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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한 여인의 죽음을 보니까 아무 연관도 없는 그 옛날 어떤 남자의 죽음 하나가 뜬금없이 생각이 난다. 내가 이민 갓 와서 들은 것이니 상당히 오래된 이야기.

그는 전도 유망한 의사이었다. 닥터 리라고 해두자. 이제 이름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니. 닥터 리는 아주 잘 생긴 호남이었고, 같은 병원에서 내 남편과 만났을 때는 총각이었는데 능력이 아주 출중한 자랑스런 한국 의사였다. 그 힘든 노스웨스턴 대학병원 정형외과 레지던트로 뽑혔을 정도이니까. 의사일만 잘한 것이 아니라 영어 웅변대회에서 일등을 한 완벽한 영어 구사 능력에다가, 짬짬이 스케치 북을 들고 순식간에 멋진 초상화를 그려서 즉석 선물을 해줌으로 동료 의사나 간호원들을 놀라게 해주고 인기를 한 몸에 받았다. 한국의 집안도 아주 잘 살고 모든 것에 충족한 그 사람. 더구나 갓 결혼하여 아름다운 아내는 아기를 임신하고 있었으니 행복의 절정을 맛보고 있었을 32살의 나이. 그런데 그 어느날 총에 맞아 그가 죽었다는 너무나 끔찍한 뉴스를 들고 집에 왔다. 그것도 옛 애인이던 한국 간호사(29살)가 총으로 그를 쏘았다는 것! 믿을 수 없게도 그런 끔찍한 죄를 저지르고도 그녀는 감옥에 갇히지 않았다. 정신착란 때문이라고, 그녀가 그럴 사람이 아니라고 간호협회 중심으로 청원서를 돌렸단다. 어찌 그럴 수가 있었을까? 닥터 리의 누나도 S 미대를 나온 사람이었는데 처벌을 원하지 않았고 "한사람이 죽었으면 되었지, 또 사람을 죽일 필요가 있느냐"고 했고 부인도 적극적으로 처벌을 하지 말아 달라고 탄원을 했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그 부인과 누나의 처사에 놀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 뒤에는 가십거리가 많이 있는 법. 남자의 부모가 그녀가 간호사라고, 고아처럼 자란 그녀의 집안이 별볼일 없다고 반대한데서 이런 끔찍한 일의 빌미가 생긴 것이었단다. 닥터 리는 집안의 반대에 부딪치자 미국으로 건너오게 되었고 그녀도 곧 뒤를 따라 미국에 들어왔단다. 미국에 와서 둘이 만나 연애는 이어지고 같이 동거까지 했던 것 같고 잘 해보려고 결혼 카운셀링도 받고 그랬단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 남자가 변심을 하게 되었다는 슬픈 이야기. 엘에이로 휴가를 나갔다가 멋진 변호사인 한국여자를 만나서 다른 사랑을 시작하게 되었던 것이었다. 레지던트를 끝낸 후 엘에이로 직장을 찾아 결혼을 하고 그곳에 보금자리를 마련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그 간호사 아가씨는 엘에이 까지 쫓아가서 닥터 리를 집요하게 수소문하여 찾았고, 뒤를 밟고 찬스를 만나 총으로 쏘았는데 그러기 위해 미시간 호수 근방의 사격장에서 날마다 연습을 했다는 것이다. 그 이야기는 한동안 시카고에서 많은 사람의 입에 오르내렸다.

미국이란 나라는 참 이상한 나라이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찌 사람을 총 쏴 죽인 여자를 정신치료를 받으라고 내 보내주다니? 여자의 한은 무섭다지만 그렇게까지 쏴 죽이도록 사랑이 증오로 변할 수가 있을까? 그후에 삶을 이어갈수록 그녀는 얼마나 회한에 몸부림치면서 살게될까 생각하면 살아도 산 것 같지 않을 것이다. 그 부모에게 아들이 죽었다는 기별조차 해줄 수가 없어서 못 해주었다는데 얼마나 오래도록 그 일이 비밀로 지켜졌을까? 나중 그 사실을 알고 난 후 부모의 참담한 심정은... 아기를 혼자 낳은 죄없는 새댁은 어찌 살았을까? 여러가지 상상 속의 이야기들...소설보다 더 기막힌 사연을 기억 속에서 꺼내어 보았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얼마나 가슴 아픈 이야기들이 많이 묻혀 있는 것인지! 공연히 쓸데없는 이야기가 생각나서 잠이 안 온다.

아가서의 한 귀절도 떠오른다. "너는 나를 도장같이 마음에 품고 도장같이 팔에 두라 사랑은 죽음 같이 강하고 질투는 스올같이 잔인하며 불길같이 일어나니 그 기세가 여호와의 불과 같으니라"(아가 8장 6절)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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