생 알뜰하고 소박하게 살아왔으므로 큰 돈이 드는 생활 방법을 몸에 익히지 않아서 다행이 아닌가 싶어요..  앞으로도 나물 먹고 물 마시며 허락 된만큼만 쓰다보면 더 나빠질 것도 없단 말이죠. 그리고 바닥을 치면 올라가는 수도 혹 있지 않을까요? 이제 본격적으로 백수- 백조 생활로 접어드는 내 인생의 새 이정표! 시간이 지날수록 아주 잘한 일로 여겨지리라 믿습니다. 주님께서 버리지 않으실줄 믿으니까요.

(2009년)

?

  1. [독자투고] 전광훈 목사의 신성모독 발언? 그에 대한 해명

    이번 전광훈 목사님의 발언에 신성 모독자 끌어내려야 한다라고 주장하는분들 읽어보세요. 이번 전목사의 문제의 발언에 대해 한국교회와 믿음의 사람들이 극명하게 두 부류로 갈라지는걸 보게 됩니다. 첫째, 전능하신 하나님한테 절대로 그렇게 말할 수 없다...
    Date2019.12.26
    Read More
  2. [추억의 조각] 아프리칸 어메리칸과 동거를 시작하며 -이인선

    며칠전 우리 집 근방에 사는 젊은 목사님이 우리에게 물어보셨다. "멀린이라는 아프리칸 어메리칸이 잠잘 곳이 필요한데 같이 지낼수 있어요?" 자기 집에서 석주일 동안 데리고 있었는데, 더 이상 자기 몸 약한 부인에게 짐을 지우기가 미안한 모양이었다. 우...
    Date2019.12.21
    Read More
  3. 아리조나까지 나타난 태극기 집회 -Choice A/C 최상천

    구국 기도회에 간 한 목회자가 자신은 조국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해서 태극집회에 참석했는데 이것은 극우 정치집회가 아니냐며 옥신각신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교회의 정치 참여는 과거 독재정권 하에서 유신 헌법 비민주성을 비판하고 저항하며 수차례 투...
    Date2019.12.21
    Read More
  4. [추억의 조각] 우리집에서 사는 그 사람의 이름은 홈레스 -이인선

    그의 진짜 이름은 멀린이지만 사람들은 그를 그냥 홈레스라고도 부른다. 이제 사흘째 우리집에서 잤다. 한달을 함께 지내기로 하고 시작해서 벌써 10분지 일을 한 셈이다. 아프리칸 어메리칸 홈레스와 살게 된 것을 안 우리 큰 딸은 엄마 아빠가 어리석고 경...
    Date2019.12.05
    Read More
  5. [추억의 조각] 고생하던 옛 일을 추억하며 -이인선

    우리가 요즈음 일을 안하고 먹고 살고, 여기저기 여행을 많이 다니니 부럽다는 사람이 있다. 마지막 사업을 닫은 후 만 삼년동안 일년에 절반이나 밖으로 돌아 다니니까... 평생 어려움 없이 흥청대며 살아 온 사람도 아니지만 남을 부럽게 만드는 것이 무에 ...
    Date2019.11.26
    Read More
  6. [추억의 조각] 엄마, 돈 벌어 왔어요! -이인선

    방금 우리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J 목사님 댁에서 오는 길입니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주신다고 저녁식사에 초대해주셔서 샤브샤브까지 잘 얻어 먹고 진짜 좋은 이야기도 들었어요. 그것은 우리 두째 딸과 동갑내기인 그댁 따님 집의 행복한 이야기 입니다....
    Date2019.11.20
    Read More
  7. [추억의 조각] 어무루의 한 -이인선

    외할머니 댁이 있는 어무루는 내 고향 김포 양곡 집에서도 두어시간쯤 더 걸어 들어가야 하는 바닷가 농촌이었다. 친 할아버지 댁이 있는 꾸지를 지나서 산을 몇개 더 구불구불 돌다보면, 대낮에도 쓰르라미와 매미만 요란히 울 뿐, 사람 소리는 들어 볼수 없...
    Date2019.11.10
    Read More
  8. [추억의 조각] 911 그리운 옛날이여! 첫 운전, 첫 사고의 추억

    1. 이민생활의 첫 관문 74년, 미국에 처음와서 제일 먼저 넘어야할 관문은 운전면허 시험이였다. 운수업을 얼마간 하시던 아버지 덕에 버스나 트럭은 남보다 일찍 타 보기는 했지만 자가용 승용차는 특별한 부자나 굴렸던 시절, 내 25년 한국살이 기억에 한번...
    Date2019.10.31
    Read More
  9. 피닉스에서 우리의 고유한 국선도를 배운다

    우리 한국 고유의 정통 심신수련법인 국선도를 소개하기 위해 한국에서 네 분의 시범공연단이 오십니다. 고구려의 벽화에서 볼 수 있고, 신라의 화랑들의 훈련을 그린 화랑도에서 국선도의 모습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밝돌법이라고 불리웠던 옛말은, 밝은 ...
    Date2019.10.18
    Read More
  10. [추억의 조각] 911 나 죽으면 석달만 참았다가

    지난 주일 예배 때 장로님께서 광고하시기를 상처하신지 1년 3개월 되신 우리 목사님이 새 장가를 드신다는 것이었다. 우리들은 예상했지만, 또한 예상하지 못한 일이기도 해서 모두가 깜짝 놀랐다. 왜냐하면 그동안 목사님은 재혼이라는 말을 누가 꺼낼까봐 ...
    Date2019.10.18
    Read More
  11. [추억의 조각] 911 사업인생을 닫으면서 -이인선

    막둥이 아들을 낳고 일 년만에 사업 전선으로 뛰어들어 장장 만 30년이나 지냈습니다. 중국식당, 일본식당, 인삼재배, 한국 식품점, 구두 수선소, 세탁소... 그리고 지난 주에 드디어 마지막 웨딩샵 사업에 이별을 고하였습니다. 정말 많이 망서리고 주저하던...
    Date2019.09.25
    Read More
  12. [추억의 조각] 911 추석 담 담 날 -이인선

    미국에 오래 살아서 구정은 가끔 잊어버리지만 추석은 오히려 잊지 않고 지날 수가 있는 날이었다. 우리들 어릴 때 아버지께서는 한번도 자기 생신은 기억하라고 안 하셨으면서도 엄마의 생신에 대해서는 "추석 담 담 날이 니 엄마 생일이야"라고 귀에 못을 ...
    Date2019.09.18
    Read More
  13. [추억의 조각] 911 사태와 딸 -이인선

    그날 아침 큰 딸이 울며 불며 전화를 해서야 세계를 경악케 만든 엄청난 큰 사건이 터진 것을 알게 되었다. 뉴욕의 자랑이요, 미국의 두뇌와 재계의 중심부였던, 맨하탄의 쌍둥이 건물이 여객기 납치범들에 의해서 두 동강이 나고 주저 앉아 버린 무참한 사건...
    Date2019.09.10
    Read More
  14. [추억의 조각] 내 인생 길에서 세탁소의 하루 -이인선

    미국에 오자마자 아이를 낳기 시작하여 첫 5 년은 연년생 네 아이를 키우느라 집에 붙어 있었다. 막둥이가 첫돌이 되면서 나도 생활전선에 뛰어들게 된 경위는 이렇다. 의사 일만 잘하면 혼자 벌어도 잘 살텐데 남편은 짧은 영어에 미국 의사 생활이 버거운지...
    Date2019.09.04
    Read More
  15. [추억의 조각] 내 인생 길에서 만난 죽음의 사건들 -이인선

    초등학교 5학년 어느날 밤, 꾸지 큰 집에 다녀오신 아버지께서 그날 임종하신 큰 아버지의 죽으시던 모습을 자세히 전하셨다. "왜 이렇게 캄캄하냐? 불 좀 밝혀라! 제발 불 좀 밝히란 말이다!"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시며 운명 하셨단다. 40년이 지난 뒤에 여...
    Date2019.08.27
    Read More
  16. [추억의 조각] 가난했지만 가난을 몰랐었다 -이인선

    세상이 참으로 많이 변했다. 요새는 한국에서 돈많은 사람들이 미국에 유학이나 이민을 와서 오자마자 화려한 집을 일시불로 산단다. 렉서스, 벤츠 등 고급차까지 현금 일시불로 사고, 일도 안하고 명품 샤핑만 다닌다나. 여행부터 하고 미국 정착을 시작한다...
    Date2019.08.20
    Read More
  17. [추억의 조각] 노년 재혼, 완벽한 부부 이렇게 태어나다 -이인선

    아이구, 이 흥미 진진한 이야기를 어디서부터 이야기 해야할까요? 이런 때는 결론부터 해야죠. 한마디로 "이건 보통 인연이 아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참으로 유머스러운 분이시다."라고요. 저는 이 이야기를 듣고 너무나 재미있어서 두 시간 동안이나 웃었습...
    Date2019.08.13
    Read More
  18. [추억의 조각] 춤바람 -이인선

    영화 외에서는 춤이란 것을 구경도 못했던 내가 처음 춤바람이 났던건 대학교 일학년 때 일이다. 체육시간에 춤을 배워줘서 탱고, 지리박, 맘보, 차차차, 왈츠 등등의 춤을 출 수 있었는데 그걸 처음 써 먹은 것은 연극 공연 때문이었다. 연극이 끝나는 마지...
    Date2019.08.06
    Read More
  19. [추억의 조각] 웨딩샵의 하루 -이인선

    결혼을 일생에 한번하는 세대는 이제 다 가버린 것일까? 웨딩샵을 3년 하면서 구경한 세상 풍속도…한마디로 끝까지 간 모습들이다. 거룩하고 순결하여야 할 결혼이 땅에 떨어진 도덕 윤리의식으로 속되기 짝이 없다. 숫처녀 숫총각의 결혼은 아예 천연...
    Date2019.07.30
    Read More
  20. 한국에서 온 죠일린, 공주가 되다 -이인선

    우리가 두 돐이 안된 어린 딸과 갓난 아기 딸, 둘을 데리고 시카고 교외에 집을 사서 막 이사하는 날이었다. 어떻게 한국인이 이사 온다는 소식을 들었는지 뒷집 슈미트 부인이 쏜살같이 뛰어왔다. 오자마자 우리 딸들을 보더니 귀엽고 사랑스러워 어찌할 바...
    Date2019.07.16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Next
/ 6
롤링배너1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