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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진심으로 행한다'는 말과 '진리대로 행한다'는 말을 같은 의미로 혼동하고 있습니다. 무엇이든 진심으로 행하기만 하면, 그것은 곧 옳고 정당한 것이라 착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일의 결과를 놓고, 그것이 얼마나 진리대로 이루어진 것인지를 따지는 사람은 드뭅니다. 단지 그 일을 추진하는 사람이 얼마나 진심으로, 얼마나 진지하게, 얼마나 최선을 다했는지를 따져 보고, 그런 요소들이 있었다면 주어진 결과를 당연한 것으로 간주합니다.

어떤 일을 진심으로, 진지하게, 최선을 다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진심과 진지함 없이는 결코 진리에 이르지 못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진심이나 진지함이 진리와 동일한 것은 결코 아닙니다. 진심과 열심을 다했기 때문에 그것을 진리와 동일시하는 것이야말로 진리에 대한 모독이요, 진리를 파괴하는 폭력이요, 자기 자신을 소진케 하는 무지입니다.

영국의 마틴 로이드 존즈(Martyn Lloyd Jones)는 <변하는 사상, 불변하는 진리>에서 진심과 진리의 관계를 자동차를 예로 들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진심, 진지성, 열심 등은 자동차의 연료나 엔진의 스팀과 같은 것입니다. 연료나 스팀은 곧 힘입니다. 이 힘이 없이는 자동차가 움직일 수 없습니다. 그러나 힘 그 자체가 바른길과 그릇된 길을 선택하고 결정하는 주체인 것은 아닙니다. 만약 힘에만 모든 것을 의존하고 마냥 달리기만 한다면, 그 자동차는 무서운 흉기가 되고 말 것입니다. 자동차가 바른 길을 달려가기 위해서는 자동차 밖에 있는 이정표를 의지해야 합니다. 그 때 자동차의 힘은 사람으로 하여금 목적지에 이르게 하는 이로운 힘, 유익한 도구가 됩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은 진지성과 열심만을 바른 삶의 척도로 삼습니다. "저 사람은 정말 진지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 사람은 무엇을 하든 진심으로 행하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저 사람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최선을 다하면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습니다." --- 이런 평가를 받는 사람은 이상적인 사람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진심으로 진지하게 달리고 있다고 해서 그것이 바른 길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열심히 최선을 다해 뛰어가고 있다고 해서 그것이 옳은 길의 증표인 것도 아닙니다. 달리는 속도나 태도 그 자체는 정도(正道)의 증거가 아닙니다. 인간의 사고와 삶의 옳고 그름은 진지함이나 열심에 의해 좌우되지 않습니다.

인간의 진심과 진지함 그리고 열심만을 논할 때, 그 주체는 언제나 인간 자신입니다. 인간 자신이 주체라는 것은 스스로 바른 길을 분별할 절대적 척도를 지니고 있지 못함을 의미하고, 절대적 척도나 절대적 기준과 무관한 인간의 진심 혹은 열심은 결국 인간 자신을 덧없이 소모시켜 버릴 따름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반드시 자신을 진리 앞에 객체로 세울 수 있어야 합니다. 그 때에만 우리의 진심과 진지함 그리고 열심은 우리의 삶을, 진리 안에서 바른 길로 이끌어 주는 정당한 힘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위대한 사도 바울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젊은 시절 그는 진리를 좇아 사는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던 자였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인들을 박멸하기 위해 그의 열심과 최선을 다한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진지하지 않았기에, 진심으로 일을 행하는 자가 아니기 때문에, 그런 무지막지한 짓을 행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철저하게 진지한 사람이었습니다. 무엇이든 자신의 양심에 따라 진심으로, 최선을 다해 행동하였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인을 쓸어 버리는 것이야말로 옳다고 생각한 정도가 아니라 그 점을 아주 확신하였고, 그것이 자신을 바쳐야할 바른 삶임을 추호도 의심치 않았습니다. 어떻게 인간이 이처럼 진지하게, 진심으로, 그리고 열심을 다해 인간을 핍박할 수 있겠습니까? 자신의 진심과 진지함에만 충실했을 뿐, 진리라는 절대적 푯대를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위대한 제자 베드로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는 자타가 공인하는 주님의 수제자였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시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노상에서, 그는 다른 제자들과 더불어 누가 더 높은지를 따지느라 다투고 있었습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이 다 주님을 버려도 자신만은 죽기까지 주님을 따르겠다며 호언장담했건만, 가장 결정적인 순간 그는 주님을 부인하고 저주하며 도망치는 배신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소위 수제자란 자가 이처럼 어처구니없는 짓을 행한 것은, 그에게 진심이나 진지성 혹은 열심이 결여되어 있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만약 그에게 진지함이나 진심이 없었던들, 어찌 자신의 직업과 처자를 등지고 주님을 따라 나설 수 있었겠습니까? 그에게 열심이 없었던들, 어찌 하루 이틀도 아닌 만 3년씩이나 주님을 좇을 수가 있었겠습니까? 그에게는 누구 못지 않는 진지함과 열심이 있었지만 그 때까지 그것은 단지 주님의 능력을 이용하기 위함이요, 진리이신 주님을 절대적 푯대로 삼고 진리 안에서 바른 삶을 살기 위함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2,000년 전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진지성과 진심으로, 그리고 열심과 최선을 다해 사람과 진리를 짓밟는 일들은 오늘도 비일비재합니다. 지난 18일 밤, 사이비 종교 연구가인 탁명환 씨를 살해한 범인이 검거되었습니다. 그것이 단독 범행이냐 혹은 공범이 있는가라는 것보다 우리에게 더 중요한 사실이 있었습니다. 사람을 살해한 그 범인이 그리스도인이요, 신학교 학생이요, 문제가 된 교회의 직원이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탁 씨를 살해한 동기에 대해, "사람은 하나님만이 심판할 수 있는데, 탁 씨의 말 한 마디에 의해 목사나 신학교 교수가 쫓겨나는 것을 보고 탁 씨를 처단할 것을 결심하게 되었다"고 밝혔습니다. "마땅히 할 일을 했으므로 따로 할 말은 없다"면서 단지 죽은 자가 불쌍하니, 그 영혼을 위해 기도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작년 11월에도 탁 씨를 죽이려 했었음을 스스로 밝혔습니다. 이와 같은 그의 진술은, 그가 진심으로 사람을 죽였음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사람을 죽이려는 자신의 생각에 대해 그는 지극히 진지했던 사람이었습니다. (다음 호에 계속)

김찬홍 목사(주찬양교회)가 이재철 목사의 허락을 받아 이재철 목사의 책 『요한과 더불어, 네 번째 산책』 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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