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나 미국이나 '위기의 아이들'이 있다. 무엇이 위기인가?
공부를 너무 못해서, 반대로 너무 잘해서, 집이 너무 가난해서 반대로 너무 부자여서, 성격이 너무 내성적이어서 반대로는 너무 극성이어서 위기라고들 떠든다.
공부를 너무 못하면 상급학교에 진학하지 못하고 거리로 내몰려 범죄에 빠져들기 쉬워지니 위기이고, 공부를 너무 잘하면 학교교육이 그들을 받쳐주지 못하니 위기라고 난리가 나고, 집이 너무 가난하면 환경이 공부에 방해가 된다고들 하고, 너무 돈이 많아도 공부에 방해가 된다고 한다.
성격이 내성적이면 코딱지만한 사건에도 정신적 충격을 받아 공부 하기가 힘들어지고 성격이 극성이면 친구들의 공부를 방해하기 쉬우니 그 또한 위기이다.
너무 비관적인가? 이곳 미국은 어떠한가?
비록 아리조나 피닉스라고 하는 한 곳의 일들만을 가지고 미국 전체의 교육을 말한다는 것은 성급하겠다. 그러나 미국의 공립학교 또는 사회의 한 단면을 조금 맛 보는데는 부족하지 않을 것이다.
이곳에서 본격적으로 학생들을 데리고 수업을 시작한지 이제 막 2주가 되었다. 유치원생부터 5학년 학생들까지 고르게 가르치다 보니, 모든 학년의 교실들을 들락거리게 되고, 다양한 학년의 교육과정을 조금씩 맛보고 있는 중이다.
필자가 한국에서 가르쳤을때와 비교하자면, 교육환경은 그야말로 풍요 그 자체이다. 우선 공간의 넉넉함에서 오는 여유는 한국과 비교할 수 없겠다.
요즘 한국에는 그야말로 운동장이 없다시피하는 학교가 속출하고 있는데, 이곳 아리조나는 땅이 넓어서인지, 놀이터도 저학년, 고학년, 특수학급용, 유치원용 등등 여러개가 있고, 잔디 구장은 기본이며, 실내 체육관도 대부분의 학교가 구비하고 있다. 음악실, 미술실, 도서관이 따로 있고 각 특별실에는 다양한 교육자료들이 구비되어 있다.
각 교실마다 칠판에는 스마트 칠판이 걸려있고 학년에 따라 반별로 학생용 노트북이 5대~ 10대 정도씩 비치되어 있다. 물론 교사들에게는 개인 노트북이 제공된다.
도서관에는 책이 즐비하며 각 교실마다 선생님에 따라 다양한 단계별 독서 책들이 갖추어져 있다. 학생들이 컴퓨터를 이용하여 수학이나 영어를 공부할 수 있도록 교육청에서 개발하거나 구입한 각종 교육 소프트웨어도 많다. 각 교실의 진열장과 책꽂이를 가득 채우고 있는 교육 자료를 볼 때마다 자료가 너무 많아서 눈이 어지러울 지경이다. 한가지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미국은 지역별로 차이가 많아 정도의 차이는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한가지 의문이 생겼다. 이렇게 다양한 방법으로 가르치고, 욱박지르거나 진도에 쫓기지 않게 학교에서 잘 가르치는데 학력이 낮은 학생들이 왜 이렇게 많은 것인가라는 것이다. 이렇게 풍요로운 교육환경에서 왜 이렇게 학습 부진아가 많은가 하는 것이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 한 가지를 고르자면 '전통적인 가정의 붕괴'라고 볼 수 있겠다.
필자가 근무하는 학교는 중상층의 가정환경 학생들과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이 섞여 있는 곳이다.
학생들 중에는 ADHD나 학습장애를 가지고 있어서 특별히 규칙적이고 안정적인 집안 분위기가 필요하지만 부모님의 이혼으로 인해 한 주는 아버지 집에서 그 다음 주는 어머니 집에서 생활하는 학생이 있다. 한 주씩 왔다 갔다 하면서 생활하는 것이 그 학생에게 얼마나 많은 피로감을 줄 지 눈에 훤하다.
그런데 이런 경우가 특별하거나 이상한 경우가 아니다. 흔히 볼 수 있는 경우인 것이다.
또 한 학생은 부모님이 감옥에 있어서 이모와 함께 생활하고 있다. 어떤 학생은 평소에 밤 1시가 넘어서 잠을 자기에 수업시간에 졸음을 참지 못하고 침까지 흘리며 잔다.
10년전만 해도 미국의 가정들은 대부분 자녀들을 저녁 7시나 8시에 침대에 눕게 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그렇지도 않으가 보다.
두 번째 이유는, 이것은 순전히 필자의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말로하는 훈육의 한계라고 생각된다.
미국의 문화 자체가 논리적인 설득을 통해 일을 진행시키는 것이 일반적이다 보니, 한국에서 이루어지는 교육방법과 비교해 볼 때, 선생님이나 학생이나 너무 말을 많이 한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예를 들어 수학 시간에 덧셈, 뺄셈을 배우는데, 한국 같으면 그냥, 문제를 많이 풀면 될 것을 한데 모여 앉아서 수학 시간 내내 두 세 문제에 대해 각자 어떻게 풀었는지 설명하고 설명 듣고 하는 식으로 수업을 진행한다.
물론 이렇게 함으로써 수학적 사고력을 높이고, 수학적 의사소통 능력이 높아진다고 하지만, 산수 단계에서 이렇게 수업하는 것이 비효율적이라는 생각까지 든다. 특히 아이들이 잘못을 저지르거나 장난을 쳤을때, 장황하게 이러쿵 저러쿵 설명하고 설득하는 모습이 답답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어떤 학생들의 경우에는 설득보다는 따끔한 벌이 더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느 나라나 위기의 아이들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위기 속에 있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멋지게 성장하는 아이들도 있을 것이다.
위기의 아이들은 어느 시대에나 있었지만 이들을 어떻게 건져 내느냐는 어른들의 몫이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 엄마와 아빠가 이 문제의 열쇠를 쥐고 있다고 믿는다.
이 글을 쓰면서 필자도 은근히 엄마로서 나 자신을 되돌아보게 된다.
나의 아이들은 지금 위기에 있지는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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