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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요즘 작은 수첩에 사람들의 이름을 적고는 혼자서 그것들을 읽어보고 외운다. 만나는 사람들이 갑자기 많아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사람들이 모두 영어 이름을 사용하기에 발음하기도 익숙하지가 않고 잘 외워지지도 않는다. 순수한 영어 이름이라면 그나마 좀 나은 편인데 중동에서 왔다든지 아니면 인도 출신이라고 하면 그 이름이 더 생소해서 어떻게 발음해야 하는지조차 알쏭달쏭이기 일쑤다. 

이름을 모르면 사람과 마주쳐도 인사 한마디 제대로 하기가 어렵다. 영어도 잘 못하는데다가 이름까지 모르니 그야말로 싸가지 없는 어글리 코리안이 될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내가 이렇게 갑작스럽게 이름을 많이 외워야 하는 까닭은 새로운 직장에 취직했기 때문이다. 그것도 학생들의 이름 외우기가 필수인 교사로 말이다. 

프리스쿨 꼬마들은 생색을 내면서 자기 이름을 잘 안 가르쳐 주기도 한다. 이름을 물으면 모기 소리 만큼 작은 소리로 말을 하기도 한다. 그럴때면 버럭 화를 내고 싶지만 어글리 코리안이 될까봐 참는다. 그리고 아이들의 사물함에 붙은 이름표를 보거나 아니면 교실벽 어딘가에 붙어 있을 학생 리스트를 찾아 교실을 헤맨다. 그나마 우리 반 학생들의 이름은 단박에 외웠다. 학생이 3명밖에 없어서이기도 하지만 그들의 이름이 적힌 서류들을 하도 많이 들여다 봐서 저절로 외워졌다.

한국에서는 학생이 먼저 학교에 전학 와서 등교를 하고 그 학생의 서류들, 예를 들면 생활 기록부, 건강기록부, 가정환경조사서 등은 한참 후에야 담임 교사에게 전달되는 일이 허다했다. 사람을 먼저 만나고 그 학생에 대한 배경을 나중에 알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특수교육에서는 반대이다. 학생에 관한 서류가 먼저 도착하고, 그 학생의 부모를 만나고 나서야 비로서 학생의 얼굴을 보게 된다. 

뭐가 먼저든 무슨 상관이냐 싶겠지만 이 두 가지를 경험해 보니 많은 차이가 있다고 느껴진다.

이곳에서는 한 학생이 특수학급으로 입학하고자 하면 먼저 서류가 한 뭉탱이 인터넷으로 전송된다.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은 3살에서 5살 사이이므로 대부분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의 3년~5년간의 의료 기록과 교육 경험 등을 담고 있는 서류들이 전송된다. 꽤나 자세한 기록들이 담겨있다. 

예를들면 "영철"이는 몇월 몇일에 제왕절개를 통해 몸무게 몇 파운드로 태어났고, 한 살이 되었을 때 몇 단어의 말들을 했으며 언어치료는 언제 시작하게 되었는지 등에 대한 정보들이 담겨있다. 또 어떤 기관에서 누구 의사선생님에게 어떤 검사지로 몇가지 심리 검사를 받았으며 그 결과  영철이는 정상 범주에서 어느 정도 뒤떨어져 있는지 등이 숫자화 되어 문서에 실려 있다.

검사기록도 엄청나게 자세하다. 

시력과 청력 검사는 기본이요, 학생의 장애에 따라 각종 심리검사, 인지기능 검사, 운동기능 검사, 정서검사 등을 받고 나서 그 결과와 전문의의 해석이 자세하게 문서에 기록되어 있다. 우울정도, 감정의 기복, 집중력, 반사회적 성향 등등이 기록되어 있다. 

또한 전에 다녔던 학교나 기관의 선생님들의 기록도 자세히 나와있다. 수업시간에 어떻게 행동하는지, 화가 나면 어떤 식으로 떼를 쓰는지 친구들과는 어떻게 지냈는지 구체적인 에피소드를 기록하여 읽는 나로 하여금 충분히 상상의 나래를 펼 수 있게끔 한다. 심지어 부모님이 어떤 장애를 지니거나 치료를 받은 적이 있는지도 나와있다. 그래서 특수교사는 자료에 대해 신중하게 접근하고 비밀 보장을 철저히 준수해야 한다.

나는 학생들을 글자와 숫자로 먼저 만나면서 여러가지 상상을 했다. 어떻게 생겼을까? 화가 나면 어느 정도 크기의 목소리로 얼만큼 오래 소리를 지를까? 힘이 셀까? 등등 말이다. 

이렇게 글자와 숫자로 학생을 접하고 드디어 얼굴 대 얼굴로 대면하게 되면 새로운 기분이 든다. 그 아이에 대해 만나자마자 많은 것을 알게 되고 아이가 하는 행동의 대부분을 이해하는 눈을 가지게 된다. 혹시라도 아이의 행동 중에 이해되지 않는 것이 있다면 마치 영어 공부를 하다가 모르는 단어를 만나면 얼른 영어 사전을 뒤적이는 것처럼 그 학생의 자료들을 들쳐 보곤 한다.

이 시점에서 한국에 있는 또는 한국에서 온 학부모 지구인들에게 당부의 말을 하고 싶다. 

일전에 한국에서 일할 때, 우리 반 학부모들이 단체로 자녀의 심리 검사를 받았다는 첩보를 입수하였다. 이리 저리 알아 본 결과, 어느 날 학교 식당에 어떤 아줌마가 자리를 잡고 있으면서 글쓰기 및 책읽기 그룹 과외를 신청하면 공짜로 또는 매우 저렴한 가격으로 적성검사를 해 준다고 했던 모양이었다. 아이들을 데리러 왔던 학부형들이 그만 그 꼬임에 넘어가 너도 나도 적성 검사를 받고는 우리 아이는 장차 커서 법률 쪽으로 나가야 하겠네 또는 의사가 되야 겠네, 방송계통에서 일을 해야 겠네 등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 사실을 알게 되고는 너무나 어처구니가 없어 한 학부모에게 질문을 던졌다. "아니, 어머님, 싸게 해 준다고 동네 미장원에서 피부암 검진 할 겁니까?" 암검진이나 심장 엑스레이 촬영 등을 헐값이나 저렴한 가격에 떨이 상품으로 해 주지 않는 것처럼 제대로 된 심리 검사나 적성검사는 값을 깎거나 무엇을 팔기 위해 부록 상품으로 실시 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러한 검사들은 검사를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검사 결과를 해석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그러므로 눈에 보이지 않는 지능, 심리, 적성 등의 검사를 받을 때는 반드시 제대로 된 기관에서 적절한 자격을 갖춘 사람에게 받아야 한다. 

예를 들면 정신과 의사 또는 심리검사 자격증이 있는 심리학 박사, 학교에서 일하는 심리 상담사 등이다.   

지구인들이여! 자녀를 나타내는 숫자와 글자에 돈과 시간을 아끼지 마시라!

 

이메일 namenoshi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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