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제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로컬 공립고교들의 성적평가 수준과 성향입니다. 진학지도를 하면서 제가 발견한 공통점이 있는데, 한국에서 늦게 유학온 학생들을 제외하고, 여기서 태어났거나 초등학교부터 다녔던 학생들의 대부분이 "학교 성적이 영어는 괜찮은데 수학이 어렵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SAT를 준비해보면 수학 성적이 영어보다 훨씬 빨리 향상됩니다. 즉 학생들이 자신의 실력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것일까요? 제가 도달한 결론은 "입학 시험을 기준으로 볼 때 학교의 영어 클래스 수준이 낮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특히 일반 공립학교는 클래스 규모가 크기 때문에 교사 한사람이 수십명의 학생들을 철저히 평가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에세이를 평가할 때 하나씩 충실하게 봐가면서 점수를 주기가 사실상 거의 불가능합니다. 교사 한 사람에게 주어진 업무가 과중하다보니 결국 학생 일인에게 돌아가는 시간과 노력이 감소될 수 밖에 없습니다. 이는 사회과 과목들도 마찬가지 입니다. 그래서 다수의 학생들을 쉽게 관리할 수 있는 방법을 택하다 보니 학생들의 실력을 꼼꼼히 향상시키기가 쉽지 않은 것입니다.
이는 한 클래스가 12~15명 선으로 유지되는 동부 사립 명문고와 비교해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이런 학교에서는 영어나 역사, 사회 과목에서 좋은 학점을 따기가 절대 쉽지 않습니다. 텍스트를 이해하는 것은 물론 참고 자료도 많고 리포트도 많으며 무엇보다도 철저히 준비된 상태에서 수업에 임해야만 토론에 참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즉 예습과 복습은 물론 고난도의 읽고 쓰는 훈련이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고교 4년을 이렇게 보내고 나면 그 실력의 탄탄함은 일반 공립고 우등생들이 넘어서기 힘든 수준이 됩니다. 이는 소위 명문대에 합격한 일반 공립고 출신들 중 적지않은 수가 대학 일학년 때 고전을 면치 못하는 주된 이유이기도 합니다. 리버럴 아트 분야를 철저히 훈련 받은 명문 사립고나 특수고 출신들과, 로컬에서 쉽게 공부했던 일반 공립고 출신들 사이의 갭이 가시화 되는 것입니다. 물론 학생 개인의 능력에 따라 잠재력이 발휘되어 금방 따라잡는 경우도 많습니다만 일단 학기초에는 적응에 시간이 걸리는 경우도 있고 안타깝지만 끝까지 그 격차가 회복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는 너무 좋은 학교에 입학하면 학점 받기 어려우니 나중에 대학원이나 프로패셔널 스쿨 진학을 생각하면 굳이 공부하기 힘든 대학에 갈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물론 이런 주장에는 찬반이 엇갈립니다.)
제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일반 공립고교들을 비하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교사들이 실력이 없거나 나태하다고 비판하는 것도 아닙니다. 또한 명문 사립고라고 해서 모두 좋은 점만 있는 것도 아닙니다. 제 개인적인 경험은 물론 그동안 진학 현장에서 접한 수많은 사례에 따르면 어떤 학교를 보내든 장점과 단점은 공존하기 마련입니다. 다만 공립고에 진학하면 학비 부담이 없고 아이들이 편하고 쉽게 학점을 받는 대신 감수해야하는 측면이 반드시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의 실력을 향상시키고 잠재력을 충분히 발휘하게 하려면 학교에서 받아오는 성적표에 만족하지 말고 학업 환경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학년이 아직 낮을 때는 독서를 강조하여 가능한한 많은 책을 읽게 하고 특히 방학 때는 독서 리스트를 정해 읽는 훈련을 습관화 하는 것이 좋습니다. 학년이 높아지면 방학 때도 입시 준비로 바쁘기 때문에 이런 훈련은 9학년 전에 해두는 것이 좋습니다. 빠르고 정확하게 읽고 분석하고 비판할 수 있는 능력은 어려서부터 키워야하며 이는 학업능력을 향상시키는 엄청난 자산이 될 것입니다. 이런 기초가 잘 닦여있는 아이들은 어떤 공부를 하든큰 어려움이 없습니다.
또한 수학의 경우는 공립학교의 커리큘럼이 모든 학생들을 대상으로 제작되다 보니 학교에서 하는대로 따라가다 보면 12학년에 Algebra II로 끝나게 됩니다. 이 때문에 대입 시험의 수학 범위가 Algebra II 까지, 그것도 대학 지원이 12학년 1학기 때 진행되기 때문에 중간까지만 커버하는 형태를 띄게 된 것입니다. 물론 요즘은 여기에 맞추는 학교들이 줄어서 12학년 때 Pre Cal로 끝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많은 대학들이 요구하는 SAT II Math의 경우는 범위가 Pre Cal 까지이기 때문에 이런 학교에 지원하려면 적어도 11학년에 Pre Cal을 마쳐야 하는데 이는 예전보다 빨라진 진도를 감안해도 1년은 앞서가야 한다는 뜻입니다. 마찬가지로 명문대에 지원하려면 Calculus 수업을 듣고 AP 시험까지 쳐야 하는데 1년에 한번 뿐인 AP 시험을 진학 일정에 맞춰 준비하려면 늦어도 11학년에는 Calculus를 듣고 시험을 쳐야 합니다. 즉 2년을 앞서 가야 한다는 뜻입니다. 또한 수학에 자신있는 학생들이나 수학이 중요한 학과를 지원하는 학생들은 자신의 실력을 증명하기 위해 AP Math 성적을 여러개 준비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은데 이런 경우엔 10학년 때 이미 Calculus를 듣고 11, 12학년에는 이보다 더 높은 코스를 들어 AP Math 성적만 2-4개를 제출하고 있습니다. 이 경우에는 일반 커리큘럼보다 무려 3년을 앞서가는 것이며 실제로 이런 공부를 잘 해내는 학생들이 좋은 대학에 합격할 조건을 갖추는 것입니다. 게다가 Calculus를 수강한 학생들에게 유리한 과목, 즉 AP Physics 같은 과목도 있기 때문에 많은 우수한 학생들이 Calculus를 일찍부터 수강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런 공부가 모든 학생에게 똑같이 적용될 수는 없습니다. 학생이 실력을 갖추어야 할 뿐만 아니라 좀 힘들더라도 해내겠다는 열정과 노력이 있어야만 가능합니다. 결국 학생마다 듣는 수업과 치는 시험이 다를 수 밖에 없는데 매년 시간표를 짤 때마다 우리 아이가 가야할 길이 어떤 것인지를 함께 상의하면서 결정하고 한 해 한 해 그것이 쌓여갈 때 비로소 훌륭한 성적표가 완성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