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한 아프리카 속담을 소개하겠다.
"It takes an entire village to raise a child."
"아이 한 명을 기르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
"If you want to go quickly, go alone, if you want to go far, go together."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
나는 미국에서 새내기 특수교사로 일하면서 이 속담을 온 몸으로 절실하게 경험하고 있다.
한국에서 일반 담임 교사로 일 했을 때에는 함께 일하는 것, 팀으로 일하는 것의 가치나 의미를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물론 한국에서 일하던 학교가 공동체와 협동을 강조하던 곳이어서 동료 교사들과 함께 수업 준비도 하고, 이야기도 많이 나누었다. 그리고 친하게 지냈었다. 학생들에게도 수업 시간에 짝과 함께 또는 모둠으로 여러가지 학습 활동을 하게 독려하였다. 공개 수업 기간이 되면 동료 선생님들과 수업 지도안을 함께 짜고, 늦게까지 학교에 남아 짜장면을 먹으며 시간을 함께 했던 기억들도 추억으로 남아있다.
그런데 지금 이곳 미국의 학교에서 경험하는 "함께하기"는 한국에서 경험하던 것들과는 차원과 색깔이 다르다. 이곳에서의 "팀워크로 일하기"는 옵션, 즉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필수, 즉 반드시 해야 하는 업무의 일환인 것이다. 학교 시스템 자체가 함께 움직이지 않으면 안 되도록 구조화 되어 있다. 특히 특수교육 관련 업무는 거의 99% 팀으로 하게끔 되어 있다.
예를 들면 이러하다. 내가 일하는 학교에는 모두 4명의 특수교사가 있다. 특수교사를 돕는 보조 교사는 7~9명 정도가 있다. 또 학생들의 장애에 따라 여러 학교를 순회하며 특수교육을 제공하는 언어치료사, 작업 치료사, 물리치료사, 특수체육교사, 교육청 소속 간호사, 행동 수정 전문가 등이 있다. 이 사람들이 모두 특수 교육이라는 우산 아래에서 한 팀으로 움직인다.
다운 증후군으로 특수교육을 받고 있는 갑순이는 메리 선생님에게 지원실 수학을, 케이티 선생님에게 지원실 읽기와 쓰기를, 언어치료사인 조이 선생님에게 언어치료를, 조안 선생님에게는 작업 치료를 받는다. 갑순이가 화장실을 갈 때나 식사를 할 때 아직 도움이 필요하므로 베티 선생님이(보조 교사) 내내 갑순이의 옆을 지켜준다. 갑순이 한명에게 담임 선생님을 포함하여 6명의 선생님이 한 팀이 되어 특수 교육을 제공하고 있는 셈이다.
갑순이를 위해 일하는 여러 선생님들의 교통정리를 위해 메리 선생님이 갑순이의 케이스 매니저가 되었다. 갑순이에게 어떤 문제가 터졌을 때, 여러 사람이 함께 의논하여 문제를 해결하지만, 이때 케이스 매니저인 메리 선생님이 코디네이터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만약 법정 소송이 걸렸을 때 주된 책임을 지게 되는 사람이 바로 메리이다.
한 학생이 학교에서 특수 교육을 받을지 말지를 결정하기 위해서도 한 군단이 움직인다. 학교 심리 상담사(School Psychologist), 담임교사, 특수교사, 교장 선생님 그리고 학부모가 한 팀으로 구성되어 3차례 이상의 미팅을 가지고 학생의 특수 교육 여부를 결정한다.
특수 교육을 받는 학생의 IEP 회의를 할 때에도 반드시 학부모, 담임교사, 특수교사, 교장 선생님은 필수로 참석해야 하고, 이 외에도 경우에 따라서는 교육청 간호사, 언어치료사, 작업 치료사, 특수 체육 교사 등도 참석을 요구받는다. 지난 번 IEP 회의 때에는 8명이 넘는 어른들이 회의실을 꽉 채운 경우도 있었다.
이곳에서 팀으로 일하면서 느낀 점은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꼭 인간적으로 친하지 않아도 성공적으로 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설사 함께 일하는 보조 교사 선생님들이 마음에 들지 않고, 보조 교사들은 나이가 어린 특수교사가 아니꼽게 느껴져도 업무는 잘 굴러 간다.
왜냐하면 일의 범위와 책임이 분명하게 정해져 있고, 범위와 책임을 벗어난 그 이상의 것을 서로에게 요구하지 않기 때문이다.
특수 교사 선생님들은 학생들에 관한 지도 업무 이외의 것은 절대로 보조 교사에게 지시하지 않고, 마찬가지로 보조 교사들도 특수 교사가 허락한 업무만을 한다. 보조교사들이 마음대로 학생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되어 이런 저런 조치를 취해서는 안되는 것이 불문율이다. 특수교사들도 아무리 자기가 케이스 매니저라고 해도 언어치료나 작업치료에 관련된 것을 결정 할 때에는 반드시 언어치료사나 작업치료사에서 먼저 물어보고 결정을 내린다.
이러한 바운더리가 지켜지지 않으면 바로 교장선생님이 나서서 교통정리를 한다. 빠르고 효율적인 회의를 위해 간식을 먹는다든지 회의 전에 오락시간을 갖는다든지 하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다. 마치 기업의 회의시간처럼 모이자마자 본론으로 들어가 결론에 이르기까지 30분정도면 된다. 회의 시간에 농담이나 헛소리는 방학 직전이 아니고서는 거의 기대하기 힘들다. 간혹 주제를 벗어난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런 사람들을 위해 회의록을 작성하는 사람이 "주차장"이라는 별도의 종이를 마련해 놓고, 주제를 벗어난 의견, 기타 헛소리 등을 따로 적어 놓는다. 나중에 시간 날 때 검토해 보자는 취지에서이다.
팀으로 일하는 것이 부담스럽고 번거롭기도 하다. 그런데 팀으로 일하니 확실히 위기에 강하다는 것을 요즘 경험한다.
COVID-19 난리통 속에서도 학생들에게 꿋꿋하게 특수교육을 하고 있고, 학교가 휴교하고 몽땅 온라인 수업으로 전환했을 때에도 특수 교육을 온라인과 오프 라인으로 쉬지 않고 학생들에게 제공할 수 있었다.
몇몇 선생님들이 힘들다고 학교를 그만 두었을 때에도 팀안에서 서로 서로 업무를 나눠 하면서 지금까지 정상적으로 교육을 하고 있다. 역시 멀리 가려면 함께 가야 하는 것임을 실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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