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교회 초기 신자 가운데 '개신교 여성수도자들의 어머니'라 불리는 손임순이라는 분이 있습니다.
전남 화순 출신으로 '수락기' 마을에서 시집왔다 해서 '수락기댁'이라 했는데, 사람들은 그냥 소리 나는 대로 '수레기댁'이라 불렀습니다.
훗날 제자들은 '수레기어머니'라 했습니다.
손임순은 그 마을 최고 부잣집에 시집을 와서 아기를 쑥쑥 잘 낳았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낳는 아이마다 여섯 일곱 살이 못되어 세상을 떠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가슴에 묻은 자식이 무려 아홉이었습니다.
여자로서 어떻게 말로 다할 수 없는 천추의 한과 아픔이 가슴에 응어리진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당시 유행하던 보천교라는 민중 신앙에 귀의해서 3년간 열심히 기도하기도 했습니다.
시부모에게서 물려받은 전답을 다 탕진했고 집마저 남의 손에 넘어갔습니다.
심지어 다리에 오목하게 파인 상처가 생겨나서 바늘로 그 상처를 찔러 보았는데 전혀 아프지 않고 감각이 없었습니다.
나병이었습니다.
나병이 유행하던 당시 사람들은 상처가 나면 바늘로 찔러 보아서 아프면 나병이 아닌 보통 상처이고 전혀 아프지 않고 감각이 없으면 나병이라고 판명했습니다.
자식 아홉을 앞서 보내고, 가산을 송두리째 탕진하고, 자기 자신마저 나병에 걸려 죽게 된 것입니다.
참으로 기가 막힐 노릇이었습니다.
그 즈음 인근 마을에 사는 이세종이라는 분이 있었는데, 일찍이 기독교를 받아들이고 환골탈태하여 산당에서 성경을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수레기댁은 아픈 아들을 들쳐 업고 산당으로 올라가 이세종의 말을 훔쳐들었습니다.
이세종의 성경 강론은 꿀맛같이 달았고 그녀 가슴에 맺힌 한과 고통을 다 씻어주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수레기댁이 꿈을 꾸었는데, 꿈 속에 갓을 쓰고 하얀 옷을 입은 노인이 나타나 "네가 3년 동안 열심히 기도했는데도 너를 위해 해준 것이 없다" 라고 하면서 "네 병은 내가 가져가겠다"고 했습니다.
꿈에서 깨어보니 나병이 거짓말처럼 사라져버렸습니다.
그러나 시련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행여나 했던 아홉 번째 자식마저 또 세상을 떴습니다.
수레기댁이 낙심해 행여 삶을 포기하지나 않을까 걱정이 된 이세종이 가만히 방문을 열어보니 수레기댁은 죽은 아이를 그대로 둔 채 먹을 갈고 있었습니다.
이미 싸늘해져버린 시신에 집착하기보다 성경을 통해 새 생명을 얻기 위해 한글을 배우고 있었던 것입니다.
열 번째 자식인 이원희, 나중에 장로가 되었습니다.
원희를 낳자 이세종은 '더 이상 자식에도 재산에도 집착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며 순결의 삶을 살라'고 했습니다.
그때부터 그녀는 남편을 설득해 함께 금욕하며 수도자의 삶을 살았고, 이세종이 말년에 그 산당을 떠나 다른 산으로 갔을 때 수레기댁이 대신 그 산당에 기거하며 기도했습니다.
훗날 빨치산의 은거지가 될 정도로 험준한 산골이었고 대낮에도 호랑이가 우글거리는 곳이었는데 거기에서 죽을 때까지 수도자의 삶을 살았습니다.
어느 칠흑 같은 밤에 기도하고 있는데 산당 안이 대낮처럼 환해졌습니다.
눈을 떠도 눈을 감아도 너무나 빛이 밝아 어찌할 수가 없었습니다.
성령의 강력한 임재를 체험한 것입니다.
그 이후 수레기댁은 한밤중에도 산을 오르내리며 성경을 전하러 다녔는데, 전해지는 얘기에 의하면 그럴 때마다 집채만한 호랑이가 눈에 불을 켜고 길을 밝혀주었다고 합니다.
워낙 자식들 병치레를 많이 했고 자신도 나병에 고통 당했던 여인이었는데, 병에 대해 이렇게 늘 말했다고 합니다.
열 번째 아들인 이원희 장로가 전하는 말입니다.
"어머니는 모든 병이 자신으로부터 나온다고 했다. 병이 나면 자신을 되돌아보라고 했다. 누구에게 잘못했는지, 삶을 어떻게 잘 못 살았는지 자신을 돌아보라는 것이었다. 이를 참회하고 고쳐서 병을 낫게 했다."
예수에게 귀의할 때 참된 변화가 일어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빛과 생명이 넘쳐나는 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