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연말연시는 바쁘지만 올 해는 더 바빴습니다. 바쁜 것을 분산시켜보려 교회 성탄 축하 행사를 12월 초로 앞당겼는데도 오히려 더 바빴습니다.
이유는 교회에 중간급 정도의 공사가 있었습니다. '중간급'이라 했는데, 나 혼자 하기에는 벅차고 일하는 사람들을 구해서 돈 주고 하기에는 좀 아까운 일을 말합니다. 주차장 가로등 공사였습니다.
교회 주차장 가로등이 오랫동안 들어오지 않고 있었습니다. 두 개가 있는데 하나는 교회 건물을 구입할 때부터 들어오지 않았고, 다른 하나는 안 들어온 지 일 이년 된 것 같습니다.
올 해 5월에 한국에서 100주년기념교회 이재철 목사님을 모시고 교회 창립 15주년 말씀 집회가 계획되어 있어서 그 준비로 가장 시급한 것이 가로등 공사였습니다. 주말 밤 집회로 열릴 것인데, 70 여대 주차할 수 있는 교회 주차장이 꽉 찰 것이라 예상하여 주차장을 잘 정비해놓아야만 했습니다.
건물 구입 후 주차장에는 손 댈 여력이 없어서 그대로 방치된 상태였는데, 그 동안 밤에 모이는 모임 후 돌아가면서 가벼운 접촉 사고가 몇 건 있었습니다. 가로등이 없어서 뒤로 후진할 때 보이지 않기 때문이었죠.
그래서 이재철 목사님 말씀 집회를 앞두고 가장 먼저 손을 댄 것이 가로등 공사였습니다. 마침 LA에서 건축 선교하시는 목사님들이 이곳에 오실 일이 있다 하여서 그러면 오셔서 좀 도와달라고 하여 그분들 일정에 맞춘 것이 연말연시 가장 바쁠 때였습니다.
일주일 전부터 준비 작업을 했습니다. 마침 방학을 맞아 집에 와있던 둘째 아이를 데리고 땅을 팠습니다. 1피트 깊이로 거의 350피트를 팠습니다. 전선 줄을 묻기 위함이지요. 그리고 가로등을 세울 구덩이를 거의 사람 키의 2/3만큼 깊이로 가로 세로 4피트 정도 팠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힘든 것이 땅 파는 일이라고요(?), 과연 그렇습니다! 둘째 아이가 아빠 이제는 집에 안 온다고 하더군요. 그래도 듬직했습니다.
재료들을 준비하고 선교팀이 도착하기 하루 전 날, 주일이었습니다. 친교 후 남자 교우들에게 목장갑을 하나씩 주고 모두 밖으로 나오라고 했습니다. 10여 명이 가로등 주위에 둘러 섰습니다. 경험 있으신 남선교회 어른 교우가 가로등 밑에 콘크리트에 박혀 있는 볼트의 너트를 돌려 풀었습니다. 아마 20년도 넘게 고정되어 있는 볼트와 너트여서 그랬는지 '굉장히' 힘들었습니다. 30 여 분을 햄머로 두드리고 기름 바르고 공구를 사와서 돌리고 ……. 반복하고 반복하여 결국 풀었습니다.
순간 가로등이 옆으로 쓰러지는데, 미리 준비를 하고는 있었지만 모두 당황했습니다. 쓰러지는 가로등을 10여 명이 덤벼들어 붙잡았는데, 저는 목사로서 눈 앞이 깜깜했습니다.
남선교회장은 '고자가 될 뻔 했다고' 우스개 소리를 했지만 정말 위험한 순간이었습니다. 보통 기중기가 와서 붙잡아 들어올려야 하는 일을 사람 손으로 한 것이니, 참 무식한 것인지 용감한 것인지 …….
친교실에서 담소 나누며 지켜보고 있던 여선교회 교우들도 깜짝 놀랐다고 합니다. 모두 자기 남편들이고 아들들이고 하니 그렇겠지요.
어쨌든 그렇게 쓰러뜨린 가로등을 새로 세울 장소로 함께 들고 가는데 군에 갔다 온 교우가 '유격대 봉체조' 하는 것 같다고 하시며 '키 작은 사람 유리하겠다' 하시는데 저는 키가 작았습니다(ㅎㅎ).
일을 다 끝내고 친교실로 들어오자 여선교회 교우 한 분이 "거미줄로 묶어 나르는 것 같았어요" 했습니다. 몇 주 전 설교에서 "거미줄을 모으면 사자를 묶는다"는 아프리카 속담을 인용했었는데 그것을 그대로 써먹는 것이었죠.
정말 한 사람 한 사람 거미줄 같았습니다. 작은 힘이지만 합쳤더니 크레인으로 해야만 하는 일을 우리가 해낸 것입니다.
또 저를 바쁘게 만들었던 일은, 매 년 하는 일이지만 교우들에게 성탄 카드 보내는 것입니다. 요즘은 카톡으로 많이 하는데, 저는 일 년에 한 번 성탄 카드만은 직접 손으로 써 보낸다는 것을 고집하고 있습니다. 그것마저 하지 않으면 목사로서 교우들에게 불충한 것만 같아 그렇게 합니다.
가정 당 한 통씩 30여 통을 보내야 하는데, 형식적인 인사말로 한 두 문장 쓸 수는 없습니다. 몇 해 전에는 저희 가족 사진으로 만든 성탄 카드를 사용해 간단한 인사말 한 두 문장 썼었는데, '이건 아니다'는 생각이 들어 원래 방식대로 하고 있습니다.
물론 기본 인사말 대 여섯 가지를 기본 틀로 합니다. 그러나 한 가정 한 가정 삶의 내용이 다르기에 다 다른 글을 쓰게 됩니다. 또 모든 가정 공평하게 하기 위해 전체 길이를 서로 엇비슷하게 해야 하고 ……, 참 쉽지 않습니다. 카드 당 여섯 내지 일곱 문장을 쓰게 되는데, 30 여 통을 그렇게 하다 보면 한 편의 단편 소설을 쓰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카드에서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발견했다'고 하는 교우들을 보면 감사하고 보람을 느낍니다. 부족한 저의 글 솜씨를 통해 하나님이 한 가정 한 가정을 회복시키시고, 저들에게 새로운 꿈과 위로를 전하시는 것에 감사합니다. 또 카드 한 통 한 통이 모든 교우들을 하나로 묶어 함께 걸어가게 한다는 사실에 감격합니다.
경제 사정이 아직 넉넉히 회복되지 않은 상태이어서 힘겹게 연말연시를 보내고 있지만, 서로 섬기고 서로 돌아보고 서로 먼저 희생하려 하는 교우들을 볼 때 마음이 훈훈해집니다.
"거미줄을 모으면 사자를 묶는다."
네, 그렇습니다! 함께 하면 무엇인들 못하겠습니까? 어려울수록 더 사랑하고 더 함께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