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최고의 요리사!
며느리에게서 내가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고 자랑했더니 나를 잘 아는 사람들이 듣고 깔깔 웃었다. 비웃은 것이다. ㅎㅎ 실은 나도 말이 안되는 줄 안다. 그래도 신나서 혼자 흐뭇하고 즐거운 이야기다.
원래 나는 음식에 조예가 없다. 첫째는 관심이 없어서 이기도하고 내 입맛이 워낙 천성적으로 좋아서였기 때문일 것 같다. 싱거우면, 심심해서 맛이 있는 거야, 짜면, 짭짤해서 맛있는 거야, 하시던 우리 아버지는 한번도 맛이 있네, 없네, 반찬 타령으로 엄마를 괴롭힌 적이 전혀 없으셨다. 나는 그 아버지에 그 딸. 입맛 좋기가 심지어 아플 때도 밥을 잘먹는 사람이다. 더구나 부엌일 보다는 다른 할일을 더 먼저 하던 오랜 버릇 때문에 최소의 노력과 시간으로 최대 효과를 노리는 식으로 음식을 하니 정성부족으로 맛이 있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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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내가 입맛 까다로운 전라도 남편을 만난 것은 아무도 짐작 못할 곤란한 악재였다. 나는 가난한 사람은 아무거나 잘 먹는 줄만 알았다. 그리고 남자는 다 우리 아버지 표인줄 알았다. 세끼 밥 얻어 먹는 것만도 얼마나 감사한데, 자취 실력도 있어서 밥이라도 할 줄 아는 마누라 만난게 얼마나 다행으로 알아야 할텐데. 왜 번번히 음식 맛이 그렇게까지 중요한지 전혀 이해가 안되는 나. 당시 이쁜 새색시의 애교나 바가지 긁는 것으로 단숨에 입맛을 길들이거나 불평을 잠재울 수 없었다.
나중에 조금씩 이해를 하기 시작했지만 나만이 아니라 남편도 지대한 괴롬을 당했다고 보여진다. 전라도의 맵고도 짧짤한 맛을 집에서 결코 평생 얻어낼 수 없는 비운이라니! 그는 가끔 내가 처음 만들었던 경기도 식 김치에 당황했던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불곤한다. 마치 큰 죄악의 현장을 기억하듯이 ㅜㅜ
"글쎄, 배추조각 서너개가 물에 둥둥 떠있더라구요~"
과장도 그런 과장이 없다. 전라도는 배추를 꼭 짜서 물없이 김치를 담그는데 경기도에서는 국물이 넉넉한 것을 좋아한다.
남편에게 최대의 약점을 잡히고 시작한 우리 신혼은 한달에 한번은 음식문제로 부부 싸움을 해야 했다. 그래도 영 미련하지는 않아서 몇년의 시행착오를 거쳐서 음식에 짠 맛이라도 충분히 가미하면, 그리고 마늘 파 양념을 뭐든지 잔뜩 넣으면, 또 제일 중요한 고추가루를 범벅을 하면 눈가림이 된다는 정도는 알게 되었다. 그리하여 담백 깔끔한 경기도 식 맛은 요란한 전라도 맛에 완패! 40여년이 지난 지금 남편도 별 수 없이 마누라가 흉내낸 전라도 음식이 어설픈 식당 음식보다 더 좋다는 말을 할 정도로 내 솜씨에 길이 들었고. 다급하면 자기가 해먹는 회수가 점점 늘어간다. ㅎㅎ 더구나 최근에는 인터넷에 왠만한 음식은 만드는 법이 잘 나와 있어서 얼마나 좋은가!
그런데 우리 둘이는 그렁저렁 해먹고 살지만 교회 소그룹 모임이나 몇사람 추가로 더 모이는 음식을 하게 되는 날은 여지없이 덤벙대고 잘 못하기가 일쑤여서 내가 얼마나 엉터리 주부인지는 쉽게 들통이 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집에서 모이는 날이면 모두가 비상이 걸려 음식을 한그릇씩 들고 옴으로 도와주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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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큰 딸 집에서는 절대로 내가 하는 음식이 처음부터 환영을 받지 못했다. 몇 해 그집에 갈때마다 아무리 음식을 대령해 봐도 아무도 안 먹고 까탈을 부리길래 이제는 포기하고 아예 부엌에 들어 가지도 않는다. 차라리 사위가 해주는 밥을 얻어 먹고 편히 지내다 온다.
작은 딸 집에서는 몇년 전에는 그래도 먹어주더니 점점 더 내 음식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숨기지 않는다. 두 사위가 다 한국 사람이 아니어서 그런가? 애들이 커서 그런가? 왜 아이들을 그렇게나 까다롭게 키우는지 알다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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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런 내가 매년 한번씩 여름에 막내네 집에만 가면 크게 환영을 받게 되는 것이다. 해마다 점점 더 좋아한단다. 드디어 올해는 "어머니는 최고의 요리사!" 라는 언감생심의 칭찬까지 들은 몸이 되었던 것이다. ㅎㅎㅎ 그 집에서 좋아하는 음식은 요란한 요리가 아니다. 병어로 끓인 국, 꼴뚜기 젓갈, 우엉볶음, 콩나물, 생선졸임, 감자 볶음, 당근 볶음, 총각김치 등 아주 조촐한 순 한국식 음식들이다. 며느리가 한국 사람이라 그럴까? 매주 배달 되어 오는 채소를 소금으로 간해서 간단히 볶아주기만 해도, 무엇이든지 해 놓으면 "참 맛있어요. 어머니' 어떻게 만드는 거에요?" 하는 통에 나는 신이나서 음식을 해서 아침은 물론 점심 도시락까지 대령을 하게 되는 것이었다. 며느리만 아니고 아들 도시락 까지. 온갖 정성을 다해서. 아들은 "왜 옛날에는 엄마 음식이 맛있는지 몰랐을까?"하며 지 마누라 의견에 백프로 동의한다. 특히 꼴뚜기 젓을 너무나 좋아해서 많이 해서 얼려놓고 두고두고 먹게 해주고 온다.
여기까지 들은 내 친구는 "그것봐, 혹시 시어머니 부려먹는 수작이 아닐까?" 했지만 나는 확언한다. 진심이라는 걸. 부려먹히면 또 어떤가? 그렇게나 좋아하고 기뻐하는데. 나는 해마다 여름에 그 애들에게 가서 일류 요리사 흉내를 내는 것이 얼마나 기쁜지 아무도 내 심정을 모를 것이다. ㅎㅎㅎ 딴은 그 집에만 가면 점점 더 음식을 잘 해내는 것도 같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했던가? 아마 감사와 칭찬의 위력인지도 모른다. 재료비를 아끼지 않고 한국 식품점에서 무엇이든지 사다 주는 것으로 인터넷을 뒤져가면서 해주는게 무어 어려운가? 내가 만들어주는 음식을 좋아해주니까 우리 며느리가 얼마나 더 이쁜지 모른다. 음식 때문에 해가 갈수록 점점 가까와 지는 것 같으니 일석 이조 삼조! 한국 며느리 만세다! 이상은 평생 남편에게 무시당한 설움을 몽땅 풀어준, 막내아들 집의 행복한 여름 풍경이었다.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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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때문에 올해는 비행기 표를 사놓고 못가고 캔슬해 버렸다. 해마다 피서 겸 가는 보스톤 행을 못가고 길고 긴 여름 피닉스에 갇혀서 답답하기 짝이 없었다.
대신에 아이들이 손주 세명을 데리고 와 주었다. 집안에서까지 마스크를 다 쓰고 상대하는 이런 노릇이란! 그래도 고모를 부축여 하루 한끼씩 대접을 했더니 더 좋아한다. 고모랑 나랑 더불로 행복했다. 설마 내년 여름엔 갈 수 있겠지?
(2020년 9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