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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외에서는 춤이란 것을 구경도 못했던 내가 처음 춤바람이 났던건 대학교 일학년 때 일이다. 체육시간에 춤을 배워줘서 탱고, 지리박, 맘보, 차차차, 왈츠 등등의 춤을 출 수 있었는데 그걸 처음 써 먹은 것은 연극 공연 때문이었다. 연극이 끝나는 마지막 날이면 학림다방인가 낙산다방인가를 빌려서 밤을 새우는 연극부 일원이었으니까... 

몇 달을 애쓰고 준비하던 연극의 마지막 막이 내리면 헛헛한 마음에 젊은 혈기를 어찌할 바 모르던 우리는 밤을 새며 춤들을 추었던 기억이 난다. 미대라서 남학생들이 짝이 맞지는 않았지만 대강 맞추면 춤을 출 정도는 되었던 것이다.

"춤을 잘 추십니다" 귓가에 속삭여주던 제비같던 동급생의 말에 흥분하여 플레어 스커트를 날리며 돌고 돌았던 기억… 

그러던 어느날 이렇게 너무나 재미난 춤을 너무 많이 좋아하면 안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다 춤바람 때문에 신문에 난 어떤 아줌마 신세쯤 될 것 같아서가 아니라 나도 나를 못잡을 것 같아서였다.

그래서 결심하고 춤바람에서 스스로 풀려나오게 되었다. 좋은 것도 지나치면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좋아하던 연극까지 그만 두었으니 지금 생각하면 범생같은 따분함이 느껴지는 행동이 아닌가?

그 후 3-40년 동안 남편이 춤이라면 낫놓고 기역자는 커녕 리듬도 박자도 모르는 어설픈 사람이어서 춤출 수 있는 모든 상황과 장소에서 지레 사양하고 포기하였다. 심지어 춤이 시작되면 빨리 도망을 가야하는 시간이었다.

멋지게 부부가 춤추는 장면들을 약간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면서...

춤은 내 인생에 오래 전에 잃어버린 손님 같았는데 또 다시 춤바람이 분 것은 2년 전 첫째 딸 결혼식 때였다. 500 명의 하객을 초청하였으니 왠만한 장소가지고는 연회를 할 수 없다고 고등학교 체육관을 빌렸다. 그 넓은 장소를 연회장답게 장식하는 것은 얼마나 힘들고 굉장한 일이었는지! 

다행히 조카들이 손솜씨가 좋고 날랜 애들이 여럿이 있어서 그 넓은 벽들을  흰 시트로 덮고 반짝이는 작은 불꽃등으로 장식하고 큰 풍선들을 올리고 공중에 흰 꽃등을 늘여놓아서 얼마나 아름다운 장소를 만들었었는지, 너무나 신선하고 아름다워서 모두가 그 결혼 연회장을 아직도 이야기할 정도다. 

그런데 그 때 춤추는 마루바닥을 하루밤 빌리는데 3000불을 줬단다!

우리 모두는 그 소리를 듣고 입을 다물 수가 없었고  온 식구가 힘을 합쳐 춤을 춤으로서 값어치를 다 뽑아내자고 결심을 했는데…. 

다행히 신랑 식구들과 친구들이 얼마나 열심히 춤을 추었는지 충분히 값어치를 했다고 생각했지만 우리 식구들도 너무 넓어서 분위기가 잘 잡히지 않는 체육관에서 기를 쓰고 돌고 돌았다. 지칠 때가 되면 손가락 셋을 높이 들고 "3000불!"하면서 서로를 격려를 하면서... (물론 남편은 제외한 우리 식구...)

이번에 130명이 모인 두째 딸의 결혼식은 아무 일도 할 필요 없이 옷만 갈아입고 왔다갔다 우아하게 웃고 떠들고 즐기기기만 하면 되는 결혼식이었다. 다운타운 호텔 안의 연회장에는 그때 그만큼의 마루바닥이 깔려 있었는데 한 번 버린 몸, 이제는 음악이 나오기 무섭게 우리 식구 모두 달려나갔다.

 춤을 열심히 추기로 말 안해도 모두 묵계가 이루어 진 셈이다. 아무래도 주인들이 추어야 분위기를 돋굴 것 같아서....라는 변명을 밑에 깔고... 맘껏 기쁜 만큼 신나게 많이 춤을 추었다.

시아버지 되는 분도 열심히 춤을 추셨다. 사람들이 박수를 치고 난리였다. 그래서 어떻게 그렇게 춤을 잘추시냐고 물었더니 "이번에 생전하고도 처음 추어본다"고 출 수 있는 것이 이상하다고 하신다. 아마도 예쁘고 천사같은 며느리를 얻는 기쁨에 저절로 춤이 나오는 모양이었다. 

남편은 아직도 춤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지만 "신부와 아버지의 춤"을 추는 순서를 마다않고 용감히 나갔다. 생전 처음!

그것도 "신랑과 어머니"의 완벽한 춤이 끝난 직후에!

이제 늙어서 뱃장이 좀 늘은데다가, 딸의 격려에 힘입은 남편이 딸의 두손을 잡고 왔다갔다 했다. 그러다가 왠일인지 딸을 돌리는게 아니라 아빠가 돌아가는게 아닌가? 사람들이 얼마나 웃었는지!

그러나 왠지 눈물이 나오는 장면이었다. 폼을 망치는 그런 아빠를 잘 알지만 끼워주는 착한 딸이 얼마나 고마운지!.  

기분이 더욱 좋아져 마음껏 흔드는 나를 보고 사람들이 춤을 잘 춘다고 말해주면 나는 첫째딸 때 이야기를 하면서 "그 때부터 마루바닥만 보면 기를 쓰고 춤을 춘다"고 이야기하여 웃겼다.

남편을 합한 우리 온식구에게 불어온 춤바람은 아들 둘을 마저 장가 보내야 잠 재울 수 있을 것인지...

(20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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