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여름은 개인적으로 참 바빴다. 원래는 6월, 7월중에 운동도 열심히 하고, 영어 공부도 해서 몸과 마음이 튼튼해지길 기대했었다.
그런데, 전혀 그렇지 못했다. 왜냐고? 바로 교회에서 3주간 진행한 여름학교 덕분이었다. 거의 7월의 대부분을 "여름학교"에 붙잡혀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름학교"란 여름에 학생들을 모집해서 3주간 아침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영어, 수학, 한국어, 음악, 미술 그리고 성경을 가르쳤던 것을 말한다.
여름학교에는 특수교육이 필요한 학생들도 참여하였다. 당연히 그 학생들은 내가 맡아 가르쳤다.
여름학교 마지막 주에는 교육에 관심있는 사람들에게 놀러 오라고 몇차례 이 지면을 통해 초대하였다. 그 광고를 통해서인지 아니면 궁금해서인지 두 사람이 놀러 왔었다!
약 20명의 학생들이 참여하여 3주간 열심히 이것 저것을 하였다.
대부분 한국인 가정에서 온 아이들이었지만 그 중에는 국제 결혼을 한 가정의 아이들도 있었다.
놀라운 것은 하루 종일 한국어만 가르치는 "한국어 집중반"이 영어, 수학, 음악, 미술, 성경을 가르치는 "일반반"만큼이나 인기가 많았다는 사실이다.
이 "한국어 집중반"에는 한국인의 피가 전혀 흐르지 않는(?) 미국인도 있었다.
얼마나 한국어를 배우고 싶었으면 아시아인들이 득실되는 교실에서 전혀 주눅들지 않고 한국어를 배웠을까 놀라울 따름이다.
낡은 건물과 화려하지 않은 강사진. 여름학교 첫날에는 걱정이 많았다.
다양한 학업 능력과 가정환경에서 온 학생들, 게다가 1학년부터 중학교 3학년까지의 학년차이.
기존의 교육방법으로는 효율적인 학습지도는 어려울 듯 싶었다.
교사 경험이 있는 강사도 있었지만 대학생이 강사로 지도하기도 하여 이 또한 걱정이 되었다. 베테랑 교사가 첨단 장비를 가지고 가르쳐도 될둥 말둥한 학생 구성이 아닌가!
여름 학교 첫날 예배실에 모여 앉은 학생들을 보니, 분위기가 썰렁 그 자체였다. 엉덩이를 반쪽만 의자에 걸친 아이도 있었다. 집에 몹시 가고 싶었던 모양이다.
이 아이들이 자그마치 매일 7시간의 스파르타 여름학교를 견디어 낼 수 있을지 막막했다.
치열하고 힘들었던 3주간의 여름학교가 끝난 지금. 부실한 하드웨어로 시작한 여름학교의 결말은 어떠했을까?
나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단어는 "배움", "회복" 그리고 "공동체"이다.
이번 여름학교를 통해 얻은 깨달음은 아이들은 "생각, 묵상"을 통해 배우며 "관계"를 통해 회복되고 "공동체" 속에서 기쁨을 느낀다는 것이다.
교사가 처음부터 끝까지 학습내용을 설명하고 학생들이 앉아서 배우는 방법이 아닌, 학생이 교재를 보며 스스로 공부하고 문제를 푼 후, 교사에게 자기가 공부한 내용을 설명하고 푼 문제의 답을 확인하는 방법으로 수업이 진행되었다.
수업 중에 화려하고 재밌는 동영상을 보여주거나, 구글을 통한 정보 검색 등도 없었다. 다양한 학년의 학생들이 한 반으로 묶여 있어서 도저히 교사의 일방적 수업으로는 운영을 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이런 원시적인 수업 방식이 오히려 학생들에게 생각을 하게 만들고 학습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 이리 저리 고민을 하게 만드는 효과를 거두는 것을 깨달았다.
신기한 것은 교사가 주도하는 수업은 보통 40분 단위로 진행되고 사이 사이에 쉬는 시간을 주는데, 스스로 공부하게 하는 방식으로는 1시간 30분 동안 쉬지 않고 자기 페이스에 맞추어 진도를 나갈 수 있었다.
학생들은 "가르친다"고 배우는 것이 아니라 "생각해야" 배운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함께 공부하고, 밥을 먹고, 노래 부르고, 그림을 그리며 아이들은 서서히 친해졌다.
여름학교에서는 핸드폰을 전혀 사용할 수 없었다. 핸드폰이 없는 아이들은 고개를 들고 비로서 서로의 얼굴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특히 비슷한 피부색을 가졌고 같은 문화권이라는 사실이 아이들에게 편안함을 주었다.
점심 시간에도 김치 볶음밥을 당당히 꺼내 먹을 수 있고, 부모님이 한국인이지만 한국말이 서툴다는 공통점이 아이들을 서로 묶어주는 것 같았다.
대학생 선생님들은 아이들에게 강력한 롤모델이 되었다. 나이 들고 권위적인 선생님 보다 옆집 오빠와 누나 같은 선생님이 나의 예상을 깨고 아이들에게 큰 영향력을 발휘하였다.
여름학교가 중반을 달리면서 나는 아이들이 서로의 이름을 불러주고, 함께 놀이를 하며 큰 소리로 웃는 광경을 자주 목격하였다.
몹시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후드티로 온 몸을 감싸고 앉아 있던 아이도 여름캠프 말미에는 반팔에 스키니 운동복을 입고 자신감 넘치는 모습으로 무대에 서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나의 사랑스런 학생들, 특수교육이 필요한 두 아이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너무도 자연스럽게 아이들과 어울려 공부하고 공연도 준비하는 모습에서 아이들이 따뜻한 관계 속에서 회복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나의 학생들이 가끔 친구들을 당황스럽게 하는 행동을 해도, 모두들 그려러니 하고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감싸주는 모습에 우리는 짧은 기간이지만 서로의 가족이 되었구나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비록 나의 목적을 이루지 못한 여름이었지만 마음은 풍성하다. 여름학교에서 만났던 아이들이 보고 싶다. 내년에도 또 만나서 "배움", "회복" 그리고 "공동체"를 경험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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