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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들과의 연결고리는 인일여고.

손을 꼽아보니 1962년도에 인천여중을 통하여 인일여고에 인연을 갖게 되었다. 1968년 졸업을 하고 서울로 대학을 갈때까지 인천에서 살게 된 것은 순전히 학교 때문이었다. 인천태생이 아닌 김포 양곡 출신인 내가 13년 살던 고향보다 인천이 더 고향 같은 것은 순전히 인일여고 때문이다. 미국에 인천 출신이 얼마나 많은지! 짠돌이 인천 사람들은 머리가 좋고 진취성이 많다고 생각한다.

인일여고는 건물 자체가 아름다와 자부심을 부축여 주었다. 경기도 원근의 뛰어난 여자 아이들이 몰려오는 상당한 수준을 자랑하던 학교를 다니는 것은 서울의 유명여학교들에 비교하면 시시하다고 할 수 있지만 한국적 배경에서 우물안의 특권이었고 자랑이었다. 아침마다 등교 길은 행복했고, 국내 어디서도 잘 찾아 볼수 없는 신식 원형교사 속에서 쉴새없이 떠들며 웃던 우리들의 젊은 한 때, 6년이란 세월은 그리도 순간같이 지나갔다. 고목이 다 되어버린 지금, 꽃봉오리 같던 그 시절을 회상해 보면 좋은 친구들과 선생님들과의 만남이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었다. 평생의 재산과 같은 것. 그때 6년동안 같이 지내던 친구들은 가족같고 형제 같다. 아무 형식도 체면도 차리지 않고 누구야! 하고 부를 수 있는 친 동기간. 친구들 이름이야 많아서 일일이 부를수 없지만, 선생님 중에 생각나는 분 중 첫째는 한번 내게 '예쁜 애!' 라고 불러 주셨던 서순석 선생님. 워낙 평범하고 자신없는 시골아이처럼 굴던 나는 선생님들과 친하게 지내는 아이들이 부럽기만 했었다. 하지만 평생 잊지 못할 그 한마디를 해 주신 선생님 덕분에 국어에는 남다른 관심과 좋은 성적을 유지하였다. 결국 S 미술대학에 당당히 입학하도록 거의 국어만점을 맞게 된 것은 서순석 선생님과 국어 선생님들 덕분이었다.

2006년 이맘때, 피닉스에 살던 내게 인일 홈피와의 만남은 내 인생의 큰 전기를 마련해 주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왜냐하면 글 쓰기를 시작했으니까. 내가 그림보다도 글쓰기를 좋아하는 것을 발견하게 된 것이 홈피에 들어가 쟁쟁한 동문들의 글을 읽고 고무되어 조금씩 옛 이야기를 들추어 쓰기 시작하고서 부터였다. 그때는 날마다 홈피에 들어가 살았었는데! 14년이 지난 지금, 이 동네 신문에 자주 글을 올리는 자신감도 갖게 되었고 조촐하나마 수필집 하나를 내기에 이르렀다. 고마운 인일여고 덕분이다.

그 전후 이렇게 저렇게 연결되어 동창들, 선후배들과도 만나 여행도 다녔다. 특히 엘에이 미주동문회에 자주 가서 화려한 동창회도 참석하고 즐겁게 몇해를 보낸 것을 생각할 때마다 흐뭇한 추억이다. 미국에 와서도 한번도 못입어 본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요란한 화장도 해보고, 춤추며 노래하며 사진을 찍으며 보낸 동창회의 밤들! 그날 찍은 사진들은 늙어가며 탄력을 잃은 중년 여자들을 삼십대로 환원시켜 주는 꿈을 이루어 주었다. ㅎㅎㅎ. 그 사진들을 이웃들에게 보여 주며 인일 여고 동창이라는 자랑을 얼마나 많이 했었던지!

내일 모레는 미주 인일의 자랑스런 김춘자 후배와 영자후배, 온희 회장, 친구 수인이 이렇게 넷이 엘에이에서 피닉스 우리 집까지 잠시 방문한다고 한다. 6년전에 내가 암투병을 할 때도 그 먼길을 마다하지 않고 와서 평생 받아보지 못한 사랑을 흠뻑 덮어 씌워주던 춘자후배 일행. 지금은 자기도 암투병하면서 최근 재발 암과 싸우는 나를 위해 격려차원에서 들른단다. 이런 깊은 정을 어디서 찾아볼 수가 있을까! 아무리 자랑해도 부족한 인일 선후배의 사랑! 이런 격려에 힘을 입어 나는 포기하지 않고 다시 일어나련다. 생명의 주인께 매달림으로...

...............................

(며칠후 계속)그녀들은 우리 집을 들러 세도나의 멋진 삼박사일을 지내러 갔었다. 오늘쯤은 이미 엘에이 집으로 갔으려니 했었는데 오늘 아까 전화가 오기를 가는 길에 또 우리집까지 와서 문 밖에 꽃을 놔두고 그냥 갔다는 것이었다. 세상에! 전화를 받고 뛰어나가 보니 오키드 화분 셋을 두고 간 것이었다. 며칠전 왔던 날이 마침 나의 생일이었던것을 알고 나서 꽃을 더 가져 온 것이었다. 이미 그날 맞춤 영양 찹쌀 떡과 장준 감을 한 보따리 싸 들고 선물이랑 가져 왔었다. 나는 마침 생일이었고, 뜻깊은 방문의 선물 받았다고 진심으로 고맙다고 했는데 무에 부족하다고 꽃까지!! 항상 풍성한 손길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그녀들을 통하여 부어주시는 빛들의 아버지의 마음일까! 두고두고 감사한 마음으로 회상할 것이다.

---각양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 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약1:17}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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