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Z 포스트::독자투고
조회 수 131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new76899273.jpg

 

 

1. 이민생활의 첫 관문

74년, 미국에 처음와서 제일 먼저 넘어야할 관문은 운전면허 시험이였다.

운수업을 얼마간 하시던 아버지 덕에 버스나 트럭은 남보다 일찍 타 보기는 했지만 자가용 승용차는 특별한 부자나 굴렸던 시절, 내 25년 한국살이 기억에 한번도 타본 적이 없었으니 운전이란 나와는 상관이 없는 일, 억센 남자들이나 직업으로 하는 일로 생각하던 때였다.

미국에 와 보니 왠만한 사람은 다 운전을 하고 있었고 똥차라도 자가용을 안 가지고 있는 사람도 없었다. 

차가 없으면 너무나 불편한 생활 동선이기 때문에 한두번 버스타고 시장을 다녀 오고 나선, 양쪽 팔로 짐을 나르는게 너무 힘들어 꼭 차를 사야하고, 운전을 꼭 해할 필요성을 절감했던 그즈음.

어느날 남편은 처음 만난 이웃 이탈리안에게 운전 필기시험 보는데 좀 데려다 달라고 부탁을 했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시험공부는 커녕 운전법규 책도 아직 구경 못한 상태였다. 

떨어져도 좋으니 무조건 가자는 것이었으니, 준비없이 무얼하기 싫은 내 성격엔 아연실색했던 일이었다. 물론 보기좋게 둘 다 떨어졌을 밖에. 

그때까지는 한번도 시험에 떨어져 본 일이 없었는데 세상나서 처음이었다. 준비 안된 채 시험을 본다는 게 말도 안되고 낯 뜨거운 일이었는데, 왜 남에게 헛걸음 시키냐고 준비한 다음에 자신있을 때 한번만 부탁하지...

성격파악도 안 끝난 채로 결혼했던 새색시 체면에 고마운 이웃 남자 앞에서 남편에게 짜증을 낼 수도 없었다. ㅎㅎㅎ

 

2. 첫 과제, 운전면허증 합격!

급하기도 하지, 바로 그 다음 날에 전날 가지고 온 책으로 공부를 해서 이웃 친절남과 다시 가서 필기 시험에 합격을 했다. 그것봐, 그렇게라도 시작했으니까 이렇게 빨리 되는 거야..의기양양 남편.

하기는 내 식으로 했으면 한달 이상 더 걸렸을 껄? ㅎㅎㅎ

남편은 인턴으로 너무 바쁘고, 나는 아무 일도 하는 일이 없으므로 운전실기를 배우는 과업이 나의 미국 첫 과제로 떨어졌다.

미국인 운전학원에서 딱 4시간을 배웠다. 누군가 5시간 연습해서 붙었다는 말을 해줘서 나는 혹시나 하고 4시간만에 시험을 보아봤는데 역시나 떨어졌다. 다시 한시간을 더 채워서 두번째 도전을 했고, 나도 드디어 합격을 하였다.

와~ 합격! 지금도 그때의 기쁨이 생각난다. 그 작은 파란 종이를 받아들고 남편과 나는 세상을 얻은 양 겅중겅중 뛰며 좋아했던 기억.ㅎㅎ

드디어 카딜러로 직행하여 GM 말리부 3600불 짜리 새차를 샀을 때의 기분이란! 3년 월부 90불, 25프로 끔찍한 이자를 내고 샀지만 그때는 그게 얼마나 끔찍한 높은 이자인지 전혀 감 잡지 못했다. 그저 새 차의 주인이라는 것만 너무나 자랑스럽고 행복했다. 

생전 처음 산 저 갈색 새 차가 우리 차라니! 아파트 창문 밖으로 보이는 데다 파킹을 해놓고 내다보며, 또 바라 보며 황홀해 하던 생각이 난다. 심지어 비좁은 아파트에 갇혀있기에 뉘가 나면 하염없이 자동차 안에 들어가 새 차 냄새를 맡으며 가만히 앉아 좋아하기도 수없이 많이 했다. ㅎㅎ

 

3. 이혼 깜 운전 교습

남편 운전 가르치는 일이 그 다음 과제로다! 부부 간에 가르치다가 싸움이 나서 이혼한다는 운전, 그래도 돈을 아끼려니 내가 가르칠 수 밖에 없었다.

나는 젠틀하게 운전을 하고, 남편은 자기 맘대로 운전을 한다. 법은 깨뜨리라고 있다고 생각하는지 한번은 대로 중간에 그냥 서는 것이었다. 설려면 길가로 붙어서 서야 되는데 그냥 가던 길 중간에! 와 진땀 나게... 지금까지도 잔소리를 안 할수 없는데 그때는 오죽했으랴?

남편은 말을 잘 안듣고 제 멋대로 하니 가르치기가 너무나 힘든 사람이었다. 얼마나 고함을 질러대며 가르쳤는지! 그런대도 결국 2번을 내리 떨어지고, 일년 기한을 넘겨 다시 다른 곳에 가서 돈을 또 내고 시험을 봤다. 

시카고 시내 면허장은 시험관들이 까다롭고 무서워서 교외로 나가서 시험을 보면 더 쉽다는 이야기가 돌았었다.

소문대로 친절한 남부교외의 시험장에서 단번에 쉽게 합격을 했다. "네 남편 운전 잘한다"고 까지 말해주는 마음씨 좋은 시험관을 만났기 때문이다.ㅎㅎ

 

4. 첫 사고.. 그리운 옛날이여!

운전면허를 딴 직후, 남편이 운전을 하고 시카고 업타운을 갈 일이 있었다.

신나게 하이웨이를 달리고나서 보통 길로 바꿔 타는 길목이었다.

건너편에서 경찰차가 이쪽을 향해 오는 신호등 앞에 대기하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경찰차가 앞에 있어요." 주의를 주었다. 그 한마디에 갑자기 밟을 필요도 없는 브레이크를 밟는다고 개스를 밟고, 벌벌 떨며 운전을 하더니 결국은 남의 차를 받아 버리는 것이 아닌가! 그것도 바로 그 경찰차를 받아버리는 것! 그런 사고를 낼 장소도 상황도 전혀 아닌데 너무나 어이없이 그렇게 사고를 쳤다.

기막혀 하는 경찰관이 티켓을 3장이나 한꺼번에 써 주었다. 도시 재물 훼손죄와 교통법규 위반 티켓 두장을 한꺼번에. 법정에 가는 날까지 무척 고민이 되었다. 하지만 그때는 세상이 참 좋을 때 였다. 50불인가 내고 변호사를 쓰니 입 한번 벙긋 안 하고도 몽땅 무죄가 되었으니까. 

세상 좋았던 그때는 왠만한 티켓은 다 교육영화 한편 보는 것으로 용서를 해 주었었다. 자주 티켓 먹는 남편 대신 법정에 출두를 해서 영화를 보고 온 적도 두세번 된다. 1974년 그때는 사진이 없는 운전 면허증이었고 우리 이름이 외국이름이라 그들이 잘 모른다는 약점이 있기에 대리 출두가 다 통했으니 아, 옛날이 그립다. 

지금은 티켓당 무조건 2-300불 벌금을 먹인다. 모자라는 시 재정 확보차원에서 그런다하니 그런데서 세월이 많이 나빠지고 살기 힘들어진 것을 알 수 있다. 요즈음도 가끔 티켓을 먹어 없는 돈에 시 재정 확보에 지대한 공을 세우는 남편, 그렇게 버리는 돈이 제일 아깝고 속상하다.

그후 차례로 내 동생들이 이민 와서, 또 친구 조박사도 박사과정 밟을 때 등 여럿에게 연습을 시켜 합격하게 해준 기억이 난다. 하나같이 좋은 운전사들을 만들었는데 남편만은 처음부터 안되었고 영원히 잔소리 대상일 뿐이다. 아무리 선생이 좋아도 학생이 불량하면 소용이 없는 것.

잔소리 하기가 싫어서 내가 차라리 운전하고 말 때가 많지만 다른 여자랑 살았다면 이혼을 몇번 당했을 것이라고 분한 마음으로 놀려준다. ㅎㅎㅎ 

(2007년 1월)

?

  1. 아리조나까지 나타난 태극기 집회 -Choice A/C 최상천

    구국 기도회에 간 한 목회자가 자신은 조국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해서 태극집회에 참석했는데 이것은 극우 정치집회가 아니냐며 옥신각신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교회의 정치 참여는 과거 독재정권 하에서 유신 헌법 비민주성을 비판하고 저항하며 수차례 투...
    Date2019.12.20
    Read More
  2. [추억의 조각] 우리집에서 사는 그 사람의 이름은 홈레스 -이인선

    그의 진짜 이름은 멀린이지만 사람들은 그를 그냥 홈레스라고도 부른다. 이제 사흘째 우리집에서 잤다. 한달을 함께 지내기로 하고 시작해서 벌써 10분지 일을 한 셈이다. 아프리칸 어메리칸 홈레스와 살게 된 것을 안 우리 큰 딸은 엄마 아빠가 어리석고 경...
    Date2019.12.05
    Read More
  3. [추억의 조각] 고생하던 옛 일을 추억하며 -이인선

    우리가 요즈음 일을 안하고 먹고 살고, 여기저기 여행을 많이 다니니 부럽다는 사람이 있다. 마지막 사업을 닫은 후 만 삼년동안 일년에 절반이나 밖으로 돌아 다니니까... 평생 어려움 없이 흥청대며 살아 온 사람도 아니지만 남을 부럽게 만드는 것이 무에 ...
    Date2019.11.26
    Read More
  4. [추억의 조각] 엄마, 돈 벌어 왔어요! -이인선

    방금 우리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J 목사님 댁에서 오는 길입니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주신다고 저녁식사에 초대해주셔서 샤브샤브까지 잘 얻어 먹고 진짜 좋은 이야기도 들었어요. 그것은 우리 두째 딸과 동갑내기인 그댁 따님 집의 행복한 이야기 입니다....
    Date2019.11.20
    Read More
  5. [추억의 조각] 어무루의 한 -이인선

    외할머니 댁이 있는 어무루는 내 고향 김포 양곡 집에서도 두어시간쯤 더 걸어 들어가야 하는 바닷가 농촌이었다. 친 할아버지 댁이 있는 꾸지를 지나서 산을 몇개 더 구불구불 돌다보면, 대낮에도 쓰르라미와 매미만 요란히 울 뿐, 사람 소리는 들어 볼수 없...
    Date2019.11.10
    Read More
  6. [추억의 조각] 911 그리운 옛날이여! 첫 운전, 첫 사고의 추억

    1. 이민생활의 첫 관문 74년, 미국에 처음와서 제일 먼저 넘어야할 관문은 운전면허 시험이였다. 운수업을 얼마간 하시던 아버지 덕에 버스나 트럭은 남보다 일찍 타 보기는 했지만 자가용 승용차는 특별한 부자나 굴렸던 시절, 내 25년 한국살이 기억에 한번...
    Date2019.10.31
    Read More
  7. 피닉스에서 우리의 고유한 국선도를 배운다

    우리 한국 고유의 정통 심신수련법인 국선도를 소개하기 위해 한국에서 네 분의 시범공연단이 오십니다. 고구려의 벽화에서 볼 수 있고, 신라의 화랑들의 훈련을 그린 화랑도에서 국선도의 모습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밝돌법이라고 불리웠던 옛말은, 밝은 ...
    Date2019.10.18
    Read More
  8. [추억의 조각] 911 나 죽으면 석달만 참았다가

    지난 주일 예배 때 장로님께서 광고하시기를 상처하신지 1년 3개월 되신 우리 목사님이 새 장가를 드신다는 것이었다. 우리들은 예상했지만, 또한 예상하지 못한 일이기도 해서 모두가 깜짝 놀랐다. 왜냐하면 그동안 목사님은 재혼이라는 말을 누가 꺼낼까봐 ...
    Date2019.10.18
    Read More
  9. [추억의 조각] 911 사업인생을 닫으면서 -이인선

    막둥이 아들을 낳고 일 년만에 사업 전선으로 뛰어들어 장장 만 30년이나 지냈습니다. 중국식당, 일본식당, 인삼재배, 한국 식품점, 구두 수선소, 세탁소... 그리고 지난 주에 드디어 마지막 웨딩샵 사업에 이별을 고하였습니다. 정말 많이 망서리고 주저하던...
    Date2019.09.25
    Read More
  10. [추억의 조각] 911 추석 담 담 날 -이인선

    미국에 오래 살아서 구정은 가끔 잊어버리지만 추석은 오히려 잊지 않고 지날 수가 있는 날이었다. 우리들 어릴 때 아버지께서는 한번도 자기 생신은 기억하라고 안 하셨으면서도 엄마의 생신에 대해서는 "추석 담 담 날이 니 엄마 생일이야"라고 귀에 못을 ...
    Date2019.09.17
    Read More
  11. [추억의 조각] 911 사태와 딸 -이인선

    그날 아침 큰 딸이 울며 불며 전화를 해서야 세계를 경악케 만든 엄청난 큰 사건이 터진 것을 알게 되었다. 뉴욕의 자랑이요, 미국의 두뇌와 재계의 중심부였던, 맨하탄의 쌍둥이 건물이 여객기 납치범들에 의해서 두 동강이 나고 주저 앉아 버린 무참한 사건...
    Date2019.09.10
    Read More
  12. [추억의 조각] 내 인생 길에서 세탁소의 하루 -이인선

    미국에 오자마자 아이를 낳기 시작하여 첫 5 년은 연년생 네 아이를 키우느라 집에 붙어 있었다. 막둥이가 첫돌이 되면서 나도 생활전선에 뛰어들게 된 경위는 이렇다. 의사 일만 잘하면 혼자 벌어도 잘 살텐데 남편은 짧은 영어에 미국 의사 생활이 버거운지...
    Date2019.09.04
    Read More
  13. [추억의 조각] 내 인생 길에서 만난 죽음의 사건들 -이인선

    초등학교 5학년 어느날 밤, 꾸지 큰 집에 다녀오신 아버지께서 그날 임종하신 큰 아버지의 죽으시던 모습을 자세히 전하셨다. "왜 이렇게 캄캄하냐? 불 좀 밝혀라! 제발 불 좀 밝히란 말이다!"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시며 운명 하셨단다. 40년이 지난 뒤에 여...
    Date2019.08.27
    Read More
  14. [추억의 조각] 가난했지만 가난을 몰랐었다 -이인선

    세상이 참으로 많이 변했다. 요새는 한국에서 돈많은 사람들이 미국에 유학이나 이민을 와서 오자마자 화려한 집을 일시불로 산단다. 렉서스, 벤츠 등 고급차까지 현금 일시불로 사고, 일도 안하고 명품 샤핑만 다닌다나. 여행부터 하고 미국 정착을 시작한다...
    Date2019.08.20
    Read More
  15. [추억의 조각] 노년 재혼, 완벽한 부부 이렇게 태어나다 -이인선

    아이구, 이 흥미 진진한 이야기를 어디서부터 이야기 해야할까요? 이런 때는 결론부터 해야죠. 한마디로 "이건 보통 인연이 아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참으로 유머스러운 분이시다."라고요. 저는 이 이야기를 듣고 너무나 재미있어서 두 시간 동안이나 웃었습...
    Date2019.08.13
    Read More
  16. [추억의 조각] 춤바람 -이인선

    영화 외에서는 춤이란 것을 구경도 못했던 내가 처음 춤바람이 났던건 대학교 일학년 때 일이다. 체육시간에 춤을 배워줘서 탱고, 지리박, 맘보, 차차차, 왈츠 등등의 춤을 출 수 있었는데 그걸 처음 써 먹은 것은 연극 공연 때문이었다. 연극이 끝나는 마지...
    Date2019.08.06
    Read More
  17. [추억의 조각] 웨딩샵의 하루 -이인선

    결혼을 일생에 한번하는 세대는 이제 다 가버린 것일까? 웨딩샵을 3년 하면서 구경한 세상 풍속도…한마디로 끝까지 간 모습들이다. 거룩하고 순결하여야 할 결혼이 땅에 떨어진 도덕 윤리의식으로 속되기 짝이 없다. 숫처녀 숫총각의 결혼은 아예 천연...
    Date2019.07.30
    Read More
  18. 한국에서 온 죠일린, 공주가 되다 -이인선

    우리가 두 돐이 안된 어린 딸과 갓난 아기 딸, 둘을 데리고 시카고 교외에 집을 사서 막 이사하는 날이었다. 어떻게 한국인이 이사 온다는 소식을 들었는지 뒷집 슈미트 부인이 쏜살같이 뛰어왔다. 오자마자 우리 딸들을 보더니 귀엽고 사랑스러워 어찌할 바...
    Date2019.07.16
    Read More
  19. 미국이 좋은 이유 몇가지 더... -이인선

    우리가 떠나올 때와 비교가 안되게 발전한 조국의 모습을 볼 때 정말로 자랑스럽고, 정말로 고맙죠. 한편 이민와서 산 세월이 허무하게 느껴질 순간들이 왜 없겠습니까? 역이민도 생기고, 여기서 자란 아이들이 부모님의 나라에 가서 밥벌이도 하는 세상이 되...
    Date2019.07.10
    Read More
  20. 미국에게 미안하다, 감사하다, 축복한다 -이인선

    이번에 몬타나 시골에 갔을 때 일이다. 요즘 모텔은 예약할 때부터 의례히 크레딧 카드 번호 달라고 하는데 거기서는 이름만으로 다 되었다. 전화번호 조차 달라고 하지 않았다. 도착하여 방에 들어갈 때도 돈 내라는 소리는 하나도 안하고 키가 방에 꽂혀 있...
    Date2019.07.04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Next
/ 6
롤링배너1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