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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뜬 세상이 꿈 같은 순간이 있다. 얼굴에 와닿는 다소 쌀쌀한 공기가 꿈이 아님을 말해주고 있었지만 내게는 세도나에서의 순간 순간들은 온통 꿈처럼 느껴졌다. 내 눈 앞에 새벽녘의 붉은 바위가 서 있었고 한걸음 한걸음 내딛는 발걸음이 있었고, 그리고 거기 믿음직스런 내 아들이 있었다.

바쁜 아들이 시간을 냈다. 모든 걸 다 뒤로 물리고 오로지 나만을 위해서. 그리고 우리는 두 시간 남짓, 붉은 도시 세도나로 차를 몰았다. 세도나의 붉은 빛은 점점 검붉게 변하며 밤은 흘러갔다. 밤이 그랬듯이 새벽도 검붉게 왔다.

아들과 함께 세도나에서 새벽 하이킹을 하다니 꿈만 같았다. 붉은 바위가 사방으로 장관을 이루며 새벽녘의 세도나의 아침 해는 붉게 떠올랐다. 바람은 적당히 차가웠다. 감기 걸릴까 걱정하는 아들 모습에 다시 발걸음을 호텔로 돌려 자켓을 걸쳤다. 내 손을 잡으며 환하게 미소를 짓는 아들이 사랑스럽고 믿음직스러웠다. 내 룸메이트 진도녀는 대견스럽게도 늙은 몸을 뒤뚱거리며 우리 뒤를 잘도 따랐다. 아들은 카메라 셔터를 이쪽 저쪽으로 누르고 나는 카메라 방향따라 빙글빙글 돌면서 행복했다. 아! 멋지다, 란 감탄사가 절로 나오며 내 가슴에선 폭죽이 터졌다. 

카메라 셔터 몇 번 만에 태양은 장엄한 모습을 드러내고 세도나는 질새라 붉은 빛을 더욱 붉게 내비쳤다. 방금 찍은 사진은 사진이 아닌 듯 나는 다시 현실과 꿈의 경계선에 서 있었다.

세상의 모든 물체가 변하듯 사람들이 품고 있는 마음도 변할 터. 세월따라, 사람따라, 그렇게 변해온 내 주변과 인생살이가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그 당연한 것을, 내가 보고 있는 모든 것들이 변해간다는 진리를 왜 잊고 살았을까. 나이가 지긋한 지금, 진리의 이치를 깨닫게 된 내 인생은 흔히들 말하는 질곡의 터널을 막 통과한 것은 아닐까.   

심호흡을 하고 다시 발길을 돌렸다. 앞서 걷는 진도녀의 발이 빨갛게 물들었다. 붉고 고운 흙먼지를 팍팍 디디며 아래로 허리를 굽혀 걷는 길, 그것이 앞으로의 나의 인생이며 행복의 단초가 될 것임을 다시 상기하는 세도나의 새벽이었다. 인생은 분홍빛도 잿빛도 아닌 붉으스럼한 빛이었음을. 

아! 그것은 아들이 입고 있는 셔츠의 색깔이었다. 아들은 알고 있었을까. 인생의 진정한 빛깔을. 잠시 걸음을 늦추었다. 뒷모습마저 아름다운 아들이 한발치 앞서 걷고 있었다. 눈뜨고도 꿈꾸는 듯한 현실은 계속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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