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서부의 3대 캐니언(협곡)이라 일컬어지는 곳이 아리조나와 유타주에 넓게 자리하고 있는 그랜드(Grand) 캐니언과 자이언(Zion) 캐니언, 브라이스(Bryce) 캐니언이다.
이 3대 캐니언을 투어하기에 앞서 각 캐니언의 땅 구조에 대한 이해를 가지고 길을 나서면 보다 흥미로운 관광이 될 수 있다.
우선, 그랜드 캐니언에서는 자이언, 브라이스 캐니언의 하부 지층이, 자이언 캐니언에서는 브라이스 캐니언의 하부 지층이 보인다.
지층의 나이도 그랜드(선캄브리아기, 고생대), 자이언(중생대 트라이아스~쥐라기), 브라이스(중생대 쥐라기~신생대 제3기) 캐니언의 순으로 오래되었다.
3대 캐니언 지역의 지층 구조는 계단식 모양을 하고 있다고 해서 이 지역을 'The Grand Staircase(큰계단)'라고 부른다.
해발고도 역시 브라이스 캐니언 쪽으로 갈수록 높아진다. 그랜드 캐니언 상부면에 자이언 캐니언이, 또 자이언 캐니언 상부면에 브라이스 캐니언이 놓여 있다.
스테어케이스의 절벽 색깔은 하부면으로부터 상부면을 향해 Chocolate, Vermilion, White, Gray, Pink의 5가지로 나타나고 있어, 단애(cliff)의 색깔로 지층의 상하부 관계를 판단할 수 있다.
이렇듯 서부의 3대 캐니언 경관을 잘 감상하려면 이 지역 지층의 공간 분포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미술에 대한 배경을 알아야 미술품을 잘 감상할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3대 캐니언의 맏형, 그랜드 캐니언(평균고도 2074m)
그랜드(Grand) 캐니언은 말 그대로 그랜드하다. 협곡 깊이가 무려 1500m나 된다. 규모는 물론이고 나이도 그랜드. 3대 캐니언 중 제일 많은 6억~2억 7000만 년 전의 고생대 지층이다. 그랜드 캐니언을 현장에서 보는 느낌은 '어? 이게 뭐지?' 그 자체다. 말로 어떻게 표현해야 할 지 몰라 표정도 무덤덤해진다.
사람이 서있는 그랜드 캐니언의 지표면은 지역의 이름을 본따 카이밥(Kaibab)층이라 불린다. 이 지층은 스테어케이스 구조상 자이언 캐니언이나 브라이스 캐니언 땅 속에 들어가 있어 이곳에서만 볼 수 있다.
그랜드 캐니언은 형성과정이 매우 복잡하다. 편암으로 구성된 이곳 기반암의 나이는 무려 18억 년이나 된다. 선캄브리아 시기다. 5억 년 전 즈음엔 수심이 얕은 해저였던 탓에 점토질 퇴적암인 셰일이 형성되었다. 북미가 적도 근방에 놓여 있던 3억 4000만 년 전부터 석회암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화학적 풍화작용을 받아 적색으로 변한 지층이 바로 석회암층이다. 석회암층은 그랜드 캐니언에서 제일 깊은 150m의 수직 절벽을 이루고 있다. 화석도 다량 들어있다.
3억 년 전 즈음부터는 그랜드 캐니언에 붉은 줄무늬가 새겨지기 시작했다. 그때 이곳은 수심이 얕은 바다가 된다. 해수면이 땅 위로 올라왔다 내려갔다 하면서 석회암, 사암, 셰일 등의 암석을 만들었다. 해양과 육상 기원의 화석이 함께 나타나는 이유다. 우리가 2억 8000만 년 전쯤 이 그랜드 캐니언에 있었다면 곡류하천이 유유히 흐르고 있는 진흙 밭 해안평야 위를 헤치며 걸어야 했을 것이다. 그 때의 진흙층이 현재 그랜드 캐니언의 붉은색 사면을 만든 셰일층이다.
2억 7500만 년 전부터는 사암이 만들어진다. 이곳에 형성된 해안사구 때문이다. 모래 바람이 사층리도 만들었다. 원시대륙인 팡게아 대륙의 서쪽 가장자리에 있었던 2억 7000만 년 전부터 이곳은 다시 바다가 된다. 현재의 지표면이 바로 그때 만들어진 카이밥 석회암층이다. 콜로라도 강이 지금의 협곡을 만든 것은 지질연대 측면에서 보면 극히 최근에 불과한 수백만 년 전의 일이다.
◆사층리의 천국, 자이언 캐니언(고도 1117~2660m)
자이언(Zion) 캐니언은 일반인이 말하는 그냥 '돌산'이 아니다. 자이언 캐니언을 제대로 구경하려면 나바호 사암(Navajo Sandstone)을 알아야 한다. 그랜드 캐니언이 큰 벽화 한 장의 느낌이라면 자이언 캐니언은 서부영화에서 본 바로 그런 장면을 볼 수 있는 아주 예쁜 캐니언이다. 그 한가운데에 나바호 사암이 있다. 이 사암층은 중생대 쥐라기 지층으로 근방에 살고 있던 인디언 부족의 이름에서 따왔다.
자이언 캐니언의 색은 화이트다. 그런 탓에 수많은 화이트 클리프(White Cliff)가 자이언 캐니언에 위치해 있다. 사암인 탓에 색깔이 하얀 것이다. 이 사암층의 두께는 670m나 된다. 유타주를 중심으로 남북 1000km, 동서 400km에 걸쳐 분포되어 있다.
나바호 사암의 구성 물질은 98%가 석영이다. 이 나바호 사암의 홀마크는 사층리. 평균 0.2mm 크기의 모래가 만든 사층리는 약 2억 년의 나이를 갖고 있다.
사층리(斜層理, cross bedding)이란 한마디로 한쪽 방향으로 경사진 층리를 말한다. 사층리는 물이나 바람이 모래를 전면에 쌓아 놓으며 점차 크기를 키워나간다. 나바호 사암의 사층리 규모는 작게는 수mm부터 크게는 10m 이상의 두께를 보이고 있다.
그럼 나바호 사층리는 물이 만들었을까? 아니면 바람이 만들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나바호 사암의 사층리는 바람이 만든 것이다. 나바호 사층리는 매우 다양한 줄무늬를 이루고 있다. 이 지역의 사층리가 일정한 모양을 갖지 않고 있는 이유는 사층리가 형성된 시기의 바람의 세기와 방향이 달랐기 때문이다. 나바호 사암의 모래는 그랜드 캐니언에서 설명했던 바와 같이 해안사구의 발달과 시기를 같이 한다. 다양한 모양의 사구가 형성된 후 사구 옆면이 침식을 받아 잘리게 되면 사층리가 나타나게 된다.
◆제일 막내인 Pink Cliff, 브라이스 캐니언(고도 2400~2700m)
브라이스 캐니언의 볼거리는 붉은색 첨탑 지층이다. 북미가 물로 덮여 있었던 신생대 제3기인 5,500만~3,500만 년 전에 만들어졌다. 그랜드 캐니언과 자이언 캐니언 이후에 쌓인 지층으로 3개 캐니언 중 나이가 제일 어리다. 유타주를 덮으며 흐르던 망류하천이 호소로 변하면서 진흙이 쌓여 만들어졌다. 지금의 경관은 불과 수백만 년 전부터 형성된 작품이다. 하천과 빗물 침식이 현재의 경관을 빚어내면서 Pink Cliff가 만들어졌고 그랜드 캐니언이나 자이언 캐니언에서 볼 수 없는 브라이스 캐니언만의 볼거리가 형성된 것이다.
우리가 브라이스를 캐니언이라 부르고 있으나 엄밀히 말하면 캐니언은 아니다. 하천이 깎아놓은 지형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냥 편의상 캐니언으로 부를 뿐이다. 브라이스의 기반암은 석회암. 서릿발 작용과 용식작용과 같은 기계적, 화학적 풍화작용이 지금의 브라이스 경관을 만들었다. 현재도 이 지역은 겨울에 눈이 많이 많이 내려 융설수가 지형 변화에 큰 몫을 담당한다. 산성비도 석회암을 녹이며 암설을 만들어낸다. 삐쭉하게 솟은 브라이스의 지형을 빗대어 'Hoodoo' 혹은 'goblin'이라고 부른다.
미 서부의 3대 캐니언을 둘러 볼 때 이 정도의 내용만 알고 있어도 그냥 차로 스치고 지나가는 것보다는 의미있는 구경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위의 3대 캐니언 말고도 아리조나에 위치한 홀스슈벤드(Horseshoe Bend), 엔텔로프(Antelope) 캐니언, 글렌댐(Glen Dam), 모뉴먼트밸리(Monument Valley) 등도 빼놓아선 안 될 'MUST GO' 지역이다.
-박종관 건국대학교 지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