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때의 일이다. 어떤 여학생이 아이큐가 90이라는 소문이 나면서 아이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돌고래 보다 낮은 아이큐라며 킥킥 대던 일이 있었다.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 당시 전교생을 대상으로 지능검사를 했던 모양이다. 지금 돌이켜보면 왜 지능검사를 했는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아무튼 선생님을 도와 서류 정리를 하다가 호기심이 가득했던 나는 우연히 나의 아이큐 검사 결과지도 보게 되었다. 혹시 나도 돌고래의 그것이 아닐까 하는 두려움에서였던 것 같았다.
그러나 결과를 보고서는 깜짝 놀랐다. 왜냐고? 아인슈타인과 똑 같은 아이큐 지수가 나왔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나는 아이큐를 믿지 않게 되었다. 그 검사가 정확했다면 도저히 나의 별명이 "어벙이" 또는 "덜렁이"이 될 일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당시 루머의 중심이 되었던 여학생이 전혀 바보라는 느낌을 받지 못했고 또한 내가 아인슈타인과 같은 업적을 이룰 것 같지 않았기에 지능검사란 어쩌면 거대한 사기극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품었다.
특수교사가 되고 나서 매번 "개별화 교육 계획안" 이라는 서류를 작성할 때마다 특수교육을 받는 학생들의 각종 진단검사 결과를 읽게 된다. 특수교육 대상자가 되기 위해서는 지능검사, 학업성취도 검사, 정서검사 등등 많은 검사를 한다.
그런데 지능검사를 통해 알게 되는 "아이큐"는 여러 정보 중 하나로만 취급되고 우리가 여기는 것만큼 중요하게 다루어지지 않고 있다.
아이큐에 대해서는 아예 언급을 안하고 그저 보충 자료로만 취급하는 경우도 많았다. 심지어 나는 특수교사 초기에는 개별화 교육 계획안에 아이큐 검사 결과가 나와 있는지조차 몰랐다.
이제야 깨닫는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아이큐는 특수교육을 받아야 하는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하나의 기준이 될 뿐이고 이것이 학교생활의 성공과는 그다지 관계가 없는 것을 말이다.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을 보면 지능은 정상이나 감정이 조절이 잘 안 되거나 절제력이나 인내심이 부족하여 고통스러워 하는 학생들이 대부분이다.
오히려 지능이 낮은 경우는 학교생활에서 그다지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 지능이 낮지만 성격이 원만하거나 보통이면 그냥저냥 즐겁게 학교 생활을 한다.
그런데 지능은 정상이거나 보통 이상인데 불안증이 있다거나 폭력성이 있거나 아니면 욱하는 성격이라면 학교생활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지기 마련이다. 특히 미국에서는 '욱하는 성격'은 가장 큰 경계 대상이다.
지능검사에는 몇 가지 종류가 있는데 내가 일하는 교육청에서는 웩슬러 지능검사(Wechsler Intelligence Scale for Children-5th Edition)라는 진단도구를 사용한다.
지능검사도 해가 지날수록 업그레이드가 되는데 정확한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되도록 최신판을 사용해서 검사를 해야 한다.
해가 갈수록 지식의 양과 기술의 정도가 달라지기 때문에 옛날 지능검사지로 검사를 하면 결과가 잘못 나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능이 과도하게 높게 나오는 경우는 옛날판 지능검사지를 사용해서가 아닐까 생각된다.
어떤 검사도구로 검사를 하느냐 만큼 중요한 것은 검사를 진행하고 채점하며 해석하는 이가 얼마나 전문성을 갖춘 사람인가 이다. 이는 엑스레이 결과를 의사가 판독하느냐 아니면 동네 아저씨가 판독하느냐와 마찬가지인 것이다.
지능검사를 비롯하여 각종 심리 검사는 반드시 전문가가 실시하고 검사를 해석해야 한다.
예전에 한국에서 교사로 일할 때였다.
학부모 한 사람이 자기 아이가 커서 관리직 쪽에서 일하면 성공할 것이라는 적성검사 결과가 나왔다고 말해 주었다.
어디서 누구에게 적성검사를 받았느냐 물으니 학습지 아줌마가 학습지를 신청하면 무료로 적성검사를 해 준다는 말에 귀가 솔깃하여 아이를 한번 받아 보게 했다는 것이다. 여기에 한 술 더 떠 학습지 아줌마가 아이 친구들을 몇 명 모아 오면 그 친구들의 적성 검사료를 대폭 할인해 준다고 까지 했다는 것이었다.
어떤 방법으로 적성검사를 했느냐 물으니 최근 방송에 나왔던 지문적성검사라며 지문을 보면서 적성을 밝혀 내는 검사라고 했다. 이것이 손금보는 것과 무엇이 다른지 알쏭달쏭 의문이 떠올랐지만 교양과 지식이 넘쳐 흐른다고 소문이 났던 학부모가 언뜻 들어도 이상한 아이디어에 혹한다는 것이 슬프기만 했다.
지능, 적성, 정서 등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심장, 간, 혈액만큼이나 분명하고 중요한 기관이나 요소이다. 만약 학습지 아줌마가 무료로 간암 검사를 해 준다고 하면 이렇게 쉽게 넘어가겠는가? 그리고 친구들 몇 명을 모아 오면 간암 검진을 할인해 준다고 하면 기뻐서 춤을 추겠는가? 암검사를 의사가 있는 병원이 아닌 동네 커피숍에서 받으려 하지는 않을 것이다. 수년간의 수련과 경험을 쌓은 의사가 최신 기계를 동원하여 진행하는 암검진도 결과를 쉽게 믿지 않고 두 번 세 번 검사를 한다.
그런데 이상하게 지능, 적성, 정서 검사 등은 딱 한번 해서 나오는 결과를 그대로 믿는 경우가 많고, 심리 상담센터나 정신과 의원이 아닌 수련회, 학교행사, 학원 등 비전문적인 곳에서 받는 일도 허다하다. 그런가하면 마음의 병이나 집중력의 문제가 있는 경우 등도 병이나 장애라고 인정하길 어려워하고 여기에 대해 치료를 받거나 약을 처방 받는 것도 대단히 부정적 또는 노력의 낭비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진짜 똑똑한 것은 무엇일까?
아이큐가 높은 것이 아니라 지능, 정서, 그리고 지식이 잘 어우러져서 균형 잡힌 생활을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 해 본다. 알고 있는 것을 실천할 수 있는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이 정녕 똑똑한 사람이라고 나름대로 정의 내려 본다.
2021년, 똑똑한 사람, 균형 잡힌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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