닉 테일러(36·캐나다)가 생애 처음으로 PGA 투어 WM 피닉스 오픈을 제패했다. 하루에만 32개 홀을 돈 강행군을 이겨내고 포효했다.
테일러는 11일 아리조나주 TPC 스카츠데일에서 열린 대회 최종라운드에서 찰리 호프만(48·미국)을 꺾고 정상을 밟았다. 마지막 18번 홀(파4)에서 극적으로 버디를 잡아 호프만과 21언더파 263타 동타를 이룬 뒤 2차 연장전에서 쐐기 버디를 낚아 파를 기록한 호프만을 제쳤다. 우승 상금은 158만4000달러(약 21억원)다.
‘골프 해방구’라고 불리는 WM 피닉스 오픈은 다른 PGA 투어 정규대회와 달리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치러진다. 특히 파3 16번 홀은 최대 2만명의 관중이 빙 둘러앉아 홀을 볼 수 있게 세팅돼 과거 로마제국의 콜로세움과도 비교된다. 여기에선 갤러리의 함성과 야유는 물론 음주까지 허용된다. 나흘간 수만명의 구름관중이 몰리는 이유다.
그러나 올해 대회에선 날씨가 따라주지 않았다. 대회 내내 많은 비가 내려 플레이 진행이 더뎠다. 1라운드부터 3라운드까지 제대로 경기를 마치는 날이 없을 정도였다. 대회 마지막 날은 3라운드 잔여 경기와 4라운드 그리고 연장전까지 치르느라 7시간이 넘게 걸렸다.
이처럼 악재가 잇따른 이번 피닉스 오픈을 살린 주인공은 테일러와 호프만이었다. 연장 접전 명승부로 열기를 되살렸다.
이날 최종라운드를 클럽하우스 리더로 먼저 마친 선수는 호프만이었다. 이글 1개와 버디 6개, 보기 1개로 7타를 줄여 21언더파를 작성한 뒤 혹시 모를 연장전을 대비해 연습 레인지에서 몸을 풀었다. 우승은 가까워진 듯했다. 챔피언조가 17번 홀(파4)을 마쳤을 때까지 계속 1타 리드를 잡았다. 그러나 앞서 버디만 5개를 잡은 테일러가 18번 홀에서 3m짜리 버디 퍼트를 성공시키면서 호프만과 동타를 이뤘다. 오른쪽으로 빠질 뻔했던 공이 벽을 타고 컵으로 빨려 들어가자 테일러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연장전은 같은 18번 홀에서 치러졌다. 1차전은 모두 버디를 기록한 테일러와 호프만의 무승부. 다시 티잉 그라운드로 돌아온 둘은 티샷에서 희비가 갈렸다. 호프만은 코스 왼쪽 벙커로 공이 빠진 반면, 테일러는 티샷이 벙커를 맞고 튀어나와 러프로 향했다. 승기를 잡은 테일러는 세컨드 샷을 컵 옆으로 붙였다. 호프만도 투 온에는 성공했지만, 8.6m짜리 버디 퍼트를 놓쳤다. 이를 지켜본 테일러는 3.5m짜리 버디 퍼트를 집어넣어 포효했다.
1988년생인 테일러는 캐나다 골프의 희망으로 불린다. 지난해 6월 RBC 캐나다 오픈에서 우승하며 홈팬들로부터 뜨거운 지지를 받았다. 캐나다 선수로서 무려 69년 만의 정상 등극으로 캐나다 국민들의 숙원을 풀었다는 극찬을 들었다.
전날 3라운드를 6번 홀까지만 쳐 마지막 날 잔여 12개 홀과 최종라운드 18개 홀, 연장 2개 홀 등 모두 32개 홀을 뛴 테일러는 “힘든 경기였다. 그래도 마무리는 정말 꿈같았다. 꼭 필요할 때 버디 퍼트가 떨어졌다”고 웃었다.
1976년생으로 타이거 우즈(49·미국)보다 한 살 어린 호프만은 “테일러에게 경의를 표한다”는 말로 통산 5승째를 놓친 아쉬움을 대신했다.
다만 호프만은 이번 준우승으로 페덱스컵 랭킹을 끌어올린 덕분에 '특급 대회' 제네시스 인비테이셔널에 출전할 자격을 획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