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 초하루! 날이 날인만큼 우린 특별한 떡국 준비에 나섰답니다. 우리 오 회장님께서 사랑과 정성으로 사흘간 고아 뽀얗게 울궈낸 사골국물에 흰떡과 왕만두 투하. 커다란 두 냄비는 신나게 펄펄 끓어 오르고, 여기에 풀어논 달걀 휘리릭 두르고, 뜨끈한 떡국에 고명과 양념얹어 한그릇씩 배급이 끝나면 시식시간으로 돌입 합지요. 여기저기서 후후~~ 불어대며, 우와 우와~ 탄성이 터집니다. 국물은 진국에, 떡은 쫄깃쫄깃, 거기에 왕 만두 한입 베어물면 입안에 파~ㄱ 하고 터지며 흘러나오는 구수한 육즙의 고기만두.. 캬!~ 여기에 찰떡궁합의 매콤한 깍두기, 접시 그득한 갖가지 밑반찬들은 잠시 갈길 망설이는 우리의 젓가락들을 유혹 합지요. 아~ 그날을 떠올리노라니 어느새 입 안엔 침이 가득.. 우째, 우리의 산행 얘기가 또 먹자판으로 흐르는듯해 체면이 좀 구겨지지만, 그래도 우리의 정월 초 하룻날 저녁은 이렇게 맛있고 즐겁게 떡국을 먹으면서 또 기분좋게 한 살 더 먹어주는 즐거운 시간이 되었지요.
밖에선 남자분들이 모닥불 피우고 둘러앉아 이야기 꽃이 무르익어갈 무렵, 안에선 손 빠른 여인들의 설거지는 끝이나고, 내일의 산행에 일용할 양식의 분배도 끝을 냈지요. 2년 전의 '그랜드 캐년 대장정'에 비하면 이번 새해맞이 산행의 먹거리 규모는 약소하리만치 아주 간단했지만, 그래도 5대 영양소가 골고루 포함되고 우리의 발걸음을 사뿐사뿐 옮겨줄 에너지 연료들로 채워졌지요.
길고 긴 겨울 저녁.. 자! 과연 그 다음엔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요? 때가 때인 만큼, 우리 명절 고유의 놀이! 윷판이 벌어졌지요.. 손바닥에 짝짝 달라붙는다는 박달나무 윷가락이 누구 한테는 계속 모와 윷의 행진인데 반해, 정말 누구한테는 어이없게도 내리족족 개만 나오는 개판이 될 수 있다는 웃을수 없었던 게임의 현실.. ㅋㅋ 팀은 영 & 올드 두 팀으로 나뉘었고, 우리 산행에 처음으로 조인한 외국청년, 영팀의 히로였고 유일한 청일점 러시안 청년, 아톰에게 룰을 설명해주면서 게임은 시작됐지요. 윷놀이는 과연 어땠을까요? 한번은 달랑 대여섯번 만에 끝난 판도 있었는가하면, 다 끝나가는 판에 툇도 하나로 맨 끝자리에 있던 말을 잡으며 윷판이 완전 역전되는 믿을 수 없는 게임 상황.. 같이 한번 상상의 나래를 펴 보실까요? 올드 팀의 '어리버리 여사'께서 윷을 던졌지요.. 모가 두차례 나고 걸이 나와 말판을 두개 업어 윷판 정 중앙에 떡하니 안착시켰드랬어요. 이제 영팀 차례가 되어 윷가락을 던지니 도가 났지요. 자! 그 다음 타자.. 말만하면 그대로 이루어지는 올드 팀의 '여의주 여사' 차례가 되어, "도 나와라!"하고 주문을 외고 윷가락을 던지니 정말 도가 나왔지요. 영팀의 간신히 하나 올린 도를 잡고는 다시 던지니.. 과연 뭐가 나왔을까요? 맞아요! 툇도!! 단 두번만에 곧바로 완전무결하게 말판을 끝의 과녁에 보내며 싱겁게 끝을 내기도 했지요. 또 한번은 영 팀이 이겨가는 거의 게임이 끝나가는 상황에서 기적같은 올드 팀의 툇도 하나가 맨 끝자리에 있던 말판을 잡으면서 전세가 뒤집어지는 상황도 있었지요. 영팀은 전의를 상실했고, 올드 팀은 기분이 완전 업되어 좋아서 방방 떴지요. 이런 게임 형상을 '파죽지세'로 몰아 부쳤다고 표현하면 좀 우스운가요? 더 재밌었던건 영팀의(아톰을 제외한) 개 나올 확률이 거의 70-80 % 였다는데 있지요. 던졌다하면 개, 말 그대로 '개판!' 이였더랬어요. 크크.. 그리하야, 영팀은 평소처럼 어른을 지극히 공경하는 맘으로 받들어 모셨고, 진 벌로 내려오면서 맥도널드 커피 한 잔씩 돌려가며 그 밤의 미스테리한 놀이에 또 한번 배꼽을 잡았드랬지요. 다시금 생각해봐도 우리 선조들의 기가 막힌 놀이정서에 감탄이 절로 나올뿐이지요. "툇도!" 세상 어느 게임문화에 이렇게 한 걸음 뒤로 물리는 법칙이 있을까요? 그저 앞으로 빨리 달리는 것만이 게임의 법칙인데 반해, 우리의 윷놀이에는 상대편의 말판을 잡거나 윷이나 모를 내면 한번 더 던질 수 있는 인심좋은 보너스까지.. 우리 조상님들의 기지와 해학이 담긴 아름다운 놀이문화라 아니 할수 없지요. 그날 밤 윷판이 위로부터 시작된 장유유서 서열이였다면, 다음날 산행은 과연 어떤 서열로 진행됐을까요?
드디어 대망의 날, 일찌감치 기상하여 정갈하게 목욕재계후 우린 아침을 간단히 준비했지요. 쉽고 빠르고 간단하게! 우리의 아침은 끓는 물에 오토밀 한봉, 그리고 계란말이와 밑반찬으로 간단히 끝내고, RV의 바리스타 스티브님으로부터 직접 공수해온 맛있는 커피 한 잔씩을 입가심으로 나눴지요. 새해 첫날을 같이 하시려 오셨던 이 선생님은 바쁜 일정 때문에 함께 하지 못하는 산행에 아쉬운 맘을 뒤로 한 채 바루와 함께 돌아가셨고.. 우리 12명은 각각 두 차에 나눠 타고 어둠을 몰아내며 그랜드 캐년을 향해 씽씽 달렸지요. 동녘 하늘엔 샛별인 금성이 나즈막히 빛 발하고, 차 안에 깔리는 음악 소리는 파도를 가르고 바람을 가르고 우리 몸 속 깊숙히 파고들 무렵 어느덧 동녘 하늘엔 먼동이 터오르고, 우린 마침내 아침의 여명을 받아 장엄하게 위용을 드러내는 그랜드 캐년에 도착했답니다. 아프리카 속담에, "빨리 가려거든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 라는 말이 있답니다. 함께 했기에 가능했던 신년맞이 첫 산행의 훈훈한 추억담은 계속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