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이 끝나간다. 독자들이 이 글을 읽을 때에는 벌써 2020년일 것이다. 2020년은 경자년(庚子年) 쥐띠해라고 한다. 2019년은 돼지띠였다고 한다.
미국에 와서 5번째 성탄과 새 해를 맞이하지만 올 해의 성탄과 새해는 개인적으로 유난히 바쁘고 여유가 없었다. 이유인즉 아직도 써바이벌 모드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리라. 2019년에 새롭게 직장 생활을 시작했고 아직 새로운 직장에 적응 중이라는 말이다.
2019년 1월에는 처음으로 미국 공립 학교에서 일하게 되어 그 기쁨이 말로 형용할 수 없었다.
2018년 3개월간 교생 실습을 했던 교육청의 담당자와 인터뷰를 하고 나서 교사 자리를 제안 받았을 때는 온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신났던 기억이 난다.
출근을 하기 전에 '특수교사자격증'을 먼저 발급 받아야 된다는 말에 허겁지겁 피닉스 시내에 있는 '교육부' 빌딩에 달려가 각종 서류를 제출하고 딸랑 종이 한장으로 된 '특수교사 자격증' 을 발급받기도 하였다.
처음 일을 시작한 곳은 '발달지체'로 진단받은 3세에서 5세 사이의 학생들을 교육하는 공립초등학교 안에 있는 프리스쿨에서였다.
그동안 초등학생만을 가르쳐 온 나에게는 이렇게 어린 아이들의 세계는 그야말로 별천지였다.
왜 내가 프리 스쿨로 배치를 받았을까 의구심이 들기도 했지만 특수교육의 처음 시작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시간이었다.
아이들이 생애 처음으로 경험하는 특수 교육은 어떤 식으로 진행되며, 어떤 절차를 거쳐서 프리스쿨로 입학하게 되는지를 알 수 있었다.
가을이 되니, 이번에는 Resource Teacher, 즉 일반 학급에서 생활하지만 특수교육의 도움이 필요한 학생들, 예를 들면 ADHD, 학습장애, 품행장애, 고기능 자폐증을 지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로 발령을 받게 되었다.
이 일은 여름방학 전에 프리스쿨에서 경험했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것이었다.
학생들이 어느정도 일반 교육과정을 소화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지도해 주어야 하는 일이었다. 각종 문서 작업도 많았고, 회의도 많았다.
프리스쿨에서 일할 때에는 함께 놀아주기, 기저귀 갈아주기, 안전하게 보호하기, 망보기 등등 몸으로 하는 일이 많았는데, Resource Teacher가 되어서는 말과 글로 해야 하는 일이 대부분이어서 영어에 대한 압박이 대단히 컸다.
새로운 학교 문화에 대한 적응도 쉽지 않았다.
한국과는 달리, 학생들은 특히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은 "선생님" 이라는 타이틀에 무조건 순종하거나 고분고분 예의를 차리지는 않았다.
이 아이들을 어떤 식으로 훈육해야 하는지 파악하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한국처럼 큰소리로 꾸짖거나 야단을 쳐서는 안되고 학생과 교사 간에 서로 규칙을 정해 잘 지키면 상을 주고 어기면 벌칙을 주는 식으로 "계획과 계약"을 통해 학생들의 군기를 잡아가야 한다는 것을 아이들을 가르친지 한달이 지나서야 깨닫게 되었다.
또한 한국의 문화와 미국의 문화가 사뭇 달라, 한국의 학교에서는 애교로 넘어갈 수 있는 행동들이 미국에서는 절대 해서는 안되는 행동이고, 한국에서는 엄하게 훈육하는 항목들이 미국에서는 개인이 알아서 하는 범주인 것들을 파악하는 데에도 시간이 걸렸다.
예를 들면, 유치원 교실에서 학생들이 선생님 말씀하시는데 좀 돌아다니거나 피곤하다고 뒤로 눕는 등의 행동은 한국 유치원 교실에서는 애교로 봐 주기도 하고 부드럽게 타이르기도 하는데, 미국에서는 엄하게 경고를 주거나 타임 아웃을 받을 행동이라는 것을 알고 놀랐다.
한편 미국에서는 급식시간에 음식을 반 이상 남겨도 아무 제재가 없는 것이 이상하게 여기지기도 했다.
연말이 되니 학교 전체가 겨울방학에 대한 기대감으로 들썩였다.
학생들은 추수감사절 휴일이 지나자마자 겨울방학을 손꼽아 기다리며 들떠 있었고, 선생님들도 한 해가 가기전에 마무리 해야 할 서류 작업과 아이들의 성적처리 등으로 분주하였다.
비록 눈이 오지 않는 아리조나 이지만 각 교실마다 '눈사람'을 주제로 글쓰기, 셈하기, 놀이하기 등의 활동을 하는 것들이 보였다.
왜 크리스마스 트리나 산타, 아기 예수님의 그림이나 장식 등은 보이지 않는 것일까 궁금해 했더니만 동료 선생님이 알려주셨다.
크리스마스 트리, 아기 예수님, 산타 그리고 '메리 크리스마스' 등의 단어나 그림은 종교색을 띠기에 학교에서 언급될 수 없다고 하셨다.
심지어 '폴라 엑스프레스(The Polar Express)' 영화도 교실에서 볼 수 없다고 하셨다.
한국과는 달리 아름답고 풍성한 성탄 이야기, 성탄 장식 그리고 캐롤 등을 자유롭게 보고 들을 수 없다는 미국 공립 학교의 현실이 안타깝게 여겨졌다.
2020년에는 기대가 크다.
과연 내가 미국 공립학교에서 억쎈 아이들 틈에서 써바이벌 하여 완주 할 수 있을 것인가 궁금하다.
지난 일년간 새롭게 배운 것이 너무나 많아 계속 배움의 기회가 주어졌으면 하는 바램이다. 독자들의 응원과 격려가 필요하다.
그리고 미국 공립학교에도 유색인종의 교사가 많아졌으면 하는 소원이 생겼다.
아직도 미국인들은 한국과 한국학생들에 대해 잘 모른다.
한국인들이 학교로 더 적극적으로 들어왔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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