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카 인디언 문화에 대한 백인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책 가운데 어니스트 톰슨 시튼(Ernest Thompson Seton)이 쓴 『The Gospel of the Redman』(인디언의 복음)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작가 시튼은 백인으로서 인디언들과 함께 살면서 이 책을 썼기 때문에 백인 문화와 인디언 문화를 보다 설득력 있게 분석한 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1장 첫 문단에서 시튼은 이렇게 말합니다.
"백인의 문화와 문명은 본질상 물질적인 것이다. 백인의 성공 기준은 '나를 위해 재산을 얼마나 모았느냐?'이다. 인디언의 문화는 근본부터가 영적이다. 인디언의 성공 기준은 '내 동족에게 얼마나 봉사를 베풀었는가?'이다."
양쪽 문화에 대한 예리한 통찰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 예화를 통해 시튼은 두 문화 차이를 잘 설명합니다.
"양파 파는 노인"이라는 짧은 이야기입니다.
멕시코시티의 대형 시장 그늘진 한 구석에 '포타라모'라는 인디언 노인이 있었습니다.
노인 앞에는 양파 스무 줄이 걸려 있었습니다.
시카고에서 온 한 미국인이 다가와 포타라모에게 묻습니다.
"양파 한 줄에 얼맙니까?"
"10센트라오."
포타라모는 대답합니다.
"두 줄에는 얼맙니까?"
"20센트라오."
"세 줄에는요?"
"30센트라오."
그러자 미국인이 말했습니다.
"별로 깎아 주시는 게 없군요. 25센트는 어떻습니까?"
"안되오."
인디언이 말했습니다.
"스무 줄을 다 사면 얼맙니까?"
미국인이 물었습니다.
"스무 줄을 전부 팔 수 없소."
인디언이 대답했습니다.
"왜 못 파신다는 겁니까? 양파 팔러 나오신 것 아닙니까?"
미국인이 물었습니다.
그러자 인디언이 이렇게 대답합니다.
"아니오. 나는 지금 인생을 살러 여기 나와 있는 거요. 나는 이 시장을 사랑한다오. 북적대는 사람들을 사랑하고 서라피(멕시코 남자가 어깨에 걸치는 모포)를 사랑한다오. 햇빛을 사랑하고 흔들리는 종려나무를 사랑한다오. 페드로와 루이스가 다가와 인사를 건네고 …. 자기 아이들이며 농작물 얘기를 하는 것을 사랑한다오. 친구들 보는 것을 사랑한다오. 그것이 내 삶이오. 바로 그걸 위해 하루 종일 여기 앉아 양파 스무 줄을 파는 거요. 한 사람한테 몽땅 팔면 내 하루는 그걸로 끝이오. 사랑하는 내 삶을 잃어버리는 것이오. 그렇게는 할 수 없다오."
인디언의 삶의 방식은 그야말로 돈벌이보다 더불어 사는 것, 의미를 깨닫는 것, 그리고 그 의미를 공유하는 것, 그런 삶의 방식입니다.
백인의 삶은 본질상 물질적이고, 성공 기준 역시 '나를 위해 재산을 얼마나 모았느냐?'입니다.
백인들의 삶과 문화를 추종하는 우리 역시 거의 다를 바 없지요.
최근 읽기를 다 마친 웬디 제하나라 트레메인(Wendy Jehanara Tremayne)의 『좋은 인생 실험실』(The Good Life Lab)에서 저자는 '선물경제'(Gift Economy)라는 용어를 소개합니다.
루이스 하이드(Lewis Hyde) 교수의 책 『The Gift : Imagination and the Erotic Life of Property』에서 개념을 빌려온 말입니다.
즉 콩 농사 짓는 사람은 남는 콩을 집 앞에 놓아두어 필요한 사람이 가져가도록 하고, 용접 기술이 있는 사람은 난로를 몇 개 더 만들어 역시 또 필요한 사람에게 선물이라고 내놓고, 털실로 옷 같은 것을 더 만들어 필요한 사람에게 나누고 ….
선물(Gift)을 서로 주고 받는 것이죠.
물물교환은 아니고 정말 선물하면서 서로의 필요를 채웁니다.
그런데 이것 역시 미국 북서부 컬럼비아 강 유역에 사는 원주민 치누크(Chinook)에게서 배운 것입니다.
치누크는 "식사를 제공한다"는 뜻의 포틀래치(Potlatch)라는 말을 사용하며 물건을 서로 주고받는 선물(Gift) 체계 위에 그들의 사회를 세워놓았습니다.
교우들에게 선물경제에 대해 간단히 설명했더니 좋다고, 우리도 하자고 그럽니다.
코스코에서 양파를 사면 너무 많아 버릴 때가 많은데 먹을 만큼만 두고 교회로 가져오겠다고, 비타민 사면 끝까지 다 먹지 못하고 유효기간 지나 버리는데 덜어서 교회에 갖다 놓겠다고, 백야드에 키우는 엇갈이 배추 갖다 놓겠다고 … .
우리만의 선물경제, 참 좋습니다. (이럴 때 '얼씨구!!' 하죠)