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Z 포스트::칼럼

newshin.JPG

 

 

5살짜리 꼬마를 가르친 적이 있었다. 

그 아이는 '가벼운 적대적 반항장애(Mild Oppositional Defiant Disorder)'라는 꼬리표를 달고 전학을 왔다. 물론 미국에서 있었던 일이다. 

한국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적에는 이러한 장애 진단명이 있는지조차 몰랐다. 

책에서만 읽었던 이 '적대적 반항장애'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궁금했던 차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그 꼬마를 가르치게 되었다. 

언뜻 보기에 꼬마는 전혀 장애가 없는 것 같았다. 또래에 비해 고급 단어들을 사용하며 청산유수로 여러 주제에 관해 수다도 잘 떨었다. 

전학 왔는데도 전혀 주눅들거나 꿀리는 기색이 없이 금새 또래 사이에서 대장이 되었다. 꼬마와 함께 보낸 며칠은 아무 일 없이 잘 지나갔다. 

꼬마의 IEP에 씌여 있던 무시무시한 내용들 - 5살임에도 불구하고 수업 중에 학교에서 집으로 수없이 보내졌고, 심지어 정학을 당한 적도 있었다는 -이 긴가 민가 싶었다. 그런데, 며칠 후, 꼬마의 본색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하였다. 

굉장히 놀랍게도 그 꼬마는 악필이었다. 

말은 청산유수로 잘 하면서도 아주 간단한 알파벳 따라 쓰기를 잘 하지 못했다. 

꼬마가 잘 하지 못하는 과제를 주면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입에서 엄청난 "폭언"과 "개똥철학"이 쏟아졌다.  

꼬마의 폭언을 듣고 있노라면 어른임에도 불구하고 눈물이 핑 돌거나 주먹이 날라가는 상상이 절로 들 정도였다.  

예를 들면  "e"자를 줄에 맞추어 옮겨 적으라고 하면, 내가 생각하는 "e"는 이렇게 생겼고 이런 식으로 쓴다며 말도 안되는 논리로 떼를 쓰는 것이다.

계속 제대로 쓰라고 하면 예전 학교에서는 이런 식으로 배웠다며 뻥을 치기도 하고, 갑자기 편찮으신 할머니가 그립다며 눈물을 글썽이기도 하고, 배가 아프다며 화장실에 간다고 한다. 

계속 꼬마의 괴변을 듣고 있다 보면, 이 아이가 하는 말이 맞고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착각까지 들 정도이다. 

친구들 사이에서도 서서히 갈등의 중심이 되었다. 

간식을 먹기 위해 줄을 서는데, 새치기를 하는 것을 친구가 제지하면 "이 망할놈의 XX야!"하는 5살 어린이들이 거의 쓰지 않는 욕설을 퍼 부었다. 듣고 있는 아이들은 태어나서 처음 들어보는 말이라 두 눈만 껌뻑껌뻑 할 따름이었다. 가끔 선생님에게 "F"로 시작하는 말을 날리기도 했다. 

친구들과 함께 놀이를 할 때에도 자신이 정한 규칙을 따르지 않거나 잘못을 지적하는 친구가 있으면 선생님이라도 된 듯 큰 소리로 야단을 치거나 폭언을 날려서 묵사발을 만들어 놓는다.  

한번은 친구에게 소리를 질렀기에 선생님이 친구에게 사과를 하라고 하자, 대뜸 "미안하다는 말은 아무 소용이 없어요!"라는 알쏭달쏭한 멘트를 날리며 사과하기를 거부하였다. 

결국 꼬마는 타임아웃을 당하여 교실 구석에 앉아 있게 되었다. 

꼬마에게 다가가 방금 한 소리가 무슨 뜻이냐 물어보니 "미안하다는 말만으로는 소용이 없어요. 진정한 액션이 필요한 것이죠"라는 훌륭한 말을 내뿜는 것이 아닌가!

그 꼬마를 만나기 전까지는 과연 "적대적 반항장애"라는 것이 진짜 존재하는 장애인지 반신반의 하였다. 

왜냐하면 성격이 불 같거나 참을성이 부족한 사람들을 괜히 장애인 취급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도 해 보았다. 

그런데 앞서 말한 그 꼬마를 비롯하여 그 후로도 적대적 반항장애 친구들을 몇 명 만난 후에는 "적대적 반항장애"라는 장애가 있다는 것을 믿게 되었다.     

"적대적 반항장애"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니 적대적 반항장애란 빈번한 분노, 거부, 적대감, 시비조의 논쟁, 복수심, 반항의 행동양상을 권위를 지닌 사람들에게 나타내는 행동장애의 한 유형이라고 한다.  

ADHD, 학습장애, 불안증과 함께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 

고집스럽거나 불같은 성격과 적대적 반항장애의 차이는 반항이나 분노가 주로 어른이나 권위를 지닌 사람들을 향한다는 것, 

그리고 6개월 이상 지속되어 가족, 친구, 학교생활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고, 이런 분노의 경향이 사춘기 이전 대부분 유치원 이전의 어린 나이 때부터 보인다는 것이다.  

반항의 양상이 한 군데 예를 들면 학교나 가정에서만 보인다면 약한 수준의 적대적 반항장애라고 진단하며, 최소 2군데 이상에서 동시에 보인다면 중간 수준의 적대적 반항장애, 학교, 집,  공공장소 등등 3군데 이상에서 보여진다면 심한 수준의 적대적 반항장애로 진단한다. 

적대적 반항장애를 지닌 어린이들 중 소수는 '품행장애'로 악화되기도 한다.   

적대적 반항장애를 지닌 학생들은 일반적인 학생들에게 효과적인 훈육 방법이 잘 통하지 않을 때가 많다.  

윽박을 지르거나 양심에 호소하거나 동정심을 유발하는 등의 일반적인 방법을 들이 밀었다가는 백전백패, 더 나아가서는 묵사발이 될 수도 있다.  

예전 글에서 밝혔다시피, 한번 이들과 논쟁으로 얽히게 되면 절대로 이길 수가 없다. 말로는 이길 수가 없다. 

그렇다고 '사랑의 매'도 통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복수심에 불타서 이글거리는 눈빛에 주눅이 들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다음 글에서는 '적대적 반항장애'로 고생하고 있는 학생들과 그 가족들에게 실제적으로 적용 해 볼 수 있는 방법들을 다루어 보기로 하겠다. 


  1. [심기운 곳에서 꽃피우기-신경아 사모] 색다른 지구인 ? 적대적 반항장애

    "적대적 반항장애(Oppositional Defiant Disorder)"라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있는가? 미국 지구인들은 이것을 줄여서 ODD라고도 한다. 나는 10년 넘게 한국에서 어린이들과 함께 생활했지만 이러한 단어를 전혀 들어 본 적이 없었다. 미국에서 특수교육을 공부...
    Date2019.03.16
    Read More
  2. [심기운 곳에서 꽃피우기-신경아 사모] 색다른 지구인-ADHD

    "선생님, 오늘은 기분이 꿀꿀해서 공부가 안 돼요." 갑순이가 교실에 들어서자 마자 자랑스러운 듯 큰 소리로 말했다. 갑순이는 자리에 앉아서는 최신 유행가를 흥얼거리더니 몸까지 흔들어 재낀다. 옆에 앉아 있던 갑돌이도 이 바람을 타고 같이 노래를 부르...
    Date2019.12.21
    Read More
  3. [심기운 곳에서 꽃피우기-신경아 사모] 색다른 지구인-자폐 스펙트럼 장애

    나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Autism Spectrum Disorder)를 가진 지구인들에게 관심이 많다. 어쩌면 나를 이 늦은 나이에 특수교육으로 이끈 대상이 바로 이들 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처음부터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지닌 지구인들에게 관심을 가졌던 것은 아니었...
    Date2018.10.21
    Read More
  4. [심기운 곳에서 꽃피우기-신경아 사모] 색다른 지구인-적대적 반항장애 (Oppositional Defiant Disorder) 2

    5살짜리 꼬마를 가르친 적이 있었다. 그 아이는 '가벼운 적대적 반항장애(Mild Oppositional Defiant Disorder)'라는 꼬리표를 달고 전학을 왔다. 물론 미국에서 있었던 일이다. 한국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적에는 이러한 장애 진단명이 있는지조차 몰...
    Date2020.06.27
    Read More
  5. [심기운 곳에서 꽃피우기-신경아 사모] 색다른 지구인-적대적 반항장애 (Oppositional Defiant Disorder) 3

    자료를 조사하면서 깜짝 놀랐다. 내가 그동안 무식했던 것인지 아니면 근 10년새에 검사를 엄청나게 정밀하게 했던 것인지 모르겠지만 적대적 반항장애 즉 Oppositional Defiant Disorder가 대한민국의 어린이들에게서 20% 정도나 있다고 하니 말이다. ADHD에...
    Date2020.07.05
    Read More
  6. [심기운 곳에서 꽃피우기-신경아 사모] 색다른 지구인-적대적 반항장애 (Oppositional Defiant Disorder) 4

    지난 주에 이어서 적대적 반항장애를 지닌 자녀나 학생들을 어떻게 도울 수 있는지 알아 보도록 하겠다. 지난 주에 제시했던 내용은 수면시간과 식사시간을 규칙적으로 하라는 것과 주도권을 가지려고 하는 성향을 적절하게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ADHD, ...
    Date2020.07.09
    Read More
  7. [심기운 곳에서 꽃피우기-신경아 사모] 색다른 지구인이 늘어나고 있다!

    이것이 과연 행운인가 아니면 불행인가? 오늘 내가 왜 이렇게 빨리 취직이 되었는가를 알게 되었다. 나의 미모가 뛰어나거나 실력이 출중하거나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이 충만해서가 아니였다. 그것은 바로 걷잡을 수 없이 많은 수의 색다른 지구인들이 내가 있...
    Date2019.01.28
    Read More
  8. [심기운 곳에서 꽃피우기-신경아 사모] 생각하게 하는 동화

    미국의 학교에서 일하다 보니, 한국과의 확연한 문화차이, 교육관의 차이를 느끼는 순간이 있다. 며칠전에도 학생들의 읽기 지도용 교재에 나와 있는 동화를 읽다가 깜짝 놀랐다. 전혀 예상치 못한 결말에 깊은 생각에 빠지게 되었다. 이것은 한 쪽의 문화가 ...
    Date2021.03.25
    Read More
  9. [심기운 곳에서 꽃피우기-신경아 사모] 서로의 어깨에 기대어

    5월을 참 바쁘게 보냈다. 미국에서 교편을 잡고 나서 처음으로 맞이하는 방학이다. 그동안 대학원 공부와 교생실습 그리고 바로 취업. 한 2년 동안 숨가쁜 나날을 보내왔다. 더욱이 5월에는 첫째와 둘째가 모두 졸업을 하고 상급 학교에 진학을 했다. 첫째는 ...
    Date2019.06.08
    Read More
  10. [심기운 곳에서 꽃피우기-신경아 사모] 선택은 힘들어!

    미국은 선택의 나라다. 선택 할 일이 참 많고, 개인의 선택이 존중된다. 선택의 유무는 자유와 직결된다. 한국에서 살 때는 선택을 해야 할 경우가 많지 않아 선택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 보지 않았는데 이곳 미국에서 날마다 수많은 선택을 강요(?) 받다 보니...
    Date2018.09.30
    Read More
  11. [심기운 곳에서 꽃피우기-신경아 사모] 선한 의도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선한 의도만으로는 충분치 않다."라는 구절은 특수교육을 공부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말입니다. 어느 위대한 분께서 하신 말씀인지는 모르나 미국 특수교육의 역사를 공부하면서 가슴에 팍 와 닿는 문구입니다. 미국 특수교육의 역사는 짧고 굵습니다. 모...
    Date2018.10.13
    Read More
  12. [심기운 곳에서 꽃피우기-신경아 사모] 수학을 철학처럼 배우는 미국

    "5학년짜리가 아직 구구단을 다 못 외우고 있네!" "아니, 수학 수업시간에 전자 계산기를 사용하고 앉아 있네! 저러다 바보 되는 거 아냐?" "뭔 동전에 관련된 수학 문제가 이렇게 많냐?" "나눗셈을 푸는데 그림을 그려서 풀고 앉아있네. 한심하게…&he...
    Date2020.05.16
    Read More
  13. [심기운 곳에서 꽃피우기-신경아 사모] 시험은 싫어!

    요즘 아리조나에 사는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들은 "AZ Merit"이라는 시험을 보느라 정신이 없을 것이다. 아리조나에 있는 공립학교 학생들은 챠터 스쿨까지 포함하여 1년에 한번씩 이 요상한 이름의 시험을 보게 된다. 한국식으로 말하자면 "도학력고사"쯤 되...
    Date2019.04.18
    Read More
  14. [심기운 곳에서 꽃피우기-신경아 사모] 써바이벌 성공!

    드디어 방학이다! 계속 집에 있어서 방학이 실감나지 않지만 이번 주를 마지막으로 아리조나에 있는 초등학교들은 대부분 여름방학을 맞이하였다. 작년 이맘때, 여름방학이 다가오는데도 재계약 통지를 받지 못해 가슴 졸이던 일들이 주마등 처럼 스쳐 지나간...
    Date2020.05.30
    Read More
  15. [심기운 곳에서 꽃피우기-신경아 사모] 아듀, 2020년!

    휴, 드디어 2020년이 마무리 되어가고 있다. 모두가 느끼다시피 올해는 성탄과 연말의 기대와 설레임이 느껴지지 않았다. 성탄 선물 주고 받기도 하지 않았고, 심지어 지인들까지 주고 받는 성탄 카드도 만들지 않았다. 그래서 빨리 시간이 흘러가서 지금의 ...
    Date2021.01.23
    Read More
  16. [심기운 곳에서 꽃피우기-신경아 사모] 아리조나 특수교육 탐방기(1)

    지구인 여러분, 안녕하세요? 저는 나이 마흔살이 넘어서 뒤늦게 특수교육을 공부하기 시작하였고 이제 그 공부도 막판을 향해 치닫고 있습니다. 일년 넘게, 석고와 같이 굳어버린 머리로 공부하며 맺은 열매는 옆구리의 살, 두꺼운 팔다리, 엉망진창 집안살림...
    Date2018.08.18
    Read More
  17. [심기운 곳에서 꽃피우기-신경아 사모] 아리조나 특수교육 탐방기(2)

    미국에는 정말 다양한 특수교육기관들이 있더군요. 학교 과제 덕분에 여러 종류의 특수 교육 환경을 참관했습니다. 독립된 특수학교, 초등학교 안의 특수학급, 고등학교 안의 특수학급, 복지관, 치료 센타 등등을 말입니다. 한국에 있을 때는 우물 안의 개구...
    Date2018.08.27
    Read More
  18. [심기운 곳에서 꽃피우기-신경아 사모] 아무것도 안 하기

    갑자기 휴가다! 학교가 휴교를 하는 바람에 봄방학이 연장되었고, 언제 다시 학교로 돌아 갈 수 있을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는 상태다. T.V를 켜도, 인터넷을 열어도 온통 가장 최선의 길은 밖에 나가지 않고 집에 들어앉아 있는 것이라 입을 모아 말하고 ...
    Date2020.04.02
    Read More
  19. [심기운 곳에서 꽃피우기-신경아 사모] 아이들은 무엇으로 자라는가?

    "선생님들, 정말 감사합니다. 우리 갑순이가 이 학교에 와서야 마음을 잡고 공부를 하기 시작했어요. 그 전까지는 학교를 3번이나 전학 다녔습니다. 선생님들의 사랑이 정말 큽니다." IEP미팅에서 학부모님이 미팅에 참석한 선생님들에게 하신 말씀이다. 마음...
    Date2020.10.16
    Read More
  20. [심기운 곳에서 꽃피우기-신경아 사모] 약함이 주는 강함

    나는 요즘 공립초등학교에 있는 특수학급으로 매일 출근한다. 무려 70일간이나 교생실습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교생실습 기간 중에는 네 번이나 장학관에게 검열(?)을 받아야 한다니 정말 확실히 실습을 시켜 먹는구나 하는 생각이 치밀어 오른다. 이제 울며...
    Date2018.09.26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 6 7 8 9 10 11 12 13 14 15 ... 20 Next
/ 20
롤링배너1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