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들, 정말 감사합니다. 우리 갑순이가 이 학교에 와서야 마음을 잡고 공부를 하기 시작했어요. 그 전까지는 학교를 3번이나 전학 다녔습니다. 선생님들의 사랑이 정말 큽니다."
IEP미팅에서 학부모님이 미팅에 참석한 선생님들에게 하신 말씀이다.
마음이 따뜻해지는 순간이었다.
IEP 미팅에서는 좀처럼 듣기 힘든 고마운 멘트였다.
새 학기의 첫 IEP 미팅을 훈훈한 마무리로 끝나게 되어 기뻤다.
IEP 미팅에 참석한 갑순이의 아빠는 사실 갑순이의 삼촌이다.
갑순이의 삼촌이 갑순이를 입양한 것이다.
갑순이의 생활 기록부에 "친부 접근 불가" 표시가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갑순이는 삼촌에게 입양되기 전까지 힘든 일들을 겪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내가 가르치고 있는 아이들 중 몇몇 친구들의 생활기록부에는 부모 중 한 명의 접근 불가 표시가 붙어 있는 학생들이 있다.
어떤 아이들은 현재 위탁 가정에서 생활하고 있기도 하다.
영화나 다큐멘터리에서나 보고 듣던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로 한 학년에 몇 명씩 어린 나이에 힘든 일들을 겪으면서 학교를 다니는 학생들이 있는 것이다.
감사하게도 내가 일하는 학교에서는 교장 선생님을 비롯하여 선생님들이 이 학생들을 비교적 살뜰하게 보살피고 있다.
교통편이 없어 학교에 등교할 수 없으면 교육청에 요청하여 교육청 밴을 보내주기도 한다.
안경을 살 형편이 안되면 교육청이나 학부모 회의에 요청하여 안경을 구매할 수 있도록 주선한다.
무엇보다 이렇게 어려운 일을 겪으면서 학력이 현저히 떨어지고 심리적으로 불안한 상태에 이르게 되어 특수교육을 받아야 하는 처지에 이르게 되는 경우가 많아, 나와 같은 특수교사들과 상담 교사들이 그러한 아이들을 좀 더 신경 쓰며 보살피게 된다.
갑순이는 참 다행한 경우에 속한다.
위탁가정이 아닌 삼촌이 갑순이를 받아들여 어려움을 극복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갑순이의 삼촌은 온라인 수업이 진행되는 지난 봄부터 올 여름까지 갑순이가 꼬박꼬박 온라인 수업에 참여하도록 격려하고, 또 집에서 매일 책을 읽게끔 신경을 써 주었다.
갑순이는 읽기, 셈하기, 쓰기 모든 영역에서 또래에 비해 한참 뒤쳐져 있었다.
그런데 가정에서의 이러한 관심과 배려 덕분인지 읽기 실력이 이제는 거의 자기 학년 수준에 도달하게 되었다.
특수교육을 받는 학생이 자기 학년 수준까지 발전하는 경우는 정말로 드문 일이다.
갑순이의 삼촌 그러니까 양아버지는 정말 좋은 분 같았다.
본인에게도 여러 명의 자녀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조카를 가족으로 품고 그 상처를 치료하려고 애쓰는 모습이 존경스러웠다.
지난 여름동안 갑순이를 상담실에 데리고 다니면서 그동안 갑순이가 겪었던 일들에 대한 치유와 현재 지니고 있는 ADD, 분노조절 장애, 불안감 등을 상담 받고 있다고 했다.
이러한 삼촌의 노력 덕분인지 갑순이는 친구들 앞에서도 상담실에 다니며 상담 받는 것을 숨기거나 부끄러워하지 않는다고 했다.
갑순이의 담임 선생님도 온라인 수업 중에 갑순이가 "선생님, 제가 지금 상담을 받으러 가야 해서 이만 수업에서 나갈께요."라고 공개적으로 말하면 "그래, 갑순아, 상담을 받는 것을 친구들 앞에서 오픈 해 주어서 고맙다. 우리들은 누구나 넘어지거나 도움의 손길이 필요하면 갑순이처럼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지!" 라고 칭찬을 해 주신다.
가정에서의 관심과 보살핌, 담임 선생님의 격려, 전문 상담가의 치료, 학교 선생님들의 배려가 갑순이를 무럭 무럭 자라게 한다.
비 온 뒤에 땅이 더 단단해지듯이, COVID-19으로 세상이 난리이고, 정치적, 경제적으로 혼란스럽지만 우리의 갑순이는 주변 사람들의 사랑과 보살핌으로 점점 회복되고 있다.
가을 방학이 끝난 후, 갑순이를 가르칠 일이 기대된다.
갑순이가 비록 지금은 뺄셈도 제대로 하지 못하지만 이번 학기가 끝날 때 쯤이면 수학을 사랑하는 아이로 변화되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환타지를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