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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변했고 그도 변했다. 서로가 다른 장소에서 삶의 궤적을 이어가는 동안 우리는 중앙 한 점을 향해 조금씩 움직인 것 같다. 그는 좌측으로, 나는 우측으로. 그의 목소리에는 뚜렷한 자신의 소신이 묻어 있었고 나는 목소리 높여 내 주장을 펼치기 보다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거나 미소를 지었다. 간간히 침묵이 흐를 때면 나는 그의 희끗해진 머리칼과 이마의 가는 주름과 한 두 개 막 피기 시작한 얼굴의 검버섯을 쳐다보았다.  

늦은 점심을 막 끝내고 그의 전화를 받았을 때 놀라움이 먼저였고 반가움은 그 다음이었다. 놀라기는 그도 마찬가지인 듯 했다. 

"기대없이 그냥 해봤는데. 정말로 너 맞아?"

지난 세월 동안 한결같은 내 전화 번호가 그와의 통화를 가능하게 했던 것이다. 그가 미국에 와 있다는 말은 뜻밖이었다. 어제가 그의 아들 결혼식이었다. 어딘데? 샌디에고라면 지척이었다. 나는 가게문을 닫고 두 시간 거리인 샌디에고로 바삐 차를 몰았다.     

저녁 식사치곤 좀 늦은 시간이었는지 식당에 사람이 많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안경을 끼고 있었다. 이십년이 넘는 세월이었다. 

한국을 떠나올 때 비행기표를 마련해 준 이가 그였다. 그것이 내가 그에게 받은 마지막 도움이었다. 마지막이라는 말이 민망스럽긴하다. 나는 그의 끊임없는 도움을 마다하지 않았다. 내가 싫다해도 그는 막무가내였을 테지만 그의 아버지가 한 짓에 대해 그가 양심의 가책을 느낄 필요는 없었다. 그러나 그는 그의 아버지와는 다른 세계에 있었다.

그의 아버지는 사업가였다. 규모만 다를 뿐 나의 아버지도 사업가였다. 아버지는 30층 건물을 소유한 회사에 물품을 조달하는 중소기업을 운영하고 있었다. 그의 아버지의 사무실은 27층에 있었다. 아버지의 조그만 회사가 막 커가고 있던 어느날이었다. 무슨 이유인지 나는 아버지를 따라 30층 건물로 들어서고 있었고 마침 그는 건물에서 나오는 중이었다. 그는 아버지를 보자 깍듯이 고개 숙여 인사했다. 아버지가 그를 나에게 소개시켜주지 않았다면 나는 그를 회사의  말단 직원정도로 생각했을 것이다.

그는 내가 발딛고 서 있는 건물의 회장 아들이었다. 아버지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고 나는 그와 일층 로비에 남았다. 통성명을 끝내자마자 그는 다짜고짜 우리 집에 가고 싶다고 했다. 머뭇거리는 나에게 배가 고파 쓰러질 지경이라고 말하는 그가 오랜 친구처럼 느껴졌다. 그날 그는 저녁으로 두부찌게와 고등어 조림으로 밥 두 공기를 비웠다.

2년 후 우리는 같은 대학으로 진학했다. 과는 달랐지만 우리는 자주 만났다. 그는 주로 도서관에 있었고 가끔씩 잔디밭에 앉아 데모를 구경하는 게 전부였다. 전경들에게 돌을 던지다 말고 나는 잔디밭에 앉아 있는 그의 곁으로 갔다.

"돌이라도 한 번 던지고 싶지 않아?"

"그런다고 뭐가 달라져?"

역사학도 답지않게 그는 독재자 현실에 냉담했다. 그의 머리는 세상의 온갖 혁명을 다 꿰고 있었을 테지만 나는 그에게 물었다.

"프랑스 68혁명 몰라?"

"그건 노동자 파업으로 이어졌잖아. 민중의 호응이 있어야지. 4.19의거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도 민중의 지지 때문이었어. 민중의 지지는 거세게 몰려오는 해일같은 거야. 너희들이 그 해일에 올라타지 않는 한 체제를 바꾸지 못해. 그러나 우리 국민은, 이만큼 살게 해줬다고 너희가 데모하는 독재자에게 얼마나 감사하며 살고 있는데."

아버지 회사가 무너진 때가 그 무렵이었다. 그의 아버지의 말 한 마디에 아버지 회사는 부도를 맞았다. 부품 하정업체가 그의 아버지를 신처럼 떠받드는 다른 회사로 대체되었던 것이다. 아버지는 시설 확장으로 들어간 자금을 회수할 길이 없었다. 아버지를 죽음으로 이끈 심장마비도 회사 부도와 무관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파트에서 쫓겨나 두 칸방 삭월세 집으로 옮겼을 때도 그의 방문은 계속 되었다. 대학은 더이상 다닐 처지가 아니었다. 휴학계를 내려고 행정실을 찾았을 때 직원이 물었다. 등록금 환불을 어떻게 해 드려요?  나는 도서관으로 달려갔다. 값싼 동정은… 하고 말하려는 데 그가 내 손을 잡았다. 나랑 같이 학교 계속 다니자. 그의 간절한 눈빛은 거부할 수 없는 진심을 담고 있었다.

그와 나는 함께 논산행 군용열차를 탔고 같은 해에 졸업을 했다. 그는 졸업과 동시에 중학교 교사로 발령이 났다. 30층 건물은 그의 안중에도 없었다. 그의 첫 근무 날 그와 함께 한 저녁 식사 자리에서 나는 그에게 부탁을 했다.

"미국행 비행기표 가능해?"

그는 이유를 묻지 않았지만 그의 얼굴에는 나를 붙잡지 못하는 안타까운 표정이 역력했다.

 그는 아버지와 연락을 끊으며 살고 있었다. 그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저항이라고 그는 '저항'에 힘을 주었다. 왕은 그를 받드는 사람이 사라지면 힘을 잃는다. 그 정도야 국사 선생인 그에게는 상식도 되지 않았다.

"너의 가정이 무너지는 것을 보면서 나는 많을 것을 생각했지. 왕같은 아버지를, 독재의 의미를. 그 당시 우리집에 반대하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었으면 아버지가 그리 쉽게 결정을 내리지는 못했을 거야."

자신이 지난 시절 못한 것을 학생들은 해 주길 바란다고 그는 말했다.

"그게 내가 선생이 된 이유야. 진리가 거부당하고 진실이 왜곡될 때 학생들이 꿈틀대길 원해. 자유가 억압 당할 때 학생들이 일어서길 바래."

무슨 이유인지 그가 하는 얘기들이 아득하게 들렸다. 한때 나는 그것들을 위해 내 몸 하나 희생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던지는  돌은 허공만 갈랐고 외치는 구호는 텅빈 메아리가 되어 돌아왔지만 세상은 변해야한다는 신념은 확고했었다. 지금 그때로 시계를 돌리면 돌을 던지고 구호를 외치는 장면은 떠오르지 않는다. 나의 질곡의 시대는 영원히 어둠 속에 묻힌 것인가.

내 입에서 툭 튀어 나온 건, 나도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대학 시절, 데모 대열에 끼어 구호 한 번 외치지 못한 것 후회하나?"

망설임없이 나온 그의 대답은 그러나 다른 곳으로 흐르고 있었다.

"내가 후회하는 건 아버지의 독재에 한 번도 저항하지 않은 것이야."

"지금 하고 있지 않아?"

"때늦은, 별 의미없는 저항이야. 너에게 미안할 뿐이지."

미안하다는 그에게 고마웠다고, 많이 고마웠다고 말하고 싶었는데  내 입에선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대신 비워진 맥주잔을 보며 손을 들어 웨이터를 불렀다. 왠지 많이 취할 것 같은 시간이 내 앞에서 꿈틀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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