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1949년에 태어났습니다. 그 시절 시골 아낙네들은 봄이면 으레 나물 캐러 다녔습니다. 오직 생존을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저는 농경, 산업, 지식정보시대를 거쳐 지금은 정말 첨단 과학의 바이오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60년대까지만 해도 필리핀을 이상향으로 삼던 이 나라가 이제는 필리핀이 결코 넘볼 수 없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라디오 하나 만들지 못하던 이 나라의 전자회사들이 온 세계를 석권하고 있습니다. 해마다 보릿고개가 되면 먹을 것이 없어 초근목피(草根木皮)로 연명하던 이 나라에 지금은 먹을 것이 남아돌고 있습니다. 8.15, 6.25, 4.19, 5.16, 10.26, 12.12, 5.18, 6.10 등, 숫자로 대변되는 민족적 격랑과 정치적 소용돌이를 수없이 거치면서도 민주화와 산업화를 동시에 이루었습니다. 지난 몇 십 년 동안 한국인을 제외하고는, 어느 나라 그 누구도 경험할 수 없었던 상상을 초월하는 눈부신 발전이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나라 우리 민족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을 입었음이 분명합니다. 인간의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섭리가 아니고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일이 우리 생애에 이 땅에서, 우리의 눈앞에서, 우리의 삶 속에서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해방 이후 우리나라에는 현재까지 총 열 분의 대통령이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내각책임제 시절의 대통령과 과도기 시절의 대통령 두 분을 제외하면, 대통령으로 실제 권한을 행사한 대통령은 여덟 분입니다. 그중에서 전직 일곱 분에 대한 국민이 평가는 그리 후하지 않습니다. 이념과 지역과 계층을 초월하여 전 국민의 사랑과 지지를 받는 전직 대통령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러나 한 나라와 민족의 역사를 주관하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우리가 진정으로 믿는다면, 어떤 대통령이 어떤 과정을 통해 대통령이 되었든, 그를 그 시기의 대통령으로 세우신 분이 하나님이심을 우리는 인정해야 합니다. 이 사실을 받아들이고 우리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각 대통령마다 그 시대의 분명한 역할이 있었음을 알게 됩니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은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을 건국하고 6.25전쟁으로부터 나라를 지키는 것이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대대로 이어져 오던 가난의 사슬을 끊고 경제개발의 막을 올리는 것이었습니다. 전두환 대통령은 박정희 대통령 시대에 시작된 경제발전을 연착륙시켜 결실을 거두는 것이었습니다. 노태우 대통령은 군사독재 정부에서 민주 정부로 이양되는 연결고리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김영삼 대통령은 정치군인집단인 하나회를 숙청하여, 이 나라의 역사에 군인이 다시는 총칼로 정권을 탈취하는 일이 없도록 쐐기를 박는 것이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그동안 정치적으로 홀대받던 호남인들의 긍지를 높이고, 북한 인민은 타도의 대상이 아니라 함께 살아야 할 동족임을 각인시켜 주는 것이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사회 각계각층의 권위주의를 타파하고 소외 계층에 대한 관심을 확충하는 것이었습니다. 만약 '물태우' 소리를 들을 만큼 마음이 유연했던 노태우 대통령이 그때 대통령이 아니었더라면, 군사독재 정부가 민주정부로 이양되기까지는 더 많은 세월과 더 많은 대가를 필요로 했을 것입니다. 노태우 대통령 이후에 경상도 출신의 김영삼 대통령보다 호남 출신의 김대중 대통령이 먼저 대통령이 되었더라면, 호남 출신인 김대중 대통령이 경상도 출신의 정치군인 집단을 숙청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전직 대통령들을 당신의 방법을 통해 폐하시거나 재임 기간 중 국민의 격렬한 저항을 받게 하시면서도, 그분들로 하여금 자기 시대의 역할을 다하게 하셨습니다. 그 결과 우리는 불과 몇 십 년 만에 농경시대에서 첨단 과학의 바이오시대에 진입하면서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룬 세계 유일의 나라, 유일의 민족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바로 그 연장선상에서 이명박 현 대통령의 시대적 역할이 무엇인지 읽을 수 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경제를 살리자'는 구호로 제17대 대통령에 당선되었습니다. 그리고 기업인 충신 대통령답게 경제적으로 더 부유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난 역사의 연장선상에서 보면, 단순히 경제적으로 잘살자는 것은 이 시대의 명제가 아님을 알게 됩니다. 그것은 '잘살아 보세'라는 박정희 대통령의 시절로 되돌아 가는, 과거 지향적 발상입니다. 우리나라가 과거의 연장선상에서 보다 선진화된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이 시대의 명제는 '바르게 살기'입니다. 잘사는 것보다 바르게 사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잘사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될 때 인간은 더 잘살기 위해 하나님의 공의를 짓밟기 마련이고,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공의를 짓밟는 나라와 민족을 끝내 폐하신다는 것이 성경의 교훈인 동시에, 하나님의 섭리 속에 있는 인류 역사의 교훈이기도 합니다. (중략)
그런데 오늘날 우리의 실상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조차도 오직 세 가지에 집착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돈이요, 둘째는 자기 자신이요, 셋째는 자기 자식입니다. 더 많은 돈을 얻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자기 자신과 자기 자식을 위해 편법과 탈법과 불법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자기 자식을 위해 남의 집 자식에게 불이익이 돌아가게 하는 일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돈, 자신, 자식으로 꽉 차 있는 인간의 심령 속에 하나님께서 주인으로 거하실 틈이 있을 리 없습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은 단지 그것들을 지키기 위한 도구일 뿐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람들이 돈, 자신, 자식을 위해 하나님의 공의를 짓밟고서도 그 사실을 깨닫지도 못하는 것이 오늘 우리의 현실입니다. …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그들이 요구한 것을 그들에게 주셨을 지라도 그들의 영혼은 쇠약하게 하셨도다"라는 시편 106편 15절 말씀과 같이 우리 자신은, 우리 자식들은, 이 민족은, 이 나라는, 바로 그 번영 때문에 하나님을 잃은 채 영혼이 쇠약해지다가 본문의 사울 왕조처럼 끝내 몰락해 버리고 말 것입니다. 하나님의 공의를 짓밟는 민족과 나라와 집단은 반드시 폐하신다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이기 때문입니다.
김찬홍 목사(주찬양교회)가 이재철 목사의 허락을 받아 이재철 목사의 책 『사도행전 속으로, 제 7권』 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