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영화 '미나리(Minari)'가 2월 12일(금)부터 아리조나 영화관에서 일제히 개봉하고 현재 상영 중이다.
윤여정·한예리·스티븐 연 등이 출연한 영화 '미나리'는 골든글로브를 비롯한 140여개 영화제에서 수상 후보에 올랐다. 2월10일 기준으로 수상한 상만 61개. 4월25일 열릴 9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음악상과 주제가상 부문 예비후보에 올라있다.
영화 '미나리'는 정이삭이 감독과 각본을 맡았다. 2020 선댄스 영화제 미국 극영화 경쟁부문 심사위원 대상·관객상 수상작이기도 하다.
줄거리는 1980년대 미국 아칸소로 이주한 한인 가정의 이야기이다.
제이컵(스티븐 연)은 캘리포니아에서 병아리 감별사로 일하다 비옥한 땅에서 새 출발을 하겠다며 아칸소의 시골 벌판에 트레일러 집을 마련하고 땅을 일궈 한국 채소들을 기른다. 남편의 뜻을 따라 아칸소에 오긴 했지만, 아내 모니카(한예리)는 아이들을 위해 캘리포니아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 모니카의 엄마 순자(윤여정)가 부부를 돕기 위해 한국에서 오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다루고 있다.
해외 유명 배우와 영화제에서는 '미나리'에 대한 찬사를 쏟아내고 있다. 선댄스 영화제 기간 동안 심사위원이었던 에단호크는 '미나리'에 대해 "최고의 영화, 모두가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봉준호 감독은 지난해 12월 정이삭 감독과의 화상대담에서 "이 영화가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향수로 버무리지 않았다는 점"이라고 평했다. 봉 감독은 "(미나리는) 다양한 캐릭터들의 시점을 따라가며 나레이션이나 해설도 넣지 않았고, 이 정도의 거리를 유지한 것이 영화를 더욱 아름답고 보편적으로 만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처럼 영화계에서 화제의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미나리'를 제작한 주인공은 아리조나 출신의 한인 크리스티나 오(Christina Oh, 한국명 오진실) 프로듀서다.
영상제작사 '플랜 B 엔터테인먼트'에서 활동하고 있는 크리스티나 오 프로듀서는 아리조나에서 비즈니스를 하는 오태근 장로와 권준희 권사의 딸이기도 하다.
보스톤에서 태어나 중학교 때부터는 학창시절을 줄곧 아리조나에서 보낸 크리스티나 오 프로듀서는 2006년 투산의 University of Arizona로 진학해 의사의 꿈을 키웠다.
평소 아이들을 좋아하고 남을 돕는 것에도 관심이 많아 소아과 의사가 되려고 했던 크리스티나 오 프로듀서는 대학교 2학년에 올라가면서 인생의 진로를 크게 변경하는 결정을 한다.
영상제작 업계에서 일하겠다는 꿈을 품기 시작한 것.
미래의 진로를 완전히 수정하게 된 배경에는 아버지 오태근 장로의 영향이 컸다.
중앙대에서 연극영화를 전공했던 아버지는 이민오면서 아이들을 키우고 가정을 돌보느라 자신의 원래 꿈인 연기자의 길을 걷지 못했고, 딸이 의사가 아닌 영화계에서 일하고 싶다는 뜻을 확인하자 적극적으로 나서 이를 도왔던 것이다.
어머니에게는 숨기고 아버지와만 상의해 전공도 미디어로 바꾼 뒤 3년 반만에 조기졸업한 크리스티나 오는 캘리포니아로 보금자리를 옮겼고 2011년부터 플랜 B 엔터테인먼트사에서 본격적으로 프로듀서로서 활동을 시작한다,
플랜 B는 2001년 헐리우드 톱스타 브래드 피트와 그의 전처 제니퍼 애니스톤이 함께 설립했고 현재는 데이디 가드너와 브래드 피트가 공동회장을 맡고 있는 회사다.
플랜 B는 더 디파티드, 노예 12년, 문라이트 등 아카데미 수상작과 트로이, 챨리와 쵸콜렛 공장, 머니볼, 월드 워 Z, 트루스토리 등 수많은 히트작을 배출한 유명 제작사로 헐리우드에서 명성이 높다.
크리스티나 오 프로듀서는 킬링 뎀 소프틀리, 월드 워 Z, 더 빅 숏, 노예 12년, 더 로스트 시티 오브 Z, 워 머신 등에서 협력프로듀서로 경험을 쌓은 뒤 2016년 봉준호 감독이 만든 헐리우드 영화 '옥자'에서 책임 프로듀서로 제작 전반을 총괄하게 된다.
'옥자' 촬영 당시 한국말로 봉준호 감독과 소통을 잘 할 수 있는 프로듀서가 필요했던 것이 크리스티나 오 씨가 책임프로듀서로 커리어를 쌓을 수 있는 좋은 발판이 됐다.
이후 2편 더 영화 제작에 참여했던 그는 2018년 개봉된 영화 '더 래스트 블랙맨 인 샌프란시스코', '더 킹'에 이어 TV 시리즈 '레고 마스터즈' 그리고 2019년작 '일리지스터블'까지 연이어 쉬지 않고 일하며 헐리우드 영화계 내에서 이름 있는 프로듀서로서의 자리를 공고히 했다.
그리고 2020년에 다시 한 번 스스로 제작을 진두지휘해 영화 '미나리'를 탄생시킨다.
미국으로 온 한인이민가정의 이야기가 과연 흥행에 성공을 거둘 수 있을까 하는 우려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자신 스스로도, 그리고 정이삭 감독 역시 미국 한인이민가정에서 자랐던 경험을 영화 속에 잘 녹여낸다면 승산이 있다는 생각에 크리스티나 오 프로듀서는 과감하게 제작 결정을 내리고 정이삭 감독과 의기투합해 크랭크 인에 들어갔다.
결국 크리스티나 오 프로듀서의 결정은 대성공으로 열매를 맺었다.
영화 '미나리'는 크리스티나 오 프로듀서에게는 또다른 의미를 지닌 작품이기도 하다.
부친인 오태근 장로가 영화 속에 출연하기 때문.
오태근 장로는 영화 1시간 37분 즈음에 한국마켓 주인으로 주인공 스티브 연과 대화를 나누는 장면에 등장한다.
2분 여간 짧막한 씬이지만 아칸소주로 이주해 농장 개간을 시작한 뒤 계속 어려움을 겪던 스티브 연 가족이 재배한 채소를 처음으로 마켓에 납품할 수 있게 된다는 희망을 주는 장면이어서 영화 전개상 중요한 씬이다.
오태근 장로는 '미나리'가 독립영화인 탓에 자금지원이 충분치 않은 것을 알았고 딸의 권유도 있었던 터라 찬조출연을 결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 장로는 2019년 2박 3일 일정으로 촬영장을 찾아 자신의 씬을 찍었다.
또한 영화 '미나리'의 로고는 크리스티나 오 프로듀서의 오빠인 제이 오(한국명 오재혁) 씨가 제작해 역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정이삭 감독은 영화 엔딩크레딧에 제이 오 씨 부부의 이름을 넣어 특별한 감사를 전했다.
디자인을 전공한 제이 오 씨는 영화 '옥자'의 로고도 만든 바 있다.
권준희 권사는 "영화계에 대한 안좋은 이미지를 갖고 있어서 딸이 그쪽 분야에서 일하는 걸 처음엔 반대했었다"며 "하지만 딸이 '여러 방면에서 하나님의 좋은 영향력을 사람들에게 끼칠 수 있고 나는 이쪽을 택한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마음을 바꾸게 됐다"고 말했다.
영화관을 찾아 다시 '미나리'를 감상한 뒤 엔딩크레딧에 남편과 아들 부부 그리고 딸의 이름이 올라올 때 솔직히 뿌듯했었다는 권준희 권사는 "우리 이민가정의 이야기를 영화가 담고 있어 아리조나 한인분들도 많이 공감할 거라 생각한다"고 말하며 영화를 추천하고 "저희 딸의 행보가 아리조나 한인 청소년들에게도 좋은 도전의 본보기로 비추어 질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덧붙였다.
어려서부터도 겸손했던 딸이 조용히, 하지만 차근차근히 자신의 커리어를 훌륭하게 쌓아가는 것이 대견하다는 권준희 권사는 "딸아이가 하는 일을 통해 하나님에겐 영광, 딸에겐 보람, 이웃들에게는 선한 영향력이 될 수 있기를 바라는 게 요즘 기도제목"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