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의 일이다.
대학원 공부 막바지에, 나를 한참이나 애먹이던 영어 단어가 있었다.
특수교육과 영어교육 관련 논문을 읽다 보면 많이 나오는 단어인데 한국말로 그 뜻을 찾아보니 도무지 앞뒤가 맞지 않고 생뚱 맞아 무슨 말인가 하고 나를 헤매게 만들었던 단어이다.
바로 "Scaffold" 란 말이다.
사전을 찾아보니 "비계(飛階)"라고 뜻풀이가 되어 있다.
고기에 붙어있는 기름덩이란 말인가?
아니, 교육관련 논문에 왠 비계? 하고 고개를 갸우뚱 했다.
자세히 읽어보니 건물을 지을 때 건물 둘레에 얼기 설기 엮어 놓아 일하는 사람들이 이동통로로 사용하게 하는 임시 설치물을 일컫는 말이었다.
그런데 왜 건축학 용어가 특수교육 논문에 나온다는 말인가?
교육 현장에서 일하는 지금에서야 "Scaffold"의 참 의미를 이해하게 되었다.
이 단어를 영어로도 우리말 해석으로도 이해하지 못했던 것은 한국의 교육현장에는 이 개념이 잘 없기 때문이다.
공사 현장을 가 보면 인부들이 "비계"를 통해 건축 자재를 실어 나르기도 하고 또 비계 덕분에 높은 곳에서 일하는 인부들이 안전하고 편리하게 일다.
중요한 점은 비계는 건물이 완성된 다음에는 철거된다는 점이다.
즉 비계는 어디까지나 임시적으로 건물을 완성하는데 도움을 주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교육 현장에서 이 개념은 선생님이나 부모가 학생이 어떤 과제를 잘 할 수 있도록 처음에는 여러 모로 도움을 주고 가르침을 주지만 점차적으로 학생이 혼자서 스스로 과제를 해 나가도록 점점 도움을 줄여 나가서 마침내는 학생이 독립적으로 설 수 있게 한다는 뜻으로 사용하고 있다.
즉 도움을 일시적으로 주고 시간이 지날수록 학생 스스로 할 수 있게 유도하는데 이 단어의 핵심이 있다고 하겠다.
'Scaffold'는 미국 교실 여기 저기서 이루어지고 있다.
유치원 교실에서는 한국인의 눈으로 보기에는 선생님이 지나칠 정도로 엄격하게 규칙을 지키는 것, 조용히 하는 것, 선생님 말씀을 듣는 것을 강조하고 습관에 베이도록 지도하지만 고등학교에서는 자기관리나 학생지도를 거의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미국의 고등학생들이 작은 어른같이 느껴지는 것도 이 때문인 것 같다.
공부도 마찬가지이다.
초등학교때에는 공부가 뒤쳐지는 학생들을 찾아내어 학교에서 이 방법, 저 방법으로 여러 선생님들이 달라붙어 공부를 도와주고 애를 쓰지만 고등학생 정도가 되면 스스로 도움을 구하지 않는 한, 이러쿵 저러쿵 도움을 주거나 조언을 하지는 않는 것 같다.
미국의 특수교육에는 이 개념이 아주 강하게 적용되고 있다.
아무리 장애 아동이라도 스스로 과제를 하도록, 비록 그 수준이 어설프더라도 이끌고 유도한다.
학생에게 어떤 도움을 줄 때, 궁극적으로는 교사의 도움이나 지도 없이도 장애 학생들이 스스로 독립적으로 할 수 있는 결과를 염두에 두고 수업을 지도한다.
그래서인지 성년이 된 장애인들이 독립적으로 생활하거나 결혼을 해서 가정을 이루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본다.
지난 주에는 함께 일하는 선생님으로부터 부모님 두 분 다 자폐증을 지닌 학생이 작년에 이 학교를 졸업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교육의 궁극적인 목적은 학생들이 '건강한 홀로서기'를 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scaffold'라는 단어는 참으로 적절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미국에서는 과외도 한국처럼 끝도 한도 없이 몇 년씩 계속 하는 것이 아니라 한 번 시작해서 8회 정도 하고, 더 필요하면 연장해서 하는 식으로 계약을 하는 것을 보았다.
처음에는 "애게, 8번 과외 수업을 받아서 얼만큼 달라지겠어?" 라고 생각했는데, 곰곰히 생각 해 보니, 과외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홀로 공부를 잘 할 수 있게끔 도와주는 것이 목표여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국에 있을 때의 일이다. 초등학교 2학년 교실에서 였다.
국어 수업 중에 "만약에~" 라는 질문을 던져 학생들의 답을 듣는 시간이 있었다. 방과 후에 이 학원에서 저 학원으로 순례의 길을 걷는 꼬마들의 스트레스도 해소시킬 겸 해서 "만약에 이 세상에서 학원이 없어지면 어떻게 될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놀랍게도 대다수의 답은 "아무것도 배울 수 없을 거예요." 였다.
그래서인지 대학을 졸업해도 공무원 시험 준비학원, 영어 학원, 자격증 준비 학원 등등 한국에서는 어른들도 학원을 많이 다닌다.
몇 년 전에는 길을 걷다가 "왕따 탈출, 태권도. 특공무술 학원"이라는 간판을 보기도 했다.
그 때 들었던 생각은 "아, 왕따를 탈출하려면 학원을 다녀야 하는구나!"였다.
공부의 홀로서기가 잘 안 되는 것인가?
"Scaffold" 를 한국에 데려가고 싶다.
선생님들이 무엇인가를 자꾸 더 많이 가르치려고 하고, 집중적으로 교육하는 학교를 자꾸 더 많이 세우려고 하기 보다는 학생들이 어설프더라도 "스스로 설 수 있도록", "스스로 배울 수 있도록" 고민해 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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