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특수교사를 시작한 곳은 프리 스쿨이었다.
잠깐 동안이었지만 미국 교육과 한국 교육의 극명한 차이를 확실히 경험할 수 있는 기회였다.
미국의 프리 스쿨은 3살에서 5살 사이의 유아들이 다니는 곳이다.
5살부터는 유치원에 입학하게 되고, 미국에서는 유치원부터 초등학교 교육의 시작이므로 사실 미국의 프리 스쿨은 우리나라로 치자면 유치원이나 유아원 또는 놀이방 정도의 위치라고 보면 되겠다.
나에게 가장 큰 충격을 주었던 것은 바로 프리스쿨 교과서에 실린 동화의 내용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미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마치 우리나라로 치자면 '흥부와 놀부', '혹부리 영감', '심청전' 같은 종류의 전래동화이다.
제목은 "The Little Red Hen", 우리말로 하자면 "작은 빨강 암탉"이다.
대충의 줄거리는 한 집에 개, 고양이, 쥐 그리고 암탉이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암탉이 집안일을 하다가 밀씨앗을 발견하고는 집안에 있는 동물들에게 함께 밭에 씨앗을 심자고 제안한다.
그런데 게을러터진 개, 고양이 그리고 쥐는 다 거절한다.
할 수 없이 암탉은 혼자서 씨를 심고, 가꾸고 드디어 추수를 한다.
이 과정에서 암탉이 함께 하자고 여러 번 제안했지만 매번 게으름뱅이들은 거절했다.
드디어 암탉이 추수한 밀을 탈곡하여 그것으로 맛있는 케잌을 굽는다.
고소한 케잌 냄새를 맡은 동물들이 부엌으로 몰려와 좀 달라고 하자 암탉은 매정하게 "내가 심고 가꾸고 요리 했으니 내가 다 먹는다!"라고 선포하고는 한 조각도 남김없이 다 먹어 치운다는 내용이다.
나는 3살에서 5살 유아들이 읽는 동화이므로 훈훈하게 암탉이 자비를 베풀며 "다음부터는 함께 힘을 합쳐 일하자."하며 나누어 먹는 결말을 기대했었다.
그런데 이게 웬말인가? 나눠 먹기는 고사하고 암탉이 개, 돼지, 쥐를 약 올리듯이 혼자 케잌을 다 먹어치운다는 마무리에 "콩 한쪽도 나눠 먹자"라는 우리 나라 정서와는 참 많이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정(情)이 없다고나 할까?
무엇보다도 이런 내용의 동화를 꼬마들에게 가르치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를 한참 생각하게 되었다.
두 번째로 나를 깜짝 놀라게 했던 동화는 공립학교의 ESL 학급에서 잠시 실습을 했을 때였다.
그 당시 3학년 학생들이 "Three Billy Goats Gruff" 우리말로 하자면 "그러프라고 불리우는 세 마리의 염소"라는 전래 동화를 가지고 일주일 넘게 각양 각색의 활동을 하고 있었다.
이 전래동화도 미국 사람들에게는 꽤 유명한 동화이다.
그런데 이 동화 내용 또한 형제우애(友愛)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나에게는 도무지 용납이 되지 않는 내용이었다.
줄거리는 이러하다.
그러프라는 이름의 염소 삼형제가 강 건너편에 살고 있었는데 먹을 풀이 점점 떨어져가고 있는 참에 강 반대편을 보니 그곳은 초원이 푸르고 먹을 것이 풍성해 보였다.
그런데 시냇가를 건너려면 다리를 지나야 하는데 다리 밑에는 못생기고 난폭한 괴물이 살고 있었다.
맨 먼저 막내 염소가 다리를 건너며, "저를 잡아먹지 마세요. 저 다음에 오는 형이 훨씬 포동포동 하니까요."라고 말해 괴물에게 잡아 먹힐 위기를 모면했다.
다음으로 둘째가 다리를 건너며, "저를 잡아먹지 마세요. 저 다음으로 오는 우리 형이 훨씬 포동포동하고 살이 많아요." 라고 말해 위기를 모면했다.
마지막으로 큰 형이 다리를 건너는데 괴물이 나타나자 큰 형은 용감하게 뿔로 괴물을 들이 받고 다리로 걷어 차 괴물은 물에 빠지고 무사히 양지바른 시냇가 건너편으로 갈 수 있었다는 내용이다.
나에게 충격을 주었던 내용은 바로 막내와 둘째가 나 대신 다음에 오는 형을 잡아 먹으라고 하는 대목이다.
불쑥 아무리 동화라지만 "이건 아니지!" 라는 생각이 솟구쳤다.
갑자기 예전에 초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실린 동생이 밤에 몰래 형의 곳간에 쌀가마니를 가져다 놓고, 다음날에는 형이 동생 몰래 동생의 집에 쌀가마니를 가져다 놓는다는 훈훈한 내용의 전래동화가 생각났다.
물론 다행이 큰형이 힘이 몹시 세서 괴물을 물리치고 시내 건너편 낙원에 무사히 도착했지만 너무 정(情)이 없고 도전정신만 강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작은 빨강 암탉"에서는 일한만큼의 정당한 대가를 강조하기 위해, 그리고 "세 마리의 숫염소" 에서는 어려움을 이겨내는 도전정신에 대해 가르쳐 주기 위해 교육과정에 이 이야기들을 수록한 것은 이해가 된다.
그리고 이것을 통해 미국 교육에서 어떤 가치와 덕목을 중요하게 여기는지를 알게 되었다.
그런데 역시 한국적인 정서를 지녀서 인가?
이 동화들이 좀 매정하고 차갑게 느껴진다.
뭔가 함께 문제를 해결하기 보다는 각개전투(各個戰鬪)로 위기를 극복하려는 것 같아 거리감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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