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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곳으로의 여행은 내 눈과 귀를 분주하게 만든다. 가슴이 뛴다. 태평양을 건너 미국 대학에서의 첫 수업이 시작되기 전 내 눈은 동그래졌다. 수업을 기다리는 학생들이 강의실 복도에서 연출한 풍경이 생소했다. 채소를 파는 시골 장터 할머니처럼 학생들은 복도에 엉덩이를 깔고 앉아 있었다. 강의실을 들락거린 횟수가 족히 수백 번은 될 법한데 나는 복도에 엉덩이를 깔고 앉아 본 적이 없었다. 내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아무리 오래 기다린다 한들 다리 아플 일은 없을 터였다. 

나도 앉으려는데 또 다른 생소함이 눈에 들어왔다. 한 학생의 머리 위에 얹혀있는 모자였다. 테두리 없이 납작한 모자는 나치 시절 게토 지역에 억류된 사람들 가슴에 부착된 별(다윗의 별)과 함께 내가 기억하는 '키파'였다. 앙증맞게 작은 키파는 머리에서 미끄러지지 않고 잘도 버텼다.   

샤일록의 머리에는 키파가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셰익스피어의 희극 '베니스의 상인'에서 샤일록은 키파도 쓰지 않은 채 심한 욕심을 부린다. 키파를 써도 선량한 유대인으로 변할 리 없겠지만 샤일록은 까만 머리를 통째로 드러내며 오직 안토니오의 살덩이 한 파운드로만 달라고 우긴다. 남의 말 경청하지 않기로는 챔피언이다. 누구와 많이 닮았다. 그 누구는 긁어 부스럼 만드는 데도 챔피언이다.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인정하며 미국 대사관을 텔아비브에서 예루살렘으로 옮기겠다는 선언으로 잠시 잠잠해진 중동 화약고에 불씨를 던졌다. 이쯤 되면 21세기의 샤일록은 살 한 덩이만 요구한 16세기의 샤일록을 능가하고도 남는다. 

개구리는 올챙이 시절을 모른다. 이스라엘은 갈 곳 없이 떠돌던 디아스포라 시절을 모른다. 자신의 나라를 세운 지 불과 반세기가 조금 지났을 뿐인데 주변의 팔레스타인 땅에서 팔레스타인을 몰아냈다. 팔레스타인인들은 낯선 땅에서 또 다른 디아스포라가 되었다. 미국과 멕시코 국경 지역에만 높은 벽이 있는 게 아니다. 팔레스타인을 몰아낸 이스라엘은 그곳에 흉측한 벽을 세웠다.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세상에서 이스라엘은 여전히 큰소리 친다. 자신들만 신에게서 선택받은 민족이라고. 그런 헛소리가 삼천 년을 이어왔다.  

21세기 샤일록이 중동 화약고에 던진 불씨는 이스라엘에서는 축제의 불꽃으로 변했다. 그들이 세운 흉측한 벽을 타고 타오르는 불꽃이 벽을 닮아 흉측스럽기만 하다. 이스라엘은 여전히 내가 가보지 못한 낯선 곳이다. 그러나 낯선 곳일 뿐 더이상 가슴이 설레지 않는 곳이다. 내 여행 목록에서 이스라엘이 설 자리는 없다. 

굿바이 이스라엘. 굿바이 샤일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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