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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조나에 사는 지구인들이여, 이번 주 여러분은 얼마나 많은 순간 F.A.T. 했는가? 이것이 무슨 소리인가 궁금해 하는 건망증 충만한 지구인들을 위해 다시 한번 설명하겠다. F.A.T은 좌절(Frustration),  불안(Anxious), 그리고 긴장(Tension)의 약자를 모아 놓은 것이다. 내가 만든 말은 아니고 지난 주에 소개한 '릭 라보이(Rick Lavoie)'가 한 말이다. 본격적으로 직장 생활을 시작한 나는 첫 출근 전날 밤, 밤새도록 F.A.T이 충만하여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하지만 걱정과는 달리 다행스럽게도 지금까지 잘 생존하여 매일 아침 출근하고 있다.

나의 새 직장은 동네 초등학교 안에 있는 특수학급이다. 이곳에서 내 인생 2막이 시작되었다. 대한민국의 베테랑 초등학교 교사에서 이제는 미 합중국의 새내기 특수교사가 되었다. 내가 맡은 반은 두 반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새 학년이 되어 새로운 반이 형성될 때까지 나는 오전에는 프리스쿨 연령의 특수반, 오후에는 3학년에서 5학년 학생들로 구성된 특수반에서 담임 선생님을 도와 가르치게 되었다. 덕분에 나는 짧은 경력에도 불구하고 3살에서 18살까지의 다양한 연령대의 특수학급을 볼 수 있었다.        

특수교사가 되면 자의반 타의반으로 학생들의 가정사를 깊이 있게 알게 된다. 학생 한 명 한 명의 구구절절한 이야기들을 알게 되면, 그 가족들이 경험했거나 경험하고 있을 F.A.T의 깊이에 마음이 저려 온다. 

릭 라보이는 가족 중에 장애인이 있는 것을 물침대에서 여러 사람이 자는 것에 비유하였다. 한 명이 몸을 뒤척이면 물침대가 출렁거려 침대 위의 모두가 영향을 받는다. 마찬가지로 가족 중 장애인이 있으면 그 장애가 크던 작던 함께 사는 가족들은 모두가 영향을 받게 된다. 예전에 함께 일하던 특수교사들 중에는 장애인 형제가 있어서 특수 교육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말하는 이가 꽤 있었다. 그런가 하면, 동생의 장애 때문에 부모에게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했다는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사춘기 때 엇나가는 아이들을 본 적도 있었다.     릭 라보이는 장애 학생을 가족으로 둔 가정이 처하는 어려움을 여러가지로 들었다. 

제일 먼저는 부부간의 의사소통의 어려움이다. 자녀에게 장애가 있다는 진단을 받게 되면, 부모는 여러 단계의 감정을 거치게 된다. 회피, 죄책감, 슬픔, 비난의 감정 단계를 왔다 갔다 하게 되는데, 부부가 똑같은 감정 단계에 있지 않고 각자 다른 감정의 단계를 지나고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남편은 '슬픔'의 단계에 있는데 아내는 '비난'의 단계에 있다면 부부는 서로 말이 잘 통하지 않고 서로에게 오해를 하게 되기가 쉬울 것이다. 어른들이 서로 싸우면 가뜩이나 장애로 인해 고립된 가정에서 피해를 입는 것은 결국 아이들일 것이다. 릭 라보이는 긍정적인 말투나 피드백은 행동의 변화를 일으키지만 비난이나 부정적인 피드백은 행동을 멈추게 할 따름이라고 하였다. 어찌보면 너무나 상투적인 해결책인 것 같지만 깊은 고통의 순간, 더욱이 고통의 원인이 무엇인지도 알 수 없어 너무나 절망적인 순간에 누군가 격려의 말, 위로의 말을 건네는 것은 생각보다 큰, 어쩌면 유일한 힘이 된다. 나는 어제 이것을 실제로 경험했다. 프리스쿨 반에서 마이클(가명)이 갑자기 바닥을 뒹굴며 울기 시작했다. 눈물, 콧물이 다 흘러 나오고, 심지어 자기의 배를 막 긁으며 자해 직전까지 이르렀다. 특수교사들은 이것을 'melt down'이라고 부른다. 그러자 나이가 지긋한 선생님이 바닥에서 뒹굴며 난리를 치고 있는 마이클에게 다가가 "괜찮아 질거야, 마이클. 괜찮아. 괜찮다!"라고 속삭이며 다독여 주셨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마이클의 울음소리가 점점 잦아 들더니 감정을 추스리기 시작했다. 만약 이 때 "야, 정신 차려! 이게 뭐 하는 짓이야? 어디서 뒹굴고 야단이야?"라고 마이클에게 소리를 지르거나 야단을 쳤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비록 어른이어도 때로는 마이클처럼 melt down 되어 고통 속에 몸부림 칠 때가 있다. 이때 그 선생님처럼 "괜찮다, 괜찮아 질거야!"라고 말해 준다면 큰 힘이 될 것 같다.

두 번째로 장애학생을 가족으로 둔 가정의 어려움으로 '공평함(fairness)'에 대한 오해를 예로 들었다. 아이들에게 '공평하다'는 것이 무슨 뜻이냐고 물어보면 많은 아이들이 모두를 똑같이 대하는 것이라고 답한다. 장애 학생의 동생이나 형, 언니, 오빠도 이렇게 답할지 모르겠다. 이런 생각이라면,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로 엄마나 아빠에게 더 많은 관심과 배려는 받는 동생이나 형이 얄밉게 생각되고 엄마, 아빠가 불공평하다고 느낄 수 있다. 특히 장애가 ADHD, 자폐증, 학습장애, 의사소통 장애 등과 같이 겉은 멀쩡해 보이는 것일수록 장애 형제에 대한 배려는 불공평과 부당하게 여겨질 수 있다. 그러나 특수교육의 입장에서 본다면 '공평함'이란 모두에게 각자의 필요를 채우는 것을 의미한다. 부모나 교사는 모든 아이들을 똑같이 대할 수 없다. 아이들의 필요가 저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만약 모두를 똑같이 대하려고 한다거나 장애 형제나 학생에게 배려한만큼 다른 형제나 학생들에게 보상을 해서 공평을 유지하려고 노력한다면 점점 더 깊은 불공평과 불만족의 수렁으로 빠져들게 될 것이다. 릭 라보이는 공평해지려고 애쓰지 말라고 충고한다. 서로의 필요를 채워가며 사는 것이 인생이다라는 것을 인정해야 '공평함'의 수렁에서 벗어날 수 있다.      

세 번째로 장애 학생과 장애 학생을 둔 부모가 마주치는 어려움은 장애를 지닌 자녀가 지금의 이 모습 이대로 어른이 될 거라는 절망감이다. 특히 자녀가 사춘기 때 이런 생각을 많이 한다고 하는데, 즉 사춘기 때 아이들이 지금의 자기 모습은 어른이 되었을 때의 축소판이며 이 모습, 이 상태 그대로 어른이 될 거라는 착각을 한다는 것이다. 화려하고 멋진 사춘기를 보내는 얼짱 남녀들은 나의 러블리한 리즈 시절은 영원하리라는 착각에 자존감이 급상승되고 기쁨이 충만하겠지만 장애를 가진 학생들과 그 가족들은 미래에도 이 모습 이대로라면 희망이 없다 생각하면서 깊은 절망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인생에는 '반전'이라는 것이 있지 않은가! 사춘기 때의 사회적, 경제적, 신체적 지위와 모습을 유지하는 사람보다는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 더욱이 과학과 의술이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요즘, 앞으로 10년 후 우리 아이들의 모습은 어떻게 변할지 아무도 알 수 없는 것이다.      

이제 장애인 가족들의 F.A.T가 조금은 와 닿는가? 아무리 말로 설명을 해도 다 표현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아는 만큼 보이고, 볼 수 있다면 도울 수 있을 것이다. 아리조나에 사는 지구인들이여, 혹시 주변에 장애인 가족이 있다면 넉넉한 마음으로 서로의 F.A.T를 거두어 줄 수 있길 바란다. 그래서 좌절(Frustration), 불안(Anxious) 그리고 긴장(Tension)을 즐거움(Fun), 활기참( Active) 그리고 대단함(Tremendous)으로 변화시키는 반전미를 보여주길 바란다.

 

이메일 namenoshi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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