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년 가족들을 한국에 두고 캘리포니아에 있는 신학대학원으로 유학 왔을 때 지금은 고인이 된 김광석 씨의 노래를 자주 틀어놓았던 기억이 납니다.
그의 노래 가운데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은 당시 저의 처지와 묘하게 오버랩 되며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더욱 진하게 하곤 했습니다.
유학 중 그의 죽음에 대한 뉴스를 듣고는 한 동안 가슴 먹먹했던 기억도 떠오르네요.
개인적으로 세계 어느 문학가에 견주어도 전혀 손색이 없는 분으로 『토지』의 박경리 씨를 듭니다.
역사 의식을 바탕으로 인간의 슬픔과 기쁨, 민족에 대한 사랑과 투쟁을 수려한 문장으로 그려내는 그의 작품은 그 어떤 소설에도 뒤지지 않습니다.
내 조국에 그런 문학가가 있다는 사실에 무한한 자부심을 느낍니다.
소설 『토지』의 한 줄기를 형성하는 것이 평범한 농부 이용과 무당의 딸 월선 사이에 벌어지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입니다.
정말 김광석의 노래처럼 "너무 아픈 사랑"입니다.
사랑했지만 무당의 딸이라는 이유로 부모가 반대하는 아픈 사랑을 둘은 끝까지 이어갑니다.
전염병이 돌아 부인을 잃고, 또 다른 여인을 통해 아들을 얻고, 아들 때문에 그 여인과 할 수 없이 살아야만 하는 이용.
그러나 이용의 마음에는 언제나 월선만 있을 뿐입니다.
그러다 월선도 만주에서 암으로 죽게 되는데, 그녀가 죽는 장면은 소설이지만 정말 코끝을 찡하게 하는 슬픈 장면입니다.
이렇습니다.
이불자락을 걷고 여자를 안아 무릎 위에 올린다.
쪽에서 가느다란 은비녀가 방바닥에 떨어진다.
"내 몸이 찹제?"
"아니요."
"우리 많이 살았다."
"야."
내려다보고 올려다본다.
눈만 살아 있다.
월선의 사지는 마치 새털같이 가볍게, 용이의 옷깃조차 잡을 힘이 없다.
"니 여한이 없제?"
"야, 없십니다."
"그라믄 됐다. 나도 여한이 없다."
머리를 쓸어주고 주먹만큼 작아진 얼굴에서 턱을 쓸어주고 그리고 조용히 자리에 눕힌다.
소설 속 이용과 월선의 아픈 사랑을 기억하기에 이 장면을 읽을 때면 언제나 가슴 저미어오고 때론 눈물이 맺힐 때도 있습니다.
매년 연말연초면 사람들이 후회, 반성, 결심 등의 일을 합니다.
교회에서도 그런 일들이 일어나면서 교회를 떠나기로 결심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었는데, 나름 하느라고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지만 떠나는 분은 그렇지 않았음을 토로하며 목사의 가슴에 아픈 상처를 냅니다.
정말 아픈 사랑입니다.
떠나지 않고 부족한 목사에게 남아주는 교우들이 감사하지만, 마음의 상처는 몇 주씩 가곤 합니다.
'주님은 얼마나 아프셨을까?' 생각합니다.
곧 사순절이 시작되는 때이기에 예수님의 고난을 생활 구석구석에 대입해 봅니다.
특히 사람들에게서 버림 받으신 주님, 기적을 보여줄 때는 구름같이 모여들더니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을 하실 때는 모두 떠나버리는 그들.
심지어 제자들조차도 주님이 가장 힘들어하실 때, 십자가 지시는 그 때에, 모두 어디론가 사라져버렸습니다.
수제자 베드로는 예수님이 보시고 계시는 앞에서 버젓이 '모른다'고 배신합니다.
그렇게 사람들에게 철저히 외면당하시고 버림 받으신 주님, 얼마나 아픈 사랑을 하셨을까 생각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아프셨지만 진정한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고 가수 김광석 씨는 노래하지만, 그러나 주님은 아픈 사랑이 참된 사랑임을 보여주셨습니다.
주님의 아픈 사랑에 힘과 위로를 받으며 새 아침을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