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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아리조나주립대(ASU)의 한 강의실 풍경. 

항공우주국(NASA) 미낙시 와드화 박사가 화성 토양 채취와 관련해 열띤 강연을 이어나가자 학생들은 교수의 설명을 노트에 적거나 휴대전화로 슬라이드를 촬영했다. 

교실 앞줄엔 수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여학생들이, 뒷줄엔 남학생들이 몰렸다. 

여느 대학 강의실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이지만, 딱 하나 다른 건 수강생들이 보청기를 끼고 백발이 성성한 고령자라는 점이다.

미국에서 현재 약 2만명의 고령자들이 대학 캠퍼스 내 시설에서 거주하면서 노후를 즐기고 있다고 이코노미스트가 최근 보도했다. 

ASU 캠퍼스에는 특이한 20층짜리 건물이 있다. 

부동산 개발업체인 퍼시픽 리타이어먼트 서비스가 건설·운영하는 고령자 맞춤형 시설인 '미라벨라'다. 

미라벨라는 '대학 은퇴자 커뮤니티(URC)’다.

미라벨라 ASU는 식당 4곳과 수영장·체육관·게임장 등을 갖췄다. 

건물 2층엔 기억 관리 센터와 24시간 돌봄 시설도 있다.

은퇴한 연금 생활자가 300명 넘게 사는 이곳은 코로나19가 한창이던 2020년 처음 문을 열었다. 

당시에도 수요가 많아 거의 만실이었다고 한다. 

거주자들은 대학 출입증을 받기 때문에 대학생과 동일하게 수업을 듣거나 문화활동, 이벤트 등에 참가할 수 있다. 

단, 고령자들은 대학생들과 달리 시험을 보지 않아도 된다.

미라벨라와 같은 '대학 내 은퇴자 커뮤니티'는 미국 내 대학들에서 점차 확대되고 있다. 

부부가 함께 URC에서 생활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전직 신문 편집자였던 빌 게이츠(80)는 2년 전 화학박사 학위를 가진 아내와 함께 미라벨라 ASU로 이사했다. 

게이츠는 이코노미스트에 "대학생 사이에서 생활하니 활력이 넘친다"며 "피자를 먹으며 인공지능(AI)을 토론하는 모임에서 인간의 수명이 얼마나 돼야 바람직한지를 놓고 20대들과 열띤 토론도 벌였다"고 자랑했다.

URC는 은퇴 후에도 지적 호기심을 충족하고 싶어하는 고령자들을 겨냥해 대학이 도서관을 개방하거나 평생 교육 프로그램을 여는 형태로 시작됐다. 

그러다가 아예 대학이 사업 주체가 돼 직접 URC를 운영하는 식으로 발전했다. 

학교 재단의 비영리법인(NPO)이 24시간 돌봄 시설 등 전문적인 의료 및 건강 서비스도 별도로 운영한다. 

대학 입장에선 이런 수익을 학교 발전 자금으로 쓸 수 있다.

이처럼 캠퍼스 내에 은퇴자 시설을 두거나 관련 업체와 제휴를 맺은 미국 대학은 85곳에 이른다. 

스탠퍼드대의 '클래식 레지던스', 플로리다대의 '오크 해먹' 등이 대표적이다. 

조지타운대 노인생활관리대학원의 강사인 앤드류 칼에 따르면 현재 미국 고령자 2만명이 이런 URC에서 생활하고 있다.

대학에선 연금 생활자들의 '캠퍼스 입성'을 반기는 분위기다. 

미국 대학들도 학생 수가 줄어드는 일명 '입학자 수 절벽'에 직면해 있기 때문이다. 

2010년 미국 전체 학부 재학생 수는 1800만명이었지만, 2022년엔 1600만명으로 줄었다.

반면 고령자는 증가세다. 

미국에선 매일 1만명 이상의 베이비붐 세대(1946~1964년생)가 65세가 되고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이들 베이비붐 세대는 대체로 부유하고 교육 수준이 높으며 취향이 까다롭다"며 "새로운 자극을 원하는 베이비붐 세대의 소망은 대학 캠퍼스에서 충족될 수 있다"고 짚었다.

앤드류 칼은 "대학 내 남는 공간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고민하는 대학 관계자들과 정기적으로 상담하고 있을 정도로 수요가 많다"고 이코노미스트에 말했다. 

그러면서 "인생의 마지막 단계에 접어든 고령자가 (캠퍼스 생활에 정이 들어) 훗날 유언장을 통해 해당 대학에 기부금을 남길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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