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권력과 폭력의 힘에 의해 개인의 삶이 굴절되는 모습을 잘 그려낸 영화로 안소니 퀸이 주연한 '25시'라는 영화가 있다. 이 영화는 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던 무렵 루마니아의 산골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루마니아 폰타나의 농부 요한(안소니 퀸 분)은 독일 나치가 마을을 침공하면서 자신의 인생이 하루아침에 박살나는 끔찍한 경험을 하게 된다. 아내 스잔나의 미모를 탐낸 경찰서장 도브레스코의 계략으로 자신이 유태인이라고 상부에 거짓으로 보고되어 강제 노동소에 보내진다. 게다가 도브레스코는 스잔나에게 그녀가 남편과 이혼하지 않으면 전 재산을 몰수하겠다고 위협한다. 그의 위협에 지친 스잔나는 요한을 위해 이혼을 하고 서장의 아이까지 갖게 된다. 억울한 누명을 쓴 요한은 수용소를 탈출하는데 성공하지만 또다시 검거되어 독일로 끌려 가게 된다. 그러나 독일 친위대 대령에게 외모상 아리안족의 순수혈통을 가진 영웅 일원으로 인정받아 수용소 소장에 임명된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인생이 자신 쪽으로 풀려나가는 것도 잠시였다. 얼마 후 소련이 루마니아를 침공할 때 요한은 미군 포로가 되어 독일을 도운 전범자로서 군사 재판을 받게 된다.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독일군 수용소 소장 일을 했던 것이 그토록 기다렸던 연합군에게 전범으로 몰리게 되는 증거가 된 것이다. 요한은 연합군 수용소 생활 끝에 마침내 고향 땅에 돌아왔지만 그곳에는 그를 반겨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전쟁과 폭력은 순박한 농부 요한의 일생을 철저하게 파괴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쓰레기처럼 무가치한 것으로 만들었다. 순박한 루마니아의 농부 요한은 본인의 의지와는 아무런 상관없이 세상을 움직이는 부조리한 힘에 의해 이리 저리 굴절되면서 처절한 무기력감에 빠지고 좌절하게 된다. 그는 착하고 남에게 해를 끼치지 못하는 좋은 사람이었지만 세상은 그를 예외로 놓아두지 않는다. 세상의 권력은 그의 인생을 마음대로 들었다가 내팽개치기도 하면서 마음대로 농락했던 것이다.
루마니아의 농부 요한이 겪은 무기력함과 세상 권력의 부조리하고 잔인한 모습은 삼청교육대 안에서 일어났던 일들의 좋은 표본이다. 빨간 모자의 조교들은 삼청교육대 안에 들어 온 사람들을 훈련시키다가 죽여도 좋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날마다 입소자들에게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잔인한 신체적 고통을 가했다. 저들은 타인을 학대할 때 느끼게 되는 쾌감을 더욱 즐기기 위해 고문과 체형의 강도를 날마다 더해갔다. 따라서 고문을 당하다가 기절하거나 죽어나가는 사람들이 셀 수 없이 많 았던 것이다. 폭력을 가하는 사람들의 쾌감은 일시적인 것이지만,폭력의 피해자가 된 사람들의 마음의 상처는 평생 동안 지속된다. 당시 삼청교육대에 강제로 끌려갔던 피해자들은 아래와 같이 하소연한다.
"25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생각했다. 내가 왜 삼청교육대에 끌려갔을까. 하지만 길가던 나를 잡아 가둔 이유를 지금도 도무지 알 수 없다. 내 머리카락이 길어서 잡아간 것일까? 이유만이라도 알 수 있다면…"
"광주항쟁 때도 힘겹게 살아남았는데 꼭 한 달 만에 아무 이유 없이 삼청교육대에 끌려갔다. 9개월 동안 매일 얻어맞고 인권을 철저히 유린당했던 그 이후로 열 번 이상 자살을 시도했다. 아직까지 죽지 못한 것이 원통할 따름이다."
소련 땅에서 벌어졌던 강제 추방이나 일제의 강제 징용, 인체실험 등의 인권 유린 만행은 그래도 다른 민족들에 의해 우리 민족에게 가해진 사건들이라는 점에서 이해가 된다. 그러나 삼청교육대 훈련 동안 가해진 인권 유린 행위는 같은 민족 사이에 벌어진 사건이었다.
한편 삼청교육대의 피해자들은 사건이 발생한 지 25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이렇다 할 피해보상이나 명예회복을 위한 정부의 조치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
피해자들이 중심이 되어 조직된 삼청교육대 인권연합위원회 웹사이트(httpy/www.3chung.or.kr)를 통해 피해자들의 피해 사항을 계속 접수하고 있으며 피해 보상을 위한 여러 가지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아래 인용한 글은 삼청교육대 인권연합위원회에서 최근에 발표한 대정부 성명문이다.
"삼청교육대 훈련은 삼청학살 기획 주모자인 전두환 추종자들, 대한중앙노인회 회장 안필준과 같은 5공 세력에 의하여 자행된 한국판 아우슈비츠 학살사건이었습니다. 삼청교육대 인권위원회는 여러 인권단체 동지들의 투혼의 열정과 양심에 호소하여 전두환과 안필준에 의하여 자행된 삼청교육대 실종자 1만여 명에 대한 학살 및 소각사건에 대하여 진실을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우리 삼청민주인권 운동연합은 역사와 진실을 민족 앞에 올바로 세우기 원합니다. 그리하여 억울하게 개처럼 죽어간 삼청 희생자의 원혼을 뒤늦게라도 위로하게 되기 바랍니다. 삼청교육대는 역사의 위선자 그리고 역사의 이단자 전두환의 지시로 1980년 5.18 학살사건 이후 국민에게 위협감과 공갈성을 내세워 열악해진 국정과 여론 등을 무마하기 위하여 1980년 8월부터 짧게는 1개월, 길게는 7~8년간 무고한 시민 범법자로 몰아 세 워 철저히 인권을 유린했습니다. 삼청교육대 학살과 시체 소각사건은 나치의 학살과 만행에 버금가는 것이었습니다. 삼청교육대 학살과 소각사건 만행의 역사의 현장은 1980년 당시 경기도 연천군 전곡읍 5사단 의무대 내에 귀속된 한탄강 부근 3,000여 평입니다. 그곳에 삼청학살 사망자 사체소각처리공장을 운영하여 학살된 사체에 대한 소각처리가 이루어졌다고 당시 소위 유경종은 고백하였습니다. 이 삼청학살 사망자 사체소각처리공장에서는 하루에 적게는 30여 명에서 많게는 80여 명까지 학살된 사체를 소각처리하였습니다. 인근 마을 주만들은 소각처리된 사체의 그을린 연기가 하루 종일 전곡읍 한탄강 하늘을 희뿌옇게 물들였고 살 태우는 역겨운 냄새에 몸서리를 쳤다고 합니다. 민주화 동지 여러분! 우리는 힘을 모아 역사의 단죄와 왜곡된 역사를 바로 세우고 죽어서도 눈을 감지 못하는 삼청교육대의 학살사건의 소각 피해자 여러 영령들과 영혼들이 언젠가는 반드시 안식을 누릴 수 있도록 진실과 정의의 수호 궐기를 부탁드리는 바입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