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행금지. 이것이 왠말인가? 미국에서 처음 당해보는 일이다. 무섭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다. 무서운 것은 한 인간이 다른 인간에 의해 대낮에 거리에서 무참히 목숨을 잃었다는 것, 그리고 그 일을 통해 그나마 가느다랗게 연결되고 있었던 피부색이 다른 사람들 간의 이해나 신뢰가 무참히 끊어졌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살기 전까지는 인종차별이나 불평등의 문제에 그다지 큰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특수 교육을 공부하면서 특수교육의 태동이 1960년에 일어난 미국의 시민운동, 차별철폐운동과 깊이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러면서 점점 관심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미국의 역사, 사회, 문화를 알면 알수록 흑백 갈등, 더 나아가서는 백인 우월주의 사상이 정말 깊고도 아픈 그리고 중요한 사회 문제임을 깨달아 가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인지 교사교육에서 "공정성(equity)" 교육과 다문화 교육은 항상 우선순위로 다루어진다. 그렇지만 정작 교직원 회의 때 주변을 둘러보면 아시아인은 나 혼자이며 아프리칸 아메리칸 교사도 1명 뿐이다. 나머지는 전부다 백인이다. 물론 그 중에 라틴계도 있겠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다 백인처럼 보인다. 그래서 백인들끼리 앉아서 인종차별 문제나 공정성 문제를 이야기하는 것이 좀 우습기도 하다. 그래도 안 하는 것 보다는 낫겠지 하는 마음으로 다문화 교육에 참여하곤 하였다.
지금 아프리칸 아메리칸들이 왜 이렇게 분노하고 있는지를 이해하려면 미국에서 일어난 몇몇 역사적 사건들을 아는 것이 도움이 된다.
몇 년전 타임지 신문에 실린 기사를 보고 큰 충격을 받은 적이 있었다. 처음 그 사건에 대해 읽었을 때에는 거짓말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것은 일명 "터스키키 매독 생체실험(Tuskegee syphilis experiment , -梅毒生體實驗)"이라고 일컬어 지는 사건이다.
미국 공중 보건국에서는 2차 세계대전 이전인 1930년부터 매독이 인간의 몸에서 어떤 상태로 진행되는지 알아보는 실험을 실시하고 있었다. 그런데 2차 세계대전 무렵에 페니실린으로 매독이 치료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알라바마 터스키키에서 진행되고 있는 매독 생체 실험 참여자들에게 이것을 알려주지 않고 1972년까지 계속 아스피린이나 비타민제만을 처방하면서 실험을 진행했던 사건이다. 한마디로 매독을 치료해 주지 않고 사람의 몸에서 매독이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관찰하였던 아주 비윤리적이고 악질적인 사건이다. 600명의 흑인들이 이 실험에 참가하였는데, 이 순진한 사람들에게 "나쁜피(bad blood)"를 고쳐준다고 꾀어서 실험 동의서에 사인을 하게 하고는 수십년 동안 치료해 주지 않았던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28명이 매독으로 사망하였고 100명이 관련 합병증-실명, 정신이상, 각종 합병증-으로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고, 40명의 배우자들이 감염되었고, 19명의 아기들이 매독에 감염된 채 태어났다.
이 일은 1972년 한 기자에 의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고 1973년에 가서야 이 실험으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은 보상을 받을 수 있었다. 클린턴 대통령 때에 가서야 실험에 참여했던 피해자를 백악관에 불러서 대통령이 사과를 하였다. 이 사건을 계기로 아프리칸 아메리칸들은 미국 공중 보건 시스템에 깊은 불신감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자료출처 : https://www.history.com/news/the-infamous-40-year-tuskegee-study)
또 한가지 미국에서 인종불평등 문제를 거론할 때 자주 등장하는 주제가 바로 '사법의 정의'이다.
미국은 의외로 형법제도가 강력한 나라이다. 미국의 인구는 세계 인구의 5%인데, 수감자의 비율은 전 세계 수감자의 25%라고 한다.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10년전만해도 미성년자에게도 사형선고를 내리곤 했었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놀라운 것은 미국의 수감자들 중에 아프리칸 아메리칸의 비율은 백인보다 5.1배가 많으며, 아이오아, 미네소타, 뉴저지, 버몬트 그리고 위스콘신주의 경우는 10배가 많다는 것이다. 알라바마, 델라웨어, 조지아, 일리노이, 루이지에나, 메릴랜드, 미시건, 미시시피, 뉴저지, 노스캐롤라이나, 사우스 캘롤라이나, 버지니아는 수감자의 50%가 아프리칸 아메리칸이며, 메릴랜드의 경우는 수감자의 72%가 아프리칸 아메리칸이라고 한다. 오클라호마의 경우 18세 이상의 아프리칸 아메리칸 남성 15명당 1명이 수감중이라고 한다.
(출처: United States Department of Justice. Office of Justice Programs. Bureau of Justice Statistics. National Prisoner Statistics, 1978-2014.)
경제적 불평등 역시 인종차별을 논할 때의 단골 메뉴이다.
2019년 8월호 뉴욕타임지에서 특별 주제로 다룬 1619 프로젝트 기사들에 따르면 노예해방 이후에 미국에서는 흑백 분리 정책을 실시했는데, 이 정책이 폐지된 이후에도 각종 주택 정책이나 금융대출 등에서 아프리칸 아메리칸들은 불리한 입장에 놓여 졌고, 경제적으로 중산층으로 노약하기 매우 어려운 조건에 처해졌다는 것이다. 뉴욕 타임지에서 다룬 내용 중 흥미로왔던 것은 교통체증으로 악명높은 아틀랜타의 경우, 도시가 도로를 정비하고 넓히며 대중교통을 활성화하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아틀랜타의 오랜 인종분리 정책 때문이라는 것이다. 노예제도가 폐지된 후에는 아틀랜타의 대농장주들은 자신이 부리던 노예들이 농장과 먼 곳에서 거주하기를 원하면서 도시간의 왕래가 불편해지는 시스템이 구축되었다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대공황 당시, 뉴딜 정책을 실시하면서 아프리칸 아메리칸들이 거주하는 지역을 레드라인 지정하여 투자 불안지역으로 선정하면서 아프리칸 아메리칸들이 사는 동네는 투자가치가 없고, 융자를 받기 어려운 재산가치가 낮은 지역이 되어 버렸다는 내용이었다. 1619년은 미국 브리티시 콜럼비아 버지니아 해안에 노예선이 도착한 해이다. 이때 앙골라로 추정되는 곳에서 20-30명의 아프리카 사람들이 미국땅을 밟았다고 한다. 그러므로 지금까지 슬픈 역사는 계속 진행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