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미국에 추가 증설을 검토하고 있는 새 반도체 공장 부지를 놓고 깊은 고민에 빠졌다.
기존 텍사스 오스틴 공장 부지 인근이 사실상 유력해보였으나 최근 이 지역에 불어닥친 한파와 주정부 세제 지원, 경쟁사 TSMC 투자 행보 등을 고려할 때 아리조나가 급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지난달 "삼성전자가 최대 170억달러(약 18조8000억원)를 투자해 증설할 새 반도체 공장 부지 후보지로 아리조나 2곳, 텍사스 오스틴, 뉴욕주 제네시 카운티를 놓고 검토 중"이라고 보도한 바 있다.
삼성전자가 오스틴 이외 지역에도 관심을 보이는 이유는 얼마 전 텍사스 지역에 불어닥친 한파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삼성전자는 현재 텍사스 오스틴에 14나노공정 반도체 파운드리 공장을 운영하고 있는데 이번 한파로 반도체 생산에 필수적인 전력과 물 공급에 차질을 빚으면서 손실 규모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하루 100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이 공장은 2000억원의 손해가 난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한 번 멈춘 반도체 공장을 재가동하려면 정교하고 세밀한 라인 점검이 필요해 용수와 전력 공급이 정상화된다고 하더라도 향후 2~3개월은 반도체 생산이 원활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 경우 삼성전자 오스틴 공장이 입을 피해는 1조원 이상까지 늘어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번 텍사스 한파는 기후변화로 인해 북극에 머물러 있던 찬기운이 아래로 밀고 내려오면서 발생한 것이지만, 삼성전자 입장에선 이 같은 일이 언제든지 재발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는 것이다.
24시간, 365일 꾸준하고 안정적으로 가동돼야 할 반도체 팹이 이 같은 리스크를 감당하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
경쟁사 TSMC가 아리조나주 피닉스시로부터 적극적인 '후방 지원'을 받으며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는 점도 삼성전자가 텍사스 이외의 지역으로 눈길을 돌리는 이유다.
우선 아리조나주는 텍사스에 비해 주정부에 내야할 세금이 낮은 편이다.
삼성전자가 텍사스 오스틴에 향후 20년간 8억550만달러(약 9000억원)의 세금감면이라는 구체적인 '계산서'를 제시한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삼성전자는 텍사스 오스틴시 당국에 팹 증설과 관련, 세금 감면을 해주지 않을 경우 증설 지역을 옮길 수 있다는 투자의향서 수정본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는 투자의향서에서 "기술자들의 접근성과 기존 반도체 제조 생태계, 시장과의 거리, 공적·사적 파트너십 등 네 가지 기준으로 후보지를 평가 중"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텍사스의 높은 세금이 고려 요소"라는 말도 덧붙였다.
또한 아리조나주 피닉스 인근은 예상치 못한 한파나 이상기후에 대한 염려가 적은 지역이라는 것과 미국 최대 규모의 원자력 발전소인 팔로 버디 발전소가 피닉스 외곽에 자리하고 있어 안정적 전력공급이 가능하다는 것도 장점으로 꼽히고 있다.
이런 가운데 2일 '피닉스 비즈니스 저널' 등은 "TSMC가 피닉스시에 건설 예정인 반도체 공장 투자규모가 기존 계획보다 3배 커질 것"이라고 보도했다.
지난해 5월 TSMC는 120억달러(약 13조원)를 투자해 2024년까지 아리조나에 5나노 공정 라인을 완공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하지만 최근 조 바이든 대통령이 반도체 공급망 검토 행정명령에 서명하는 등 미국 내 반도체 공급망 강화를 강조하면서 TSMC의 투자도 확대 기조로 변했다.
TSMC는 기존 120억달러 대비 3배 늘린 최대 350억달러(약 40조원) 규모의 투자를 검토 중이며, 1000여명의 현지 엔지니어 채용 계획도 세우고 있다.
TSMC의 공장이 모두 완공되면 월 10만장 규모의 반도체 웨이퍼 생산이 가능하다.
TSMC가 당초 밝힌 2만장보다 5배 큰 규모다.
TSMC는 미국 진출을 선언한 후 설비 확장 의지를 내비쳤다.
류더인 TSMC 회장은 지난 1월 "미국 공장이 메가 사이트 규모로 발전하길 희망한다"고 밝혔었다.
아리조나주도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용수 공급에 피닉스시 운영 자금 2억500만달러(약 2320억원)를 투입하는 등 적극적인 인센티브 정책을 제시하고 있다.
물은 원재료인 웨이퍼를 자르고 부스러기를 씻어내며 각종 화학물을 제거하는 주요 공정에 활용된다.
반도체 집적도가 높아질수록 방대한 물이 투입된다.
이미 공장이 있는 텍사스 오스틴에 새 공장을 짓을 것인지, 아니면 세금과 기후, 용수와 전력공급 등 안정적 사업운영에 훨씬 좋은 조건을 지닌 아리조나 피닉스 인근에 새 공장을 세울 것인지 삼성전자의 결정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