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조나의 선택은 도널드 트럼프와 힐러리 클린턴이었다"

미국 공화당 대선 선두 주자인 도널드 트럼프와 민주당의 유력 주자인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 아리조나 경선에서 승리를 거뒀다.

공화당의 테드 크루즈(텍사스) 상원의원은 유타에서 압승을, 그리고 민주당의 버니 샌더스(버몬트) 상원의원이 유타와 아이다호 2곳에서 각각 대승을 거뒀다.

우선 공화당을 보면 프라이머리(예비선거) 방식으로 치러진 아리조나에서 트럼프는 22일 오전 11시 개표 70%의 상황에서 47%의 득표율로 일찌감치 승리를 확정 지었다. 크루즈 의원은 23.7%, 존 케이식 오하이오 주지사는 10.0%를 기록했다. 

트럼프는 승자독식제(WTA·Winner Take All)에 따라 아리조나 지역 대의원 58명을 독차지했다. 멕시코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주들의 하나인 아리조나에서는 트럼프의 강경한 이민 정책이 유권자들에게 먹혀든 것으로 보인다. 또 잰 브루어 전 아리조나 주지사와 마리코파 카운티 셰리프국 조 알파이오 국장의 지지를 끌어낸 점도 승리 요인으로 분석된다. 이들은 불법 이민자들에게 엄중 단속을 주창해온 인물들이다. 

반면 크루즈 의원은 같은 시각, 개표가 49% 진행된 유타 코커스(당원대회)에서 69.4%의 압도적인 득표율을 기록하며 승리를 확정했다. 존 케이식 오하이오 주지사가 16.6%로 2위, 트럼프가 14.0%로 3위를 각각 달렸다. 크루즈 의원은 50% 이상 득표자에게 대의원을 몰아주는 '승자 절대다수 배분제'(WTM·Winner Take Most)에 따라 이 지역 대의원 40명을 모두를 차지했다. 크루즈 의원의 유타 압승은 '트럼프 반대 캠페인'의 선봉에 선 이 지역 출신 밋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의 전폭적인 지지에 힘입은 것으로, 일단 트럼프의 '일방적 독주'에 제동을 걸 수 있게 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한 크루즈가 유타 주에서 승리한 데에는 트럼프를 부정적으로 보는 모르몬교 세력이 영향력을 발휘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하지만 크루즈가 과반의 득표를 기록한 것은 자체적인 경쟁력을 보여줬다는 평가가 가능하다. 크루즈가 존 케이식 오하이오 주지사와 단일화에 성공한다면 더 큰 파괴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그러나 객관적인 전력상 크루즈가 트럼프의 대세를 꺾어놓는 것은 여전히 만만치 않은 과제다. 트럼프는 승자독식제가 적용된 아리조나에서 대의원 58명을 모두 가져감으로써 741명의 대의원을 확보하게 됐다. 매직넘버(1237명)의 59.9%에 이르는 수준이다. 461명을 확보한 크루즈와는 격차가 분명하다. 강경 티파티 운동을 주도하는 비주류 대표인 크루즈를 공화당 지도부가 지원할지도 미지수다. 결국 다음달 열리는 위스콘신(42명)과 뉴욕(95명) 경선을 앞두고 크루즈를 중심으로 하는 반 트럼프 후보 단일화 논의가 어떤 식으로 진행될지가 관전포인트이다. 

반면 트럼프가 아리조나 승리에 힘입어 후보 지명에 필요한 '매직 넘버'(전체 대의원 2천472명의 과반인 1천237명)의 약 60%에 다가서는 동시에 크루즈 의원과의 대의원 격차를 이전보다 조금 더 벌리긴 했지만, 크루즈 의원이 맹추격에 나서면서 자력 과반 확보는 더욱 불투명해졌다. 과반 득표자가 없을 경우 공화당 지도부가 후보 결정에 개입하는 '중재 전당대회'(brokered convention)를 열게 되는데 이는 트럼프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한 시나리오다.

민주당에서는 대의원이 가장 많이 걸린 아리조나(슈퍼대의원 포함 85명)에서 클린턴 전 장관이 74% 개표 기준으로 58.4%의 득표율을 기록해 39.1%에 그친 샌더스 의원을 누르고 승리했다. 반면 샌더스 의원은 유타(37명)에서 74.1%, 아이다호(27명)에서 78.0%의 높은 득표율로 20% 초·중반 대에 그친 클린턴 전 장관을 큰 표차로 누르고 압승했다.

22일 민주당 경선의 확실한 승자는 샌더스였다. 클린턴이 최대 승부처인 아리조나를 가져간 반면 샌더스는 유타주와 아이다호에서 70%가 넘는 지지율로 승리했다. 현재까지 클린턴의 누적 대의원은 슈퍼대의원을 포함해 1711명으로 늘어 '매직넘버'(2383명)의 71.8%에 이르렀다. 샌더스는 비록 두 곳에서 승리하긴 했지만 누적 대의원이 939명에 불과하다. 그러나 클린턴이 유타와 아이다호에서 참패한 것은 뼈아픈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유타와 아이다호는 주류인 백인 유권자의 비중이 90%를 훌쩍 넘는 전형적인 '화이트 스테이트'(white state)이기 때문이다. 클린턴이 아리조나에서 그나마 '수성'할 수 있었던 것은 기존 지지층인 비 백인 소수인종 덕분이었다. 본선을 겨냥해 지역과 인종, 세대 전체로 표를 확장해나가려는 클린턴에게는 선거전략을 재점검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벨기에 테러 여파로 조성된 '안보정국' 상황에서 치러진 이번 경선 결과는 기존의 여론조사 흐름과 승패 자체는 비슷했으나 득표 차는 예상보다 훨씬 큰 편이었다.

클린턴은 아리조나 프라이머리 승리를 확인한 22일 오후 브뤼셀 테러를 언급하며 "우리 국경에 장벽을 세우고 동맹에 등을 돌려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클린턴은 이날 시애틀에 모인 유권자들 앞에서 "오늘 우리가 브뤼셀에서 목격한 사건은 테러대응책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일깨워준다"며 이같이 말했다. 클린턴은 "테러 앞에 미국은 패닉에 빠지지 않는다"며 "우리는 미국-멕시코 사이에 더 높은 장벽을 세워 우리 동맹에 등을 돌리고,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버려서는 안 된다"며 "도널드 트럼프와 테드 크루즈, 다른 사람들이 제안하는 (고문 등은) 옳지 못할 뿐만 아니라 우리를 위험하게 만든다"고 비판했다. 테러용의자에게서 정보를 얻기 위해 그들을 고문해야 한다고 주장한 공화당의 유력 경선주자 도널드 트럼프를 겨냥한 발언이다. 

트럼프는 같은 날 "테러에 대해서는 내가 옳았다. 이젠 강경하게 나가야 할 때"라며 브뤼셀 테러를 이용해 지지를 호소했다. 트럼프는 22일 폭스뉴스에서 "(대통령이 되면) 상황이 파악될 때까지 국경을 폐쇄하겠다. 이 나라에 누구를 받아야 할지에 대해 미국은 정신을 차리고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트럼프는 "정말 아름다운 도시였던 브뤼셀이 이제는 재앙의 도시가 됐다. 미국도 조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무슬림 입국을 전면 차단하겠다는 기존 주장에서 더 나간 것이다.

한편 승리를 거두긴 했지만 트럼프의 아리조나 유세는 순탄치 않았다.

19일 트럼프의 아리조나 유세는 반대 시위대의 통행 방해와 유세장 내 주먹 다짐 등으로 혼란 속에 진행됐다. 트럼프는 이날 피닉스시 인근 파운틴힐즈에서 대규모 유세를 벌인 뒤 투산에서 두번째 유세를 진행했다.

첫번째 유세부터 반대 시위대의 방해가 잇따랐다. 트럼프 반대 시위대는 파운틴힐즈로 들어가는 도로를 차량으로 막아세우는 등 교통체증을 일으켰고, 차량이 견인되자 인간 장벽을 만들어 트럼프와 캠프 관계자들의 통행을 방해했다. 시위대는 또 유세장 근처에서 "증오는 이제 그만" "트럼프는 증오다" 등의 구호가 적힌 피켓과 깃발을 들고 시위를 벌였다. 이에 트럼프 지지자들은 "트럼프"를 연호하거나 "힐러리를 감옥에 보내라" 같은 문구가 적힌 피켓을 흔들며 맞섰다. 이런 소동으로 트럼프의 피닉스 유세는 한시간 가까이 늦게 시작됐다. 트럼프는 유세 시작에 앞서 반대 시위에 대해 "부끄러운 일"이라면서 경찰에 감사를 표하기도 했다. 피닉스 경찰은 교통방해에 가담한 트럼프 반대 시위 참가자 3명을 체포하고 자동차 2대에 대해 견인 조치를 내렸다. 경찰은 이번 체포가 시위 자체 때문이 아니라 교통방해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같은날 오후 이어진 투산시 유세도 순탄치 않았다. 유세장 내에서 주먹이 오가고 백인우월주의 단체 쿠클럭스클랜(KKK) 복장을 한 사람이 쫓겨나기도 했다.

투산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트럼프의 두번째 유세에서 브라이언 샌더스라는 이름의 남성이 트럼프 반대 의사를 밝히다 지지자들에게 폭행을 당했다. 이 남성은 미국 국기가 그려진 티셔츠 차림에 트럼프의 얼굴에 '미국에 해롭다'(Bad for America)라는 글귀를 적은 손팻말을 들고 트럼프 유세장에 나타났다. 이 남성은 곧 보안요원들에게 이끌려 유세장 밖으로 인도됐는데 이 과정에서 트럼프 지지자로 보이는 남성 관중으로부터 주먹질과 발길질을 당했다. 경찰은 곧바로 둘을 떼어놓은 뒤 폭행을 가한 남성에게 수갑을 채워 끌고 나갔다고 언론들은 전했다. 이 직전에는 유세 관중 가운데 KKK 복장을 한 사람이 발견돼 트럼프가 직접 꼬집어 유세장 밖으로 쫓아내기도 했다. 트럼프는 문제의 관중을 꼬집어서 내보내라고 말한 뒤 "자기 딴에는 귀엽다고 생각하겠지만 역겨운 사람이다. 우리의 헌법상 권리를 빼앗아가는 말썽꾼들"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