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나는 집에 밤 8시에 도착했다. 출근은 새벽 6시 15분에 했는데 말이다. 더군다나 오늘은 수요일이어서 다른 선생님들은 다른 요일보다 조금 일찍 퇴근을 했을 텐데 말이다.
내가 이렇게 밤 늦게 집에 오게 된 이유는 바로 "교육연수"를 받았기 때문이다. 노동법을 철저히 준수하는 미국의 일터에서 그것도 교양 꽤나 있다고 하는 교사집단에서 교양없이 연수를 오후 4시 30분부터 7시 30분까지 실시한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 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미국 선생님들은 칼퇴근에 결근이 잦다는 그런 헛된 말을 도대체 누가 했단 말인가?
특수교사로 새롭게 태어난 나는 지금 1년차 신입 교사이기에 일이 산더미처럼 많다고 느껴진다. 실제로 많지 않을 수 있지만 심정적으로는 일더미 속에서 헤엄치는 기분이다. 나는 지금 써바이벌 모드로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각종 교사연수에서 만나는 선생님들과 잠깐 이야기를 나눠보면 나만 이런 생각을 하는 것 같지는 않다. 미국에서 몸으로 느끼는 특수교사의 업무는 양도 많지만 부담도 크다고 생각된다.
나는 지금 특수교사 중에 "Resource Teacher" 라고 불리우는 교사로 일하고 있다. 예전 글에서도 밝혔지만 창고에서 일하는 자료실 선생님이 아니라 "지원실 선생님", 즉 일반 반에서 공부하지만 특수교육이 필요한 학생들, 예를 들면 학습장애, ADHD, 고기능 자폐, 언어장애, 뇌전증, 품행장애 등을 가진 학생들을 하루에 30분~60분 정도 따로 불러내어 특수교육을 시키는 선생님인 것이다. 워낙 만나는 학생들이 다양하기에 알고 있어야 할 내용들이 많다. 각종 유전병, 장애의 특성, 교육방법, 주의 사항 등을 꼼꼼하게 알고 있어야 한다.
한국에서 일하고 있는 친구 특수교사들을 보면 학습장애, ADHD, 뇌전증, 품행장애 등은 특수교육을 받지 않는 경우가 많고 그냥 일반 반에서 특별한 교육이나 도움 없이 학교 생활을 하는 경우가 많기에 특수교사의 교육 대상에서 제외되곤 한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주마다 약간씩 차이는 있겠지만 특수교육 대상자의 범위가 넓고 다양하여 한 명의 특수교사가 맡게 되는 학생수가 20명을 훌쩍 넘어 30명에 육박하는 경우까지 있다.
문제는 학기가 지날수록 맡게 되는 학생수가 계속 늘어간다는데 있다. 특수교육이 필요한 학생들이 새로 전학 오기도 하고, 1, 2학년때는 잘 드러나지 않았던 장애가 고학년이 되면서 서서히 드러나 마침내 담임 선생님이나 학부모가 특수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진단 검사를 의뢰하는 경우들이 생기기 때문이다.
학생수가 많아지면 처리해야 할 문서의 양도 엄청나게 많아진다. 특수교육을 받는 학생들은 개인별로 "개별화 학습 계획안"이라는 법적 문서를 만들어야 하는데, 이 문서는 특수 교사 혼자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일반반의 담임교사, 학교 행정가(교장이나 교감 선생님), 상담선생님 등등과 함께 공동작업으로 만들어야 하고, 학부모를 모시고 최종 회의를 해서 계획안을 확정 지어야 하는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특수교사는 동료 선생님들과 행정가들이 공동작업을 할 수 있도록 조율하고 약속을 잡는 코디네이터 역할도 해야 한다.
만약 학생이 20명이라고 하면, 이 과정을 20번 해야 하는 것이다.
이 문서가 꽤나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문서를 작성 할 때는 조목조목 정해진 규칙과 법령을 따라야 하며 이 규칙이나 법령이 종종 바뀌기도 하기 때문에 수시로 "교육연수"를 통해 새로운 개정안을 익혀 두어야 하는 것이다.
학생들을 데리고 수업을 할 때에는 철저하게 기록을 남기고 데이터 수집을 해야 한다. 왜냐하면 앞에서 설명한 "개별화 교육 계획안" 안에 있는 세부 학습 목표를 어떤 방법으로 어떻게 가르치고 목표를 달성했는지를 문서로 남겨 두어야 나중에 혹시라도 학부모와 분쟁이 생겼을 때 증거 자료롤 제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수교사들은 심지어 학생들이 화장실 가는 횟수, 기저귀가는 횟수까지 다 기록으로 남긴다. 특수교육의 역사가 소송과 법정 싸움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특수 교사는 항상 법적인 분쟁에 휘말릴 각오와 대처를 하면서 교육에 임해야 한다.
특수교사는 일반 학생들이 배우는 교육 내용도 잘 알고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지금 가르치고 있는 학생들이 궁극적으로는 일반 교육과정에 잘 적응하고 그 수준에 맞춰 갈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일반 교육과정에 새로운 내용이 도입되면 거기에 해당하는 교육연수도 받아야 한다. 그러니까 각종 특수교육에 관련된 교육연수도 받아야 하고, 일반 교사들이 받는 교육연수도 받아야 하는 곱빼기 배움의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사람들을 관리하는 몫도 특수교사의 것이다. 미국에서는 학생들의 장애의 정도에 따라 보조 교사를 채용해서 함께 가르친다. 그래서 함께 일해야 하는 보조교사가 보통 2명에서 5명까지 된다.
이들이 맡은 일을 잘 하도록 교육하고 꾀를 부리거나 게으름을 피지 않게끔 눈을 크게 뜨고 살펴보는 일 또한 특수교사의 업무 중 하나이다. 보조교사가 일을 잘 해야 학생들이 제대로 학교생활을 할 수 있게 때문이다.
그런데 이 일이 만만치 않다. 대부분의 보조 교사들은 상냥하고 헌신적으로 일하지만 가끔 하고 싶은 일만 골라 하거나 선생님보다 더 선생님처럼 휘젓고 다니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혹시 자녀를 데리러 학교에 갔다가 우거지상을 하고 있는 특수교사들을 마주친 적이 있는가? 아니면 만성피로 가득한 얼굴로 하교지도를 하는 특수교사를 보았는가?
그렇다면 따뜻한 위로나 격려의 말 한마디가 그들의 어깨를 조금이나마 가볍게 할 수 있을 것이다.
혹시 주변에 특수교육과 관련된 일을 하는 친구가 있다면 넓은 이해와 사랑으로 품어 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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