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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를 만난 건 아주 오래 전의 일이다. 초등학교 시절이었으니까 족히 40년은 넘었다. 40년을 거슬러  올라간 기억 속에서 내가 문을 열고 들어선 곳은 사면 벽의 책꽂이에 책이 가득한 곳이었다. 지금 짐작컨대 교회 도서관이 아니었을까 싶다. 책꽂이에 어린이를 위한 코너가 따로 있었는지는 기억에 없지만 책꽂이에 꽂힌 그 많은 책들 중 내가 꺼내 든 책은 '어린이를 위한 성서 이야기'였다. 어머니를 따라 절에 가서 절밥을 먹곤 하던 내가 교회에 간 이유는 순전히 공책과 연필 때문이었다. 교회에 갔다온 동네 친구들이 새 공책과 연필을 자랑삼아 내 앞에서 흔들었을 때 나도 교회에 가 볼 결심을 했던 것이다. 교회에 간 목적이 엉뚱한 곳에 있었느니 짧게 끝날 수 밖에 없었던 교회와의 인연에서 내가 그를 만난 건 어린 나에겐 신선한 충격이었다.

3미터 가까이 되는 거구인 골리앗이 그에게 다가올 때 그는 뒤로 물러서지 않았다. 돌을 매단 물매 끈을 빙빙 돌리는 그의 당찬 모습이 그려진 책장에서 내 눈은 한동안 멈춰 있었다. 그때 그의 나이는 나보다 많아야 두어살이었다. 나로서는 상상조차 불가한 일을 그가 당당히 해내고 있다는 사실에 나는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용기에 덧붙여 그에겐 지혜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나는 중얼거렸다. 그보다 두 배가 되는 거구를 쓰러뜨리는 힘은 용기 하나만으로는 불가능한 것이었다. 양치는 목동으로서 양을 노리는 맹수들을 내쫒는 물매질을 골리앗을 쓰러뜨리는 데 이용한 지혜와 현명함은 보통 사람에게는 나오기 힘든 일이었다. 더군다나 그곳은 전쟁터였다. 창과 방패가 난무한 곳에서 물매질이라니. 보통 사람이 아니었기에 그는 사울 왕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의 두 번째 왕이 되었다.

내가 다시 그를 만난 건 이탈리아를 여행하면서였다. 나이 오십을 전후해 이탈리아를 두 번 다녀왔다. 그는 피렌체 도시의 시뇨리아 광장에 우뚝 서 있었다. 두 번 다 아카데미아 박물관을 가보지 못했지만 아쉬움은 없었다. 진품을 보기 위해 아카데미아 박물관 앞에서 한 시간 이상 줄을 서야하는 수고에 얼른 마음이 내키지 않았던 것인데 진품과 똑같은 모조품을 아침, 저녁으로 볼 기회가 없었다면 한 시간이 아니라 두 시간 줄 서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을 것이다. 건장한 청년으로 성장한 그는 4미터의 거구로 나를 내려다보았다. 이제 저 정도의 몸이면 굳이 물매질을 하지 않고서도 골리앗을 쓰러뜨릴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들어 그가 더욱 믿음직스러웠다.

나는 그를 몇 주 전 다시 만났다. 타임지 표지에서였다. 그는 아주 어린 모습이었다. 그의 앞에 선 골리앗은 존경의 은총 대신 세계 곳곳에서 비난 세례를 받고 있는 미국 대통령이었다. 네 부모가 불법으로 미국에 들어왔으니 너는 부모 품을 떠나 격리실에 수용되어야 해. 네가 갓난 아이라도 상관없어. 알아듣겠니? 골리앗의 냉기 서린 목소리에 어린 그는 포효했다. 이번에는 그의 무기가 울음이었다. 그의 울음은 천지를 흔들고 전 세계 사람의 심금을 울렸다. 이번에도 그의 KO승이다. 골리앗은 꼬리를 내리고 뒤로 물러섰다. 역사는 되풀이 된다. 과거의 역사가 제공하는 교훈을 깨닫지 못하고서 과거보다 더 나은 결과를 기대하는 것은 사기꾼 심보다.

골리앗이여, 연전 연패의 늪에서 빠져나오고 싶은가. 그러면 다윗처럼 현명함을 키워라. 현명함이 다른 현명함과 부딪힐 때 거기에는 싸움이 없다. 서로를 어루만져주는 배려만 있을 뿐. 골리앗, 너의 그 큰 손으로 다윗의 작고 둥근 머리를 어루만져 줄 때 그것이 너의 승리가 될 터. 언제가 될 지 모르지만 다음의 다윗과의 싸움에서 골리앗, 너의 승리를 한 번 기대해보련다. 나만의 허황된 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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