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학년짜리가 아직 구구단을 다 못 외우고 있네!"
"아니, 수학 수업시간에 전자 계산기를 사용하고 앉아 있네! 저러다 바보 되는 거 아냐?"
"뭔 동전에 관련된 수학 문제가 이렇게 많냐?"
"나눗셈을 푸는데 그림을 그려서 풀고 앉아있네. 한심하게……"
미국의 수학 교실에서 보았던 이런 광경들에 대해 비웃음 섞인 이야기들을 주고 받은 적이 있는가? 한국에서 미국으로 갓 전학 온 학생이 수학을 휩쓸고 있다는 소리를 들어 본 적이 있는가?
많은 학부모들이 미국에서 가르치고 배우는 수학은 진도도 한국보다 늦고 수학 문제들도 단순하고 쉽다고 생각한다. 미국 학교에서의 수학이야 말로 누워서 떡 먹기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미국 학교의 수학 교실에서 수학을 어떻게 가르치는지를 직접 목격하기 전까지는 나도 이러한 생각에 빠져서 미국에서의 수학을 아주 우습게 여겼었다. 은근 수학은 역시 한국이지 하는 자만심에 빠져서 수학만큼은 잘 가르칠 수 있겠다 라는 기대까지 하고 있었다.
그런데 막상 미국 수학 교과서와 가르치는 접근 방법을 두 눈으로 보고 나니, 이러한 생각이 한참이나 잘못된 것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심지어 미국사람들이 '인공지능' 시대에 맞추어 새로운 시대를 대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무서움이 느껴졌다.
한국의 초등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쳤을 때는 문제 풀이의 속도의 정확성을 매우 강조했던 기억이 난다. 이를 위해 구구단을 외우는 것은 물론이요 경우에 따라서는 동일한 패턴의 문제를 엄청나게 많이 풀어서 문제 유형들을 거의 외우다시피 하는 훈련을 학생들에게 시켰다.
대표적인 것이 '기적의 00법', '구0 수학' 등등의 문제집이다. 한국의 서점에서 파는 거의 모든 수학 문제집들이 속도와 정확성을 훈련시키는 도구이다. 양념식으로 몇 문제 씩 사고력을 높인다는 명목 하에 좀 색다른 문제들이 첨가되기도 하지만 대부분 일정한 패턴에 맞추어 같은 유형의 문제를 반복적으로 풀게 하는 구성이다.
그런데 미국 교실에서 수학을 가르치는 방식을 보니 '속도'와 '정확성'은 뒷전이요 '개념이해'와 '문제해결'에 대부분의 시간이 할애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예를 들면 45 + 59라는 쉬운 문제를 가르치는 데에도 이 문제를 푸는 여러가지 방법에 대해 함께 토론하고 서로 각자의 방식의 장단점에 대해 아이들끼리 비교하게 하는 것으로 30분의 시간을 보낸다. 처음에는 "아니 이렇게 쉬운 문제를 한국처럼 쉽고 간단하게 가르치지 않고 아이들끼리 쓸데없이 수다를 떨게 하지?"하고 한심한 눈으로 보았는데, 나중에야 학생들에게 수학을 통해 철학을 하는 방법을 가르치고 있다는 알게 되었다.
한 학생이 교실 앞으로 나와 자기의 문제풀이 방식을 설명하면 교사는 "모두 동의합니까?"라고 묻고 학생들은 "네" 또는 "아니요, 이러 저러해서 이 방법은 아닌 것 같아요."라고 답을 한다. (참고로 45 + 59를 푸는 방식은 3가지 이상이다. 알고리즘을 이용하는 방법, 수직선을 이용하는 방법, 44 + 60으로 바꿔서 푸는 방법, 45부터 세어 나가며 푸는 방법…등등)
또 한가지 놀란 점은 통계와 그래프를 매우 강조해서 가르치고 있다는 것이었다. 한국에서는 으레 '통계와 그래프'는 학기말이나 학년말, 수학책 맨 뒷 단원으로 편성되어 있어서 거의 날림으로 가르치거나 심지어 문제풀이만 했던 기억이 난다. 더욱이 통계와 그래프는 단순한 규칙만 터득하게 되면 어려운 숫자 계산이나 공식 암기 등이 필요가 없어서 거의 누워서 떡먹기 정도의 쉽고도 하찮은 단원으로만 다루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저학년 때부터 그래프 읽기, 통계 자료 만들기 등을 소개하고 아주 중요하게 다루고 있음을 목격하였다.
이렇게 토론과 문제해결 위주로 수학을 가르치다 보니 반복이나 단순 연습량은 한국 학생들에 비해 상당히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더욱이 수학 단원 평가도 문제수가 5-10개 정도이고 대부분 주관식에 문제를 꼬거나 함정을 넣거나 하는 것이 없는 아주 정직하고 순수한 문제들로 구성되어 있다.
대신 문제마다 그 문제를 어떤 방식으로 풀었는지 그림이나 공식 또는 그래프 등등으로 문제 풀이 과정을 보여 주어야 하고 정답을 기록할 때 단순히 숫자만 적는 것이 아니라 숫자를 자료화 해서 쓰게 하거나 문장으로 쓰게 하거나 다양한 방식으로 전환해서 쓰게 한다.
일반 교실에서 수학을 이렇게 가르치니 내가 맡은 학생들 즉 학습장애, ADHD, 자폐증 등을 가진 학생들은 도저히 일반 수업 시간에 진도를 따라 가지 못하였다. 그래서 내가 적용한 방법은 바로 한국식으로 수학을 가르치는 것이었다. 단순 방법, 문제 유형 외우기, 무제한으로 문제풀이 연습하기.
그랬더니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이 학생들이 편안함과 안전감을 느끼며 수학 시간에 즐거운 마음으로 조용히 문제풀이를 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복잡하게 뇌를 사용할 필요 없이 가르쳐 준 규칙대로 하염없이 문제풀이만 하면 되니 얼마나 편안했겠는가! 한국식 수학 교육방식이 특수교육 대상 학생들에게 효과가 있다는 사실이 나에게 또다시 충격을 안겨 주었다.
세계 수학 올림피아드에서 수소의 학생들이 상을 탔다고 해서 우리나라 학생들이 수학을 잘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무지하게 어려운 문제를 이미 알고 있는 공식을 이용해서 1분만에 풀었다고 해서 그것이 수학 영재가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오히려 45 + 59를 새로운 방법으로 풀어내는 것이 좀 더 어려운 일일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