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와 접경한 미 남부 지역 국경에 거대한 장벽을 설치하고 미국 내 불법체류자를 추방하겠다던 공화당 대통령 선거 후보 도널드 트럼프의 이민정책이 거센 반대에 직면했다.
트럼프가 멕시코 방문 직후인 지난달 31일, 야심 차게 이민정책 10대 공약을 발표한 상징적인 장소인 아리조나주 유권자들이 반대 여론에 불을 지폈다.
아리조나주 최대일간지인 아리조나 리퍼블릭이 아리조나주립대 모리슨 재단, 아리조나주립대 월터 크롱카이트 저널리즘스쿨과 공동으로 시행해 7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미국이 국경에 장벽을 세우지 않거나, 절대 세우지 말아야 한다고 답한 응답자가 55%에 달했다. 트럼프의 장벽 건립을 지지하는 여론은 33%에 불과했다. 또 응답자의 68%는 불법 이민자를 추방해야 한다는 트럼프의 주장을 지지하느냐는 물음에 동의하지 않거나 강하게 반대한다고 답해 25%에 그친 찬성 의견을 압도했다.
아리조나 리퍼블릭 등 3개 기관은 8월 17일∼31일 유권자 784명을 대상으로 전화 설문조사로 대선을 앞두고 여러 사안에 대한 여론을 살폈다. 표본오차는 ±3∼4%포인트다.
공화당 등록 유권자의 53%가 트럼프의 장벽 설치를 지지한 데 반해 민주당 등록 유권자의 75%와 무당파 유권자 57%가 이를 반대했다. 특히 히스패닉 유권자의 25%만이 장벽 설치에 찬성한 것과 달리 절반을 훌쩍 넘는 67%가 반대했다. 불법 이민자 강제 추방에 대해선 공화당(58%), 민주당(80%), 무당파(68%) 등 정파 지지 성향에 상관없이 응답자 과반이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이 사안을 두고 히스패닉 73%, 학사 학위 소지자 75%, 젊은 유권자 83%가 압도적으로 반대했다.
전임 잰 브루어 주지사가 2010년 주 경찰과 지역 경찰에게 불법 이민자를 단속할 권한을 주는 등 강력한 반이민 법안을 시행한 이래 아리조나주는 불법 이민에 맞서는 최일선이자 불법 이민자에게 가장 적대적인 주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미국과 멕시코 국경의 길이는 3천206㎞다. 아리조나주는 텍사스 주(1천997㎞)에 이어 두 번째로 긴 599㎞를 멕시코 국경과 맞대고 있다.
그러나 불법 이민에 완강하던 당시 분위기는 올해 훨씬 완화했다는 게 전문가의 분석이다.
이민정책을 주로 연구한 아리조나주립대 정치학과의 리사 마가냐 교수는 국경 근처에 사는 아리조나 주민은 이민 문제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면서 "국경 장벽은 잘 작동하지 않을 것이고, 장벽 건립은 시간과 돈을 낭비하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트럼프의 이민정책이 아리조나 유권자 과반의 의사와는 동떨어진 것을 두고 "유권자들이 불법 이민에 대한 기존 태도를 누그러뜨리면서 (2010년 당시와 비교해) 분위기가 달라졌다"고 덧붙였다.
트럼프는 10대 이민 공약에서 외국인 범죄자를 즉각 추방하고 인력을 증원해 모든 불법 이민자를 추방하겠다고 밝혔다. 또 집권하면 최대 1천100만 명에 달하는 불법체류자의 추방을 유예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행정명령도 폐지하고 최첨단 기술로 장벽을 세워 불법 이민자가 미국에 잠입하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