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요새 두 학교를 다닌다.
몇 주전에 갑자기 교장 선생님이 교실에 찾아와 어색한 미소를 짓더니 이웃 초등학교에 특수교사가 갑자기 그만두게 되어 교사가 당장 필요하니 그 쪽 학교 학생들까지 가르쳐야 한다는 날벼락 메시지를 전해 주셨다.
좀 황당하고 당황스러웠지만 초보 교사인데다 각 학교가 얼마나 어려운 상황인지 조금은 짐작이 되기에 쿨한척하며 오전에 잠깐 A 학교에 가서 학생들을 가르치기로 했다. 이리하여 나는 매일 두 학교를 왔다 갔다 하는 일명 순회 교사가 되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순회교사가 힘들지 않다. 생각보다 괜찮다고 느껴졌다.
오전에 A 학교로 먼저 출근을 하기에 그동안 B 학교에서 맡았던 아침 당번일이 모두 사라졌다.
아침에 A 학교에 가면 그 학교 선생님들은 나를 잘 모르기에 당번이나 잡무를 전혀 시키지 않는다. 이리하여 아침 시간에는 온전히 수업 준비를 하며 맡은 학생들 가르치기에 집중을 할 수 있게 되었다.
B 학교에서는 중간에 학교에 가기 때문에 또 잡무를 맡지 않게 된다. 업무 분담이 끝난 후에 가게 되기 때문이다.
더불어 두 학교를 다니다 보니 미국은 같은 교육청 소속이어도 학교마다 교장 선생님에 따라 분위기가 매우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A 학교도 그렇고 내가 친정이라고 생각하고 근무하던 B학교도 요즘 대단히 조용하다. 모두 알다시피 내가 일하는 교육청은 모든 수업을 온라인 수업으로 전환하였다.
그래서 대부분의 학생들은 집에서 온라인으로 접속하여 수업을 하고 특수 교육 대상자나 아니면 꼭 돌봄이 필요한 학생들에 한해서 학교에 등교하고 있다.
그래서 학교에 등교하는 학생들은 60명 내외이다.
이보다 더 많은 학생들이 학교에 등교하여 수업을 받고 싶어하지만 돌볼 수 있는 인력의 부족으로 교장 선생님 책상에는 긴 웨이팅 리스트가 놓여 있다.
어제는 A 학교에서 수업을 마치고 헐레벌떡 B 학교 주차장에 자를 주차하는데 왠지모를 불길한 예감이 머리를 스쳤다. 평소 같으면 놀이터에서 놀고 있어야 할 미스 그레이스 선생님의 아이들이 안 보이는 것이었다.
학교 건물 안에 들어서니 평소보다 갑절이나 무겁고 조용한 기운이 감돌았다.
얼른 교실에 들어가 동료 특수 교육 선생님에게 물어보니 오늘 아침 갑작스럽게 코로나 확진자가 나와서 그나마 학교에 등교하던 학생들 중 2 학급 학생들을 등교 중지를 시켰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지금 학교에는 한 학급의 학생들만 등교하여 수업을 받고 있다는 것이었다.
나의 멘토인 동료 선생님은 오늘 아침에 난리가 났었고, 미처 연락을 받지 못하고 등교를 해 버린 학생들의 부모님께 전화를 걸어 학생을 데리러 오라고 했으며 한 엄마는 화가 머리 꼭대기까지 올라서 조만간 분노의 이메일을 날릴 것이 예상된다고 하셨다.
작년 이맘때와는 참 많이 다르다.
며칠전에는 교직원 성탄 파티를 했는데 ZOOM으로 했다.
교장 선생님이 선생님들 휴게실에 과자와 간식거리를 차려 놓았고 각자 알아서 간식을 가지고 자기 교실 또는 집으로 가서 컴퓨터에 접속하였다.
교감 선생님이 게임을 진행했다. Zoom의 채팅창에 올라온 사이트에 접속하니 빙고 판이 나왔다.
미국 사람들과 이런 정식 빙고는 처음 해 보는 것이었다. 생각보다 복잡하고 어려웠다. 교감 선생님은 빙고 낱말을 불렀고, 교장 선생님은 zoom 화면으로 각종 선물을 보여주었다.
그 다음 게임은 몸으로 단어를 설명하면 답을 채팅방에 올려서 가장 빨리 답을 올리는 사람이 이기는 게임이었다.
아무튼 온라인으로도 이렇게 단체 게임을 하면서 놀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재미가 있었지만 작년에 교감 선생님 집에서 있었다는 크리스마스 파티에 비한다면 싱겁기 그지없었다.
교실을 정리하다가 작년 이맘때 작성했던 수업일지를 발견하였다.
학생들이 반별로 연말 파티를 몇 교시에 하는지 빼곡히 적혀 있었다.
아울러 겨울 방학 이후에 있을 각종 학교 행사와 주단위의 학력교사인 AzMerit 시험 감독 일정 및 방법 등의 계획도 있었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작년 이맘때에는 학생들과 종이접기로 성탄 트리도 접고 리스도 만들었던 생각이 났다.
올해는 모두가 온라인으로 만나니 종이접기는 고사하고 방학 전 마지막 수업 때 핫초코와 팝콘을 먹으며 영화감상을 하는 호사는 물 건너 갔다.
학생들도 선생님들도 모두가 지친 기색이 역력하다. 그리고 두려움도 커 가는 것 같다.
온라인 수업에서 대면 수업으로 또 등교 했다가도 학급에 확진자가 생기면 또 2주간 온라인 수업.
이렇게 왔다 갔다를 반복하다보니 우울하고 무력한 분위기가 짙어 진다.
그나마 이번주부터 백신 접종이 시작되었다고 하니 내년 봄방학 이후에는 모든 것이 예전처럼 돌아가리라는 기대를 품어본다.
어쩌면 언제 그랬냐는 듯 모든 것이 원상복귀 되고 2020년은 추억의 한 자락이 될 수지도 모르겠다.
그 어느때보다는 "회복 탄력성"이 필요한 시기이다.
지금 학교는 조용하지만 다시 아이들의 밝고 투명한 목소리로 가득 찰 날이 오리라 믿으며 조금만 더 참고 견디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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