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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로비에 내려가 보니 장로님이 벌써 현대 측 실무자들을 다 불러내렸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목사님, 갑시다. 차 안에서 자세하게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호텔에서 제공하는 대형 리무진에 모두 올라타자 차는 뱀처럼 매끄럽게 호텔을 빠져나와 왕실을 향해 달렸다.

"목사님, 좀 예기치 못했던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어제 저녁에 프랑스 업체가 카운터 오퍼를 모로코 측에 넣었는데 아마도 파격적인 오퍼를 제시했던 것 같습니다. 비서에게 연락이 왔는 데 현대 측에서 특별히 다른 제안을 하지 않는 한 프랑스 측의 오퍼를 거부하기가 힘든 상황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래서 우리 현대 실무진들과 다시 한 번 협상을 해보자는 겁니다."

"가서 상황을 한번 봅시다."

왕자를 만나려고 했는데 그는 갑자기 바쁜 일이 생겨서 시간을 낼 수 없다며 왕자의 비서가 연석회의 자리에 대신 나왔다. 몹시 좋지 않은 징조였다. 비서는 프랑스 중공업 회사에서 제안한 조건이 우선 현대 측의 제안에 비해 가격 면에서 월등히 좋은 조건이었다고 얘기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현대는 거리가 멀어서 나중에 애프터서비스나 부속을 공급받는 데 차질이 있을 것이라는 계산 때문에 프랑스 회사 측으로 최종 낙찰을 하게 된 것 같다고 구구히 설명을 하는 것이었다. 비서의 설명을 듣다 보니 이미 물 건너간 배였다. 어젯밤에 잠도 제대로 못자면서 공상 망상에 빠져 있었던 내 모습이 마치 코미디를 보는 것처럼 머릿속을 스쳐갔다. 완전한 낭패였다. 그런 상황에서도 현대 본사에서 출장 나온 사람들은 결코 실망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이번 출장을 통해서 아프리카, 중동 지역의 시장에 대해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면 서 감사의 뜻을 전하는 것이었다. 나는 속으로 역시 대기업의 간부들은 뭐가 달라도 다르다고 생각했다. 대동강 물을 팔아보겠다는 봉이 김선달 같은 로비스트 김 목사의 엉뚱한 발상은 그 이후에도 또 한 번 있었다. 이번에도 같은 모로코 왕자를 통해서 생긴 일이었다. 이번 이슈는 월드컵대회 유치를 위한 로비였다. 모로코는 다른 유럽 국가들이 그렇듯 이 월드컵 축구에 대한 열기가 대단한 나라다. 2006년에 또 한 번 독일 월드컵의 열풍이 전 세계를 스치고 지나갔다. 4년마다 한 번씩 열리는 월드컵 대회를 유치하기 위한 대회 유치 싸움도 월드컵 본선 경기만큼이나 치열하다. 지금부터 8년 전이었던 1998년에 2006년도 월드컵 개최 장소를 놓고 대회 개최국이었던 독일과 모로코, 스위스, 남아프리카 공화국 등 4개 나라가 최종적으로 개최국 물망에 올랐다. 모 로코는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월드컵 대회를 자기 나라에서 유치하고 싶었다. 그런 상황에서 모로코 왕자가 다시 한 번 태권도 사범이었던 장로에게 연락을 해왔다. 국제축구연맹 (FIFA)의 부총재가 대한축구협회 회장인데 혹시 주최국을 최 종 결정하는 과정에 도움을 줄 수 없겠느냐는 또 다른 로비 요청이었다. 항만 시설 수주 사건으로 인해 충분히 쓴맛을 경험했던 장로님과 나였지만 그래도 이번만은 혹시 좋은 성과를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를 하며 한 번 토해 놓은 곳에 다시 머리를 들이미는 돼지 같은 어리석음을 범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월드컵 로비는 완전한 실패작이었다. 대한축구협회장은 만나지도 못했다. 그리고 모로코는 개최국 투표에서 꼴찌로 밀렸고  독일이 개최국으로 최종 결정되었다. 말 도 안 되는 로비를 한답시고 한국과 미국, 모로코를 왔다 갔다 하면서 길에서 많은 돈과 시간만 허비했다.

모든 것을 정리하고 '사막의 땅' 애리조나로 향하다

사막은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나는 곳이다. 인간의 눈에 거칠고 사막은 생명이 살 수 없는 황량한 땅이지만 하나님의 눈으로는 기적을 일으키기에 가장 좋은 토양이다. 사막에서 인간은 자신의 한계에 직면하게 된다. 교만한 사람들도 인간의 한계 상황에 부딪히면서 하나님을 찾지 않을 수 없게 된다. 풀 한 포기, 물 한 방울 없는 불모의 땅에서 세상의 지식과 재산, 명예가 아무런 쓸모없는 것이라는 것을 비로소 깨닫게 되는 것이다. 사막에서 가장 절실한 존재는 바로 하나님이다. 생명의 창조자 되시는 하나님만이 유일한 희망이기 때문이다.

"하나님,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무릎 꿇고 통회 자복하는 순간에 하나님의 기적이 시작된다. 인간은 자신의 능력으로 하늘에 다다를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그들은 바벨탑을 쌓았다. 그리고 자신의 능력으로 지상에 파라다이스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었다. 바벨탑은 하나님의 진노로 무너졌고, 인본주의에 바탕을 둔 지상 파라다이스의 꿈은 두 차례 세계 대전으로 산산조각 나버린 것이 오늘날의 현실이다. 하나님은 우리 가족을 사막으로 몰아 가셨다. 아는 사람도 없고 계획도 없는 막막한 상황에서 피닉스로 무작정 이주하게 하셨다. 그리고 그곳에서 나는 오만함과 위선의 탈을 벗어버리고 다시 한 번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다. 사막은 진정 축복과 은혜의 땅이었다. 애리조나로 가족들이 이주하게 된 것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었다. 나는 뉴욕에서 기쁨이 없는 목회, 다른 정치 목사들과의 치열한 신경전 등에 싫증이 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내의 몸이 예전과 같지 않았다. 아내는 몸이 부서질 때까지 일하는 일개미 같은 사람이 었다. 성실하게 손님을 대하는 것이 몸에 배서 손톱 미용가게에는 항상 손님들이 붐볐다. 다른 경쟁업소들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장사가 잘 되는 것은 참으로 감사한 일이었지만 하루 종일 서서 일하고 나면 무릎과 어깨가 부서지는 것처럼 아팠다. 또한 손톱 손질에 필요한 화학 약품을 장기간 동안 계속 만지 면서 몸에 피로가 누적되었다. 그러다 한 번은 가게 문을 닫고 나오다가 쓰러져서 응급실에 실려 가는 일까지 있었고, 혈압도 저혈압으로 진단이 나왔다. 나는 평소에 아내의 건강이나 비즈니스 등에 대해서 거의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러나 과로로 인해 쓰러지는 일이 있고 난 다음에는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몸이 더 많이 망가지기 전에 무슨 수를 써야지, 지금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판단이 섰다. 나는 그날부터 특별기도에 들어갔다. 하나님에게 우리 가족의 발걸음을 인도해 달라고 그 어느 때보다 구체적으로 기도를 시작했다.

아내와 의논한 끝에 뉴욕 맨해튼에 있는 사업체와 부동산 등을 모두 처분하기로 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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