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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까지 여러 종류의 공동체에 소속되어 있었다. 친정, 시댁, 우리 가족,  학교, 직장, 교회 …. 

특히 나는 '학교'와 '교회'라는 공동체에 오랜 세월 몸 담아 왔다.  

이 두 조직은 아주 다르면서도 비슷하다. 

비슷한 점이라면 규칙적으로 모임을 갖고, 가르치는 사람과 배우는 사람이 존재하고 여러가지 프로그램이 운영되며, 위계질서와 일정한 규칙들이 있고 전통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다른 점이라면 학교는 객관적이고 논리적인 지식과 정보를 다루고, 엄격한 기준과 잣대로 사람들을 평가하는 세속 집단인데 비하여 교회는 주관적이고 영적인 신앙의 영역을 다루며 자비와 은혜가 넘치는 신성한 공동체라는 것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학교에서 교회에만 있는 줄 알았던 자비와 은혜를 경험하고 있고 반면 교회에서는 매우 엄격하고 객관적인 기준과 잣대의 평가를 맞닥뜨리는 경험을 하였다. 

그래서 좀 헷갈리기 시작했고, 학교가 교회처럼 생각되고 교회가 학교같이 느껴지는 나 자신에게 "이것은 마귀가 나를 미혹하는 것이당!"이라고 소리치기도 하였다.

파커 팔머(Parker J. Palmer)의 책 "가르침과 배움의 영성"에서 말하길 '앎(Knowledge)'에는 3종류의 동기가 있다고 한다. 

사람들은 호기심 때문에 무엇인가를 알려고 하거나 아니면, 다른 사람이나 사물을 지배(Control)하기 위해 알려고 한다는 것이다.  

마지막 앎의 동기는 바로 '사랑'이다. 어떤 사람들은 그리고 하나님은 더 깊이 그리고 올바르게 사랑하기 위해 알려고 한다는 것이다.  

이 분류에 따르자면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앎'의 동기는 호기심과 지배가 대부분일 것이요 내가 평생 몸 담고 있는 교회는 그 '앎'의 동기가 사랑일 것이다.  

세계 2차대전때 일본에 투하한 원자폭탄을 만들어 낸 과학자들이 폭탄 제조 원리를 연구하고 밝혀낸 동기는 호기심과 지배욕이었을 것이다. 

과학자들은 그들의 앎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깊이 생각하거나 미리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파커 팔머의 말대로 호기심과 지배욕이 동기가 된 앎은 인간의 통제를 벗어나 걷잡을 수 없이 파괴적인 결과를 초래하였다.  

반면 사랑이 동기가 된 앎은 예수님이 우리를 안 것과 같이 생명을 살리고 삶을 풍요롭게 한다.   

내가 학교에서 경험한 공동체는 어떠한가?  

먼저 '앎'을 매우 소중하게 다룬다. 학생들의 정보를 호기심이나 지배를 위해 알려고 하지 않는다. 

누가 무료 급식 대상자인지 아버지께서 무슨 일을 하시는지 따위는 특별한 교육 목적이 아니고서는 알 수도 없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설사 알게 되었더라도 절대 이야기해서는 안된다. 

동료 교사가 실수를 저질렀거나 실력이 좀 부족할 때에는 멘토가 붙어서 이것 저것 코치를 해 준다. 심각한 일일수록 직접 얼굴을 맞대고 면담을 한다. 

모든 일은 일대일로 조용히 이루어진다. 시간이 걸려도 이렇게 한다. 

함께 일하는 스텝 중에 장애를 지닌 사람이 있다. 교장 선생님은 그것을 알고도 그 분을 채용하였다. 

함께 일할 때 가끔 짜증나는 일들이 생긴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을 그분의 장애 때문이라고 탓하거나 불평하지 않는다. 

그 분을 채용할 때 그 모든 것을 함께 짊어지고 가기로 리더들이 결정했기 때문이다. 기다려주고 함께 커 나가기로 말이다.  

더 놀라운 것은 이러한 결정이나 분위기를 궂이 '자비와 은혜'라고 부르지도 않는다. 그냥 다양성이라고 부른다.

내가 지금까지 경험해 온 교회의 공동체는 어떠한가? 

지식 보다는 진리를, 능력 보다는 사랑을 가르치고 배우는 공동체임은 틀림없다. 

그리고 나는 소중한 가치들을 모두 교회에서 배웠다. 

그런데 때때로 진리 보다는 지식을 사랑 보다는 능력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모습을 보게 된다. 

갑순이네 가정이 이혼 위기에 처했을 때 사랑보다는 호기심으로 갑순이네에 대해 더 알려고 하는 사람들, 목회자나 교회 리더가 서울 대학을 나왔다고 하면 뜬금없이 좋아하는 교인들. 

그리고 서로의 실수나 특히 교회 리더들의 부족함을 함께 짊어지고 성장해 나갈 인내심을 보여주지 않고 평가와 판단의 잣대를 들이미는 모습들이 세상보다도 더 엄격하고 냉정하다고 느껴진다.   

COVID-19으로 공동체는 사라지고 가르치는 자와 배우는 자가 분리되어 연결이 희미해지는 요즘 사랑이 동기가 된 '앎'이 충만한 "유기농 공동체(organic community)"가 간절해 진다.  

사랑이 동기가 된 앎을 통해 가르치는 자와 배우는 자의 삶이 서로 거미줄처럼 연결될 수 있고 이렇게 서로 연결되고 인격적인 사랑을 주고 받을 때 배움과 성장이 일어난다고 파커 팔머는 말한다.  

"유기농 공동체"란 말을 파커 팔머의 책에서 읽었을 때 한 눈에 확 들어왔다. 

유기농 채소들이 보통 채소들보다 좀 시들시들해 보이고 풍성해 보이지 않더라도 사람들은 유기농 채소가 결국에서는 건강에 도움을 줄 것을 안다.  

유기농 채소를 기르려면 시간이 좀 더 걸리고 땀을 더 흘려야 한다. 

지식이 좀 부족하고 능력은 별 볼일 없어도 진리가 견고히 서고 사랑으로 허다한 허물을 덮을 줄 하는 유기농 교회가 탄생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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