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방학이다! 계속 집에 있어서 방학이 실감나지 않지만 이번 주를 마지막으로 아리조나에 있는 초등학교들은 대부분 여름방학을 맞이하였다.
작년 이맘때, 여름방학이 다가오는데도 재계약 통지를 받지 못해 가슴 졸이던 일들이 주마등 처럼 스쳐 지나간다. 결국은 방학을 2주 정도 남겨 두고 통지를 받게 되었지만, 그때에 비한다면 일찌감치 다음 학기 재계약 통지를 받은 지금은 감사한 마음 뿐이다.
특수교사로 일한 지난 일년의 시간들을 돌아보니 '살아남기' 즉 써바이벌 그 자체였다.
제일 큰 어려움은 영어였다. 내가 맡은 과목은 수학과 영어 글쓰기. 수학은 예전 초등교사 경험을 살려 가르쳐 보겠지만, 영어 글쓰기는 정말 도전 그 자체였다. 한국말로 글쓰기를 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거늘, 영어로 글쓰는 것을 가르친다는 것은 나에게 있어서는 맨땅에 헤딩하기가 아닌가!
일년이 지난 지금, 썩 잘 가르친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이제는 대충 어느 정도 수준으로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지는 파악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렇지만 동료들과의 잡담 나누기는 아직도 초보자 수준이다. 나의 동료들은 나를 말이 없는 조용한 여자라고 생각 할 것이다. 예전, 한국에서의 나의 별명은 "언어의 마술사"였다. 이제 나의 별명은 "조용한 여자"가 될지도 모른다.
두번째로 어려운 것은 미국의 학교 문화를 이해하는 것이었다.
한국에서 나는 엄격하고 까다로운 선생님이었다. 장난꾸러기 남학생들도 우리 반이 되면 꼼짝 없이 매일 일기를 써야 했고, 글씨를 또박또박 써야만 했다. 안 그러면 쉬는 시간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 학교에서는 도무지 어느 정도 선에서 야단을 치고, 훈육을 해야 하는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일년 간의 관찰 끝에 얻은 결론은 미국 사람들과 한국 사람들 간의 분노 게이지가 다르다는 것이다.
"Yell"은 영어로 "소리지르다, 고함치다"의 뜻이다. 한국의 학교에서 "철수가 소리 질렀다."라고 하려면 철수가 적어도 얼굴이 빨개질 정도로 큰 소리로 외치거나 분노에 차서 소리를 지르는 광경을 떠올리게 된다. 그런데 이 동네에서는 평소보다 조금만 목소리를 높여도 "Why are you yelling?"이라고 묻는 것이었다.
예를 들면 유치원 교실에서 선생님이 "1 더하기 1은 무엇인가요?"라고 질문했을 때 학생들이 다같이 "2 예요"라고 확신에 차서 답을 하자, 선생님이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왜 소리를 지릅니까? 조용히 손가락으로 답을 표시해 보세요."라고 나무랬다.
한번은 학생들이 하도 말을 안 들어서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커지면서 이래라 저래라 야단을 치고 있었는데 옆반 선생님이 뛰어 들어 왔다. 참고로 옆반과 우리반 사이에는 문이 없이 통로로 연결되어 있다. 야단을 맞은 학생도 나에게 "미세스 신, 왜 소리를 지르시나요? (Mrs. Shin, why are you yelling?)"라고 묻는 것이 아닌가. 자기가 한 짓은 생각도 안하고 오히려 나에게 반문하는 그 학생이 무척 얄미웠다. 어의가 없었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한국에서 지르던 목소리의 십분의 일도 크게 안 했는데도 이러한 반응이 나오니 무척 당황스러웠다. 이 일을 계기로 옆반 선생님은 나를 "조용하지만 가끔 소리를 지르는 여자"로 기억 할지도 모르겠다.
"폭력적이다" 즉 violent 또는 행동에 문제가 있다라고 판단하는 기준도 한국과 많은 차이가 있었다.
한 유치원 학생이 줄을 설 때 친구들의 발을 걸어 넘어뜨리고, 짝꿍의 볼을 손가락으로 꾹 찌르는 장난을 친 일이 있었다. 한국에서라면 유치원 나이의 흔한 장난이다 라고 넘어가거나 이 학생은 좀 장난꾸러기이구나 라고 지나칠 일이다.
그러나 이 동네에서는 그러한 장난을 '타인의 안전을 위협하는 폭력적인' 행동으로 취급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물론 그 학생이 이 외에도 고집을 부리거나 큰 소리로 울거나 하는 행동들도 보였지만 "폭력"에 대한 기준과 잣대가 매우 엄격한 것에 놀랐다.
한국에서 흔히 하는 장난들, 예를 들면 낙서하기, 밀기, 큰 소리로 놀라게 하기, 꿀밤 때리기, 발 걸어 넘어뜨리기 등은 이 동네에서는 받아들여지지 않는 행동임을 알게 되었다. '공공칠 빵' 이나 '인디언 밥'등의 놀이는 미국에서는 절대 할 수 없는 게임이다.
반면에 공부에 있어서는 한국보다 훨씬 여유롭고 관대한 분위기를 볼 수 있었다. 경쟁 보다는 실제적인 배움에 더 초점을 맞추는 학교 분위기가 느껴졌다.
예를 들면, 학습장애 등으로 특수교육을 받거나 아니면 ADHD 진단을 받은 경우의 학생들에게는 시험 문제를 줄여 주거나 시험 시간을 더 주거나 하는 등의 배려를 하고, 이에 대해 아무도 불공평하다고 항의하지 않는 것이다.
선생님들도 학생들에게 숙제를 조금만 내 주려고 하는 분위기이고 단원 평가나 학기말 시험 등도 학생들의 순위나 등수를 알려는 시험문제가 아니라 가르친 내용을 잘 이해하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정도의 문제 수준이다.
한국에서 기말고사 수학 시간에 시간내에 문제를 다 풀지 못하면 가차없이 시험지를 걷어 가던 그런 일은 이 동네에서는 이해 못할 처사인 것이다. 학생들이 배운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확인하는 것이 시험인데, 충분한 시간을 주고 실력을 발휘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이 동네 분위기이다.
아무튼 여러가지 어려움이 있었지만 따뜻한 동료 선생님들의 배려와 가족들의 응원, 그리고 교회 식구들의 기도를 힘입어 한 학년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이제 다음 단계는 써바이벌이 아니라 "적응" 일 것이다.
COVID-19로 학교의 풍경이 어떻게 바뀔지 알 수 없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이 글을 읽는 독자들도 응원해 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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