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또는 검찰이 용의자나 피고인을 체포하고 심문하기에 앞서 고지해야 하는 일명 ‘미란다 원칙(Miranda warning)’의 주인공인 전직 경찰관이 별세한 것으로 알려졌다.
2일 언론들은 아리조나주 피닉스의 전직 경찰인 캐롤 쿨리가 지난 5월 29일 만성 폐 질환 때문에 87세로 타계했다고 전했다.
1958년부터 피닉스 경찰서에서 근무를 시작한 쿨리의 이름은 1963년 이른바 ‘미란다 체포 사건’으로 세상에 알려졌다.
그해 피닉스에서는 18세 여성이 괴한에게 납치돼 사막으로 끌려다니며 성폭행 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여성은 범인의 인상착의를 기억하지 못했지만 녹색 차량으로 납치됐으며 차 안에 밧줄로 만든 특이한 손잡이가 있었다고 증언했다.
이어 피해자의 사촌이 용의 차량을 동네에서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고, 당시 22세이던 에르네스토 미란다라는 남성이 체포됐다.
피해자는 미란다를 정확히 용의자로 지목하지 못했지만 여러 정황상 그가 범인인 것이 확실했기에 담당 경찰관이던 쿨리는 강도 높은 심문을 펼쳤다.
그는 미란다로부터 자백을 받아냈고 진술서를 작성하게 했다.
진술서에는 ‘이 진술은 자발적으로 행해졌으며, 나는 내 법적 권리에 대해 완벽하게 숙지했고, 내가 하는 진술이 나에게 불리하게 적용될 수 있음을 이해하고 있다’고 적혔다.
결국 1·2심 법원은 미란다의 혐의를 유죄로 판단해 중형을 선고했다.
그런데 미란다의 변호를 맡은 국선변호사 앨빈 무어가 “미란다는 심문 전에 변호인 선임권 등 기본적인 권리를 고지받지 못했다”며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그런 권리를 모르는 상태에서 이뤄진 미란다의 자백은 처음부터 증거로 채택될 수 없다는 주장이었다.
이후 다른 변호사와 인권단체까지 이 사건에 관여하게 되었고, 미란다 판결은 급기야 연방대법원 상고심까지 올라갔다.
그리고 미국 사법사상 가장 진보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얼 워렌 대법원장이 이끄는 대법관 9명은 1966년 6월 13일 5대 4의 판결로 원심을 깨고 미란다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외부와 단절된 분위기에서 피의자가 자유로운 진술을 하기 위해서는 분명한 절차가 있고, 이를 따르지 않은 채 이뤄진 자백은 유죄의 증거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쿨리를 비롯한 경찰관들은 “이런 식이면 앞으로 수사가 불가능해진다”며 반발했고, 미 전역에서 격렬한 논쟁이 일어났지만 대법원의 판결은 바꿀 수 없었다.
이후 미국 각지의 경찰들은 미란다 원칙을 적은 종이를 들고 다니면서 문구를 외웠고, 체포 시 용의자에게 미란다 원칙을 고지하게 됐다.
미란다는 대법원 판결로 18세 여성 납치·성폭행 혐의에 대해선 무죄 선고됐으나, 별개 혐의가 드러나 석방되지는 않았다.
이후 검찰이 미란다 원칙을 충분히 고려해 다시 기소하면서 징역 10년형이 확정됐다.
이후 가석방으로 풀려난 미란다는 1976년 2월 피닉스 시내의 한 술집에서 다른 손님과 말다툼을 벌이다가 흉기에 찔려 숨졌다.
이후 쿨리는 피닉스 경찰에서 서장까지 역임했고, 경찰 은퇴 후에는 아리조나주의 공공안전 부서에서 근무했다.
미란다 체포 50주년이던 2013년에는 피닉스 경찰박물관에서 자원봉사자로 일하면서 해당 사건에 대한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쿨리의 아내 글리 쿨리는 2일 아리조나의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남편은 대법원 판결에 절대 동의하지 않았지만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고 말했다.
반면 쿨리의 손자 데니스 쿨리는 “할아버지는 미란다 원칙이 만들어진 사건에 대해 손주들에게 종종 이야기했고, 자신의 역사적인 역할에 자부심을 느끼는 것 같았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