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조나주 피닉스 다운타운에 위치한 주 청사 앞에는 웨슬리 볼린 기념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한국전 참전용사, 순직한 경찰관과 소방관 등 다양한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상징물이 곳곳에 자리한 이 공원 한켠에선 '과달루페 이달고 조약'을 기념하는 조형물도 볼 수 있다.
과달루페 이달고 조약이란 외국 사람들에게는 다소 낯설 수도 있는 단어지만 미국, 특히 아리조나 입장에선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바로 이 과달루페 이달고 조약을 통해 한 때 멕시코 영토였다 이제는 미국 내 하나의 주가 된 아리조나의 땅 대부분이 지정되었기 때문이다.
멕시코와 미국이 1848년 5월 멕시코-미국 전쟁이 끝나면서 체결한 조약이 과달루페 이달고 조약이다.
이 조약으로 멕시코는 1500만 달러에 대한 대가로 미국에 광대한(136만km2) 토지를 양도했다. 동시에 멕시코의 대미 부채 325만 달러를 탕감했다.
1848년 3월 10일 미국 상원은 과달루페 이달고 조약(Treaty of Guadalupe Hidalgo)을 비준했다.
양도된 곳은 현재 아리조나주, 텍사스주, 콜로라도주, 뉴멕시코주, 와이오밍주의 일부, 캘리포니아주, 네바다주, 유타주의 전체 면적이다.
오늘 날 아리조나와 뉴멕시코의 일부분이 되고 있는 나머지 지역은 1853년 개즈던 매입으로 양도되었다. 이 때 텍사스 주와 멕시코의 국경은 리오그란데 강으로 하는 것이 확정했다.
멕시코-미국 전쟁(Mexican-American War)은 1846년과 1848년 사이 멕시코와 미국 사이에 발생한 군사 분쟁이다. 맥락에 따라서 멕시코 전쟁, 그리고 당시 미국 대통령인 제임스 포크에서 따서 포크의 전쟁로 불리기도 한다.
이 전쟁은 1836년 텍사스 혁명으로 텍사스 공화국이 성립되었지만, 멕시코는 이 땅을 자국의 영토로 여겼다. 그러나 1845년 텍사스 합병으로 텍사스가 미국의 주가 되자 전쟁이 일어나게 되었다. 1846년부터 2년간 벌어진 미국과의 전쟁에서 패하게 된 멕시코는 1848년 5월 30일 멕시코 과달루페 이달고라는 곳에서 자기 영토의 절반을 미국에 양도하는 조약을 체결한다. 이미 전쟁 이전에 미국인이 실질적으로 점유하고 있던 텍사스와 뉴멕시코 일대까지 이때 공식적으로 미국 영토가 된다. 1853년 미국이 아리조나 피닉스시 남부 지역을 사들이면서 현재의 국경선이 확정된다.
조약 체결로 광대한 영토를 넘기면서 멕시코는 1500만 달러를 받았다. 한반도의 6배에 이르는 영토를 150억원 정도에 넘긴 것이다. 반면 미국은 캘리포니아에서 금맥이 쏟아져 나오면서 본격적인 서부개척시대를 맞게 된다. 현재 멕시코와 미국의 국경선이 된 리오그란데강. 멕시코 국민은 이 강을 '분단의 상처'라 부른다. 지금도 이 강을 넘어 미국으로 가려는 멕시코 불법이민자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비준된 과달루페 이달고 조약, 두 나라의 영토 경계선과 함께 운명선도 바꿔놓았다.
과달루페 이달고 조약으로 미국은 겨우 1825만 달러를 지급하고 멕시코로부터 아리조나, 뉴멕시코, 캘리포니아, 콜로라도, 와이오밍 주 등을 할양 받아 한반도 넓이의 15배에 달하는 300평방킬로미터의 영토를 넓혔다.
전쟁 직전 일부 미국 여론들은 전쟁을 반대했다. 지식인 헨리 데이비드는 전쟁세를 내는 대신 감옥에 가는 것으로 항의했고 랄프 왈도 에머슨은 미국의 폭력을 부끄러워하며 멕시코가 미국에게 독이 될 것을, 그리고 남북전쟁 전쟁 영웅 율리시스 그랜트 역시 이를 두고두고 한탄했다.
당시 미국 국무성 주재관 트리스트가 대통령 J.K.포크의 명령에 따라 1848년 2월 2일 과달루페 이달고 조약을 협상했다. 트리스트의 행동은 그에 대한 소환명령을 받은 이후의 월권행위였으므로 상원은 조약을 부결하려 하였지만 이후 포크의 노력으로 비준이 교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